그룹 핵심 성장축이자 캐시카우…대규모 M&A로 실적 부진 돌파 의지 반면 ‘신중론’도 고개
에틸렌 생산 기준 국내 화학업계 1위 업체인 롯데케미칼은 LG화학과 함께 공룡 화학 회사로 통한다. 롯데는 유통사업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실제 그룹의 핵심 성장축은 롯데케미칼이다. 롯데그룹 전체 매출에서 화학(건설 포함)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만 33%가량에 달한다.
울산시 남구 석유화학공단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 사진=롯데케미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도 각별하다. 그는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회장 취임 이후 현대석유화학 2단지(롯데대산유화)와 호남석유화학, 삼성그룹과의 화학 계열사 빅딜 등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통해 롯데케미칼의 몸집을 키우면서 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맡겼다.
신동빈 회장은 2018년 10월 경영에 복귀한 직후에도 롯데케미칼을 롯데지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유통, 호텔, 석유화학 등 3개 부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뉴롯데’ 전략의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 전략의 핵심에도 롯데케미칼이 이름을 올렸다. 롯데그룹이 세운 ‘2023년까지 총 50조 원 투자’ 계획에서 40%인 20조 원이 화학 산업에 투입된다.
그러나 올해 롯데케미칼이 받아든 성적표는 부진 그 자체였다. 지난 1분기엔 시장의 예상을 깨고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매출 3조 2756억 원, 영업손실 860억 원으로 적자를 냈다. 롯데케미칼이 분기 적자를 기록한 건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와 국제유가 급락, 올해 초 충남 서산에 위치한 대산공장 대규모 폭발 사고 등의 악재가 겹쳤다.
1분기 악재의 여파는 올해 2분기에도 이어졌다. 매출이 2조 682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2.1% 줄었다. 대산공장 사고로 인한 기회 손실과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면서 영업이익도 줄었다. 329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전환엔 성공했지만, 2019년 2분기와 비교하면 90.5% 감소한 수치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반기보고서를 통해 매출 4조 5899억 원(전년 4조 7104억 원), 영업손실 270억 원(전년 영업이익 4899억 원) 등을 공개하면서 상반기를 마무리했다.
올해 초 충남 서산시 대산읍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올해 상반기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진=연합뉴스
금융투자업계는 대산공장 사고 수습을 마치고 연내 정상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내년엔 실적 반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롯데케미칼이 단기적인 실적 반등보다는 장기 비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2019년까지 1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한 2017년(2조 9297억 원) 이후 줄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5조 원대로 사실상 정체돼 있다. 매출의 99%를 석유화학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에틸렌 생산 공장을 새로 짓고, 전남 여수의 폴리카보네이트 공장, 울산의 메타자일렌, 고순도이소프탈산(PIA) 공장 설비를 증산하는 등 석유화학에 투자를 늘렸다. 그러나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화학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부문으로 일찌감치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SKC 등이 첨단 소재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과 대조적인 행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 등까지 가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고, 경영환경도 큰 폭으로 급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 기존 사업에만 힘을 집중하면 언제든 올해와 같은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롯데케미칼이 조만간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동안 롯데케미칼이 한 단계 성장할 때는 늘 인수합병이 기반이 됐던 만큼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시도할 것이라는 취지다.
재무 여력과 실탄이 충분하다. 통상 제조업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00%가 넘지만, 롯데케미칼은 2016년 68%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줄여나가면서 최근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은 올해 2분기 기준 3조 3000억 원을 기록했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이 보통 쓰러지지만, 자금력이 풍부한 회사에겐 또 다른 기회”라며 “롯데케미칼은 이 시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회사에 포함되는 쪽”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인수합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하고 기초소재 분야에서 첨단소재 부문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롯데첨단소재는 2016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삼성SDI 케미칼 부문이었다. 별도로 일본의 쇼와덴코의 지분 5.69%를 1700억 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쇼와덴코는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로, 지난해 롯데케미칼과 일본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두고 경쟁했다. 당시 롯데케미칼은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포기했고 쇼와덴코가 인수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쇼와덴코 지분 인수에 대해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선 신사업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밖에 롯데케미칼은 올해 상반기 두산중공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내놓은 두산솔루스와 글로벌 에너지화학기업 사솔 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역시 모두 무산됐지만 IB업계에선 이 시도 자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인수합병 추진 의지를 보이는 행보가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현재 회사가 핵심사업에서 경쟁력이 없거나, 업황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닌 만큼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거론되는 롯데케미칼 인수 대상 기업들이 분야가 다양한 데다 일부는 핵심 사업과 연관성이 적은 곳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수합병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황각규 부회장의 퇴진도 변수로 떠올랐다. 신동빈 회장이 직접 계열사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이를 독려하고 있지만 그룹 인수합병 전반을 이끌어온 인물이 물러난 데다 ‘컨트롤타워’로 통하던 경영혁신실도 축소된 만큼 당분간 인수합병 작업이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견조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수합병 기회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혀왔다”며 “아직 우선 목표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올해 초 인수합병과 관련해 세워둔 방침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좋은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