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리그 선택한 나를 칭찬한다
▲ ‘오렌지카운티 플라이어스’ 유니폼을 입은 김병현. 2년 만에 제대로 훈련에 시동을 건 그는 이곳에서 비로소 야구하는 행복을 찾은 모습이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 기자 |
―지난 17일 뉴포트피치스톰과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했다가 3이닝 동안 3안타 5실점으로 부진했었다. 독립리그에서 처음 선보인 김병현 선수의 투구 모습이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
▲어휴 그 게임은 시범경기가 아니었어요. 청백전 비슷한 거라고나 할까? 심판도 없었는데요 뭘. 포수가 판정을 하고 스리아웃돼도 볼 좀 더 던져보려고 아웃 아닌 걸로 하고 더 던지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지금 제가 경기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잖아요. 아직 갈 길도 멀고 몸도 온전히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떠난 이유가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서였나?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3월 16일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코치, 트레이너, 부단장, 에이전트, 그리고 제가 다 같이 모여서 얘기를 나눴어요. 얘길 해보니까 그 사람들은 ‘너한테 이런 이런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우린 너랑 같이 가고 싶으니까 네가 우리의 운동 방식에 맞춰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난 2년 동안 운동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의 팀 훈련 방식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여기선 운동하기 어렵다’라고 통보를 했어요. 40인 로스터에 올리고 안 올리고가 아니라 팀 운동 방식이 맞지 않아서 제가 그 팀을 나온 거예요. 구단에선 저한테 그냥 가자고 했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에이전트도 제 입장을 내세우기보단 구단 입장에서 얘길 했어요. 뭐랄까, 백인우월주의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선수의 상황을 배려하기보단 무조건 맞추라는 강압적인 부분이 그 팀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당시 마이너리그 캠프 시작일에 구단에선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등판시켰었다.
▲너무 황당했었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설명이 될까요? 2년 동안 군대 갔다 온 선수를 운동 제대로 시키지도 않고,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공을 던지라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캠프 시작하기 전에 딱 한 번 피칭해본 거 외엔 마운드에 서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날 이후 몸도 많이 안 좋더라고요. 제 몸이 제대로 피칭을 하기엔 준비가 덜 된 거였죠. 그때 운동을 체계적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어요.
―지난해 ‘멋진 엔딩을 위해 야구에 재도전하겠다’라고 말한 이후 엄청난 훈련을 소화한 걸로 알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해보니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
―2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사람이 독립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여기라고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어디서 뛰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공을 던지라고 하면 던질 수는 있겠죠. 그러나 빅리그 마운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공을 던지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제 스스로 만족 못하는 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다는 건 정말 창피스런 일이잖아요.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요. 공을 던지다 보면 근육통도 올 수 있고 스피드가 이전보다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 것에 실망하지 않고 야구장으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몸에 배어 있게 하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야구장 갔다가 야구 끝나면 다시 집에 가고, 이걸 반복하면서 야구장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야 하는 거죠.
―독립리그에서 재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 많은 사람들은 김병현이란 선수가 과연 이전처럼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한다.
▲만약 야구를 안 좋아하고 농구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 존재가 그리 별스럽지가 않거든요. 한마디로 제가 뭘 하든 관심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전 남들 눈에 제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의식하고 살진 않아요. 무엇보다 제 자신한테 만족해야죠. 그것만 되면 모든 건 따라오게 돼 있다고 봐요.
―오렌지카운티 플라이어스 폴 애버트 감독과 어떤 인연이 있나.
▲오래 전에 재활하면서 알게 된 분이에요. 그 분도 투수 출신이고 또 부상도 당해봐서 투수들의 몸 상태에 대해 잘 알고 계시거든요. 저한테 2년 동안 운동을 안 했으니 차근차근 준비하라고 얘기하셨어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운동하는 게 좋겠다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정말 고마웠고, 마음 편히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더라고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다시 서는 게 꿈인가.
▲그렇지 않아요. 솔직히 빅리그 마운드도 별 거 없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애들보다 여기 독립리그에서 뛰는 애들 중에서 더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있어요. 실력이 좋고 안 좋고가 아니라 운도 많이 작용되는 거죠. 제가 독립리그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어떤 동기가 있어요.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거예요.
―자신과의 약속이라니? 어떤 약속인지 궁금하다.
▲그건 말씀드리가 곤란하고요(웃음).
―김병현 선수한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미국 마이너리그에 많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해 있다.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여기 선수들은 공을 던질 때 굉장히 편하고 쉽게 던져요. 그런데 한국 투수들은 힘들고 어렵게 던지거든요. 그렇게 공을 던지다 막상 미국에 오고 나면 미국 애들처럼 공을 던지더라고요. 보는 대로 자신의 폼도 동화가 되는 거죠.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 처음에는 잘하다가 1~2년 지나면 기량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에요. 미국 선수들 던지는 거 보면서, 운동 많이 안 시키니까 자기 관리도 안 되고…, 그러다 실력이 줄어드는 거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건 좋은데 한국에서 던졌던 스타일, 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추신수 선수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걸로 알고 있다. 주로 어떤 얘길 주고 받았나.
▲야구와 관련된 얘기는 거의 안 했어요. 사람 사는 얘기들을 나눴죠.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상처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신수도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그래도 신수는 가정이 있으니까 저보다 더 힘들지는 않았겠죠. 신수한테 크게 보라고, 너무 작은 데 연연해하지 말고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야구 잘하고 있는데요 뭘. 지금처럼만 계속 하면 신수가 훤해지지 않겠어요(웃음)?
―야구 그만두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말 제 자신한테 ‘야, 너 공 진짜 잘 던졌다’라고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그때 미련 없이 야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야구를 다시 하는 게 사이영상을 노리거나 빅리그 마운드에 도전하거나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좋은 컨디션으로 제 자신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공을 던진다면, 야구에 대한 회한을 갖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전 메이저도 마이너도 아닌 독립리그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지금 여기 속해서 뛰고 있는 데 대해 칭찬하고 싶어요. 이 선택은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역시 김병현이었다. ‘인간 김병현’이 아닌 ‘야구선수 김병현’에 대해선 지독할 정도로 냉정함과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공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허울을 벗고, 간식으로 5달러짜리 핫도그를 먹고 빨래 담당 직원의 부재로 덜 마른 유니폼을 입고 다닐 때도 있지만 독립리그에서의 김병현은 ‘행복’이란 단어를 안고 있었다. 멋진 엔딩을 위해 야구공을 다시 잡은 김병현의 존재 이유는 바로 ‘야구’였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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