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인물난… 하루 아침에 ‘풀썩’
▲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자민당은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
지난 3월 31일, 하토야마 총리와 당대표회의를 끝내고 나오던 자민당 총재 다니가키 사다카즈에게 한 일본인 기자가 자민당의 재정상태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금은 당의 재무상태까지 이야기하고 있을 여유가 없지만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간단히 대답한 뒤 ‘크라운(자민당 총재가 타는 도요타의 세단)’에 올라타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자민당이 채무압박을 견디지 못할 경우 그가 타는 크라운은 차압대상 일순위가 될 것이다.
자민당의 재정적 어려움은 <주간포스트>에서 입수한 ‘자민당 2010년 결산보고서’에서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올해 1월 당대회에서 승인된 정식 문서로 릿교대학법학부 교수이자 세리사인 우라노 히로아키는 보고서에 대해 “자민당을 기업이라고 치면 채무가 자산을 상회하는 채무초과 상태”라고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자민당이 파산상태에 이르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아소 정권 발족 직후인 2008년 10월에 일본 3대 은행으로부터 25억 엔(약 300억 원)씩 총 75억 엔(약 900억 원)을 빌리면서부터다. 당시는 아소 내각의 해산을 검토하고 있던 시기로, 정권유지를 위해 총선거에 모든 것을 내건 일종의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2009년 총선거를 위해 빌린 추가자금까지 합치면 약 119억 엔(약 1415억 원). 자민당은 총선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시켰다. 광고 활동비, 후보자들을 위한 교부금 등으로 쓰인 금액이 약 200억 엔(약 2400억 원). 하지만 선거결과는 대참패였다.
정권을 잃은 후 자민당의 재정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의석은 약 200석이 줄어들어 정당 교부금은 총선거 전에 비해 약 50억 엔(약 600억 원)이 줄었고, 정당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정치헌금도 끊겼다. 자민당 직원은 “아침에 나오던 도시락은 물론 각종 지원금이 사라졌다. 본부 화장실에는 휴지도 놓여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민당은 54년에 걸쳐 정권을 잡아온 거대 정당이다. 은행에 거액의 채무를 지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담보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만일 자민당이 파산한다면 경매로 처분될 자산으론 뭐가 있을까.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정치자금수입지출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는 자산은 66년에 세워진 9층짜리 당 본부 건물(9억 엔)과 당의 총재가 타는 도요타의 크라운 차(2001년에 구입. 현재 판매가능가 대략 900만 엔), 그리고 선거철에 거리연설 등에 쓰이는 차 8대가 전부다. 거리연설에 쓰였던 차는 9년 전 구입한 것으로 꽤 훼손된 상태지만 일본에는 별의별 마니아들이 다 있으니 모두 팔릴 것이라고 가정하고 금액들 다 합쳐도 10억 엔(약 110억 원) 정도에 그친다.
자민당 본부 내에 있는 ‘돈 될 만한 물건’ 하나하나 따져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총재 의자’다. 1966년 당 본부 건물을 신축할 당시, 우에노에 있는 공판장에 특수 주문해 제작한 검정 소가죽 의자의 가격은 무려 60만 엔(약 715만 원). 대졸 초임이 약 2만 4000엔(약 26만 8000원)받던 시대였으니 상당한 고가다.
감정사 이와자키는 “총재 의자는 일본에서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미 있다. 금방 팔릴 것”이라며 “전 총리들이 사용했다는 점이 가치를 높이는데 노벨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사용했다는 사실 등이 의자의 가치를 올린다”고 말했다. 감정사의 말을 빌려 총리 한 명당 평균 약 100만 엔(약 1200만 원)을 추가하면 대충 계산해도 약 2000만 엔(약 2억 4000만 원)이다. 거기에 책상도 약 1000만 엔(약 1억 2000만 원)의 가치는 있다고 한다.
자민당 총재실의 직원은 “총재응접실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화가 야스다 유키히코가 ‘야마토 타케루(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로봇)’를 그린 그림이 있다. 또 간사장실에는 일본 대표 서가인 가네코 오테이가 직접 쓴 180×90cm 크기의 ‘필승’이라는 글과 스즈키 료조가 그린 ‘오아라이해안의 일출’이 걸려져 있다. 그 외에도 총재 응접실에는 역대 총재의 초상사진과 각종 회담 당시의 단체 사진, 가족과의 사적인 사진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의 사적인 사진이 과연 얼마에 팔릴 수 있을까. 전문 감정가는 “야스다 유키히코의 그림은 2000만 엔(약 2억 4000만 원), 가네코 오테이의 글이 약 500만 엔(약 6000만 원), 스즈키 료조의 그림은 200만 엔(약 2400만 원) 정도다. 사진은 1만 엔(약 12만 원) 정도로 고이즈미의 사적인 사진이라 해도 1만 엔 안팎인 건 마찬가지다. 그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다면 10만 엔(약 120만 원)으로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자민당 본부에 있는 총재 의자, 그림, 단체사진까지 모조리 팔아도 1억 엔(약 12억 원)이 안 되니 채무 전액 반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자민당이 끝까지 채무액을 갚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민당이 ‘파산신청’을 하게 되면 민법상 그 연대 보증인인 오시마 타다모리 간사장이 채무를 떠안아야 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은행 관계자에 의하면 “자민당의 융자에는 간사장들의 연대보증을 받아오고 있지만 정말 변제가 어려울 경우, 금액을 연대보증인에게 요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파산을 목전에 둔 자민당은 금고가 텅 빈 채로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2007년 참의원 선거 때는 선거 비용 등으로 250억 엔(약 3200억 원)의 정치활동비를 썼지만, 올해의 수입은 3년 전의 반으로 줄어든 상태. 게다가 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큰 은행이라도 자민당에게 더 이상의 추가 융자는 무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한 입후보자는 “지난번에는 당으로부터 선거자금 등으로 3000만 엔(약 3억 600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후보 내정자들이 오히려 선거 준비 비용으로 100만 엔(약 1200만 원) 정도를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에 처한 자민당에게 한 줄기의 희망은 하토야마내각이 작년 연말,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채무금 변제를 유예시켜 주는 법안이다. 가메이 시즈카 금융재무상은 “그렇게 곤란하면 지불 연기를 신청하는 것이 어떨까. 나는 속 좁게 자민당은 법안에 반대했었지 않았냐는 말은 덧붙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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