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부러웠다. 하는 수 없이 군대에 가야 한다면 방위병이 되고 싶었다. 밤이면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내 차례는 아니었다. 입대 전 심한 간염을 앓았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다. 그런데도 신체검사에서 ‘갑종 일급’이라는 최고의 병사자격을 받았다.
엄상익 변호사
장교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집안이 좋은 친구들은 서울 부근에서 근무했다. 나는 최전방 철책선 부대로 밀려갔다. 눈 덮인 전선은 수은주가 섭씨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순찰을 돌면서 흙구덩이 속에서 짐승같이 웅크리고 있는 병사들에게 한마디씩 물어보았다.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농사짓다가 군대 왔는데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여기 아니면 어딜 가겠슈?”
대부분 병사들의 말이 비슷했다. 그들의 마음 깊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은근한 분노였다. 어느 날 사단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법무부 장관 아들이 여기에 왔어. 그런데 한 달 만에 다시 서울근교 부대로 빼달라는 은밀한 청탁이 왔어. 이거 참. 우리와 마주한 인민군 사단을 보면 당 간부의 아들들이 최전선에 나와 선봉이 되어 근무하고 있어. 제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것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그 법무장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장관을 그만둔 후에도 큰 부자로 존재했던 분이다. 군에 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이 언론의 지면을 덮고 있다. 불공정이 일상이던 나의 군대 시절을 떠올리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들이 군 복무 중 무릎을 다쳐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3개월 안정치료가 필요했지만 한 달을 못 채우고 부대로 돌아갔고 절차를 어긴 점도 없다고 했다. 어둡고 침울했던 시대에 묵인되던 일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고위층의 작은 행위 하나가 불씨가 되어 인화성 높게 깔려 있는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의 모녀가 한 교만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대통령이 무너져 내렸다. 추미애 장관 아들 문제의 본질은 아들보다는 그가 장관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당 대표나 장관의 지위에서 압력성 청탁을 한 건 아닌지, 공적인 임무를 맡은 보좌관에게 사적인 아들의 일을 처리하도록 한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나는 죽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사건의 변호인이었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아버지가 서울시장이기 때문이었다. 공개검진을 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시장이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면 수십 번이라도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진실과 겸손을 이길 적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추미애 장관의 국회 답변이 있고 입장문도 나왔다. 추 장관은 입장문에서 자신은 살아오면서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정직성과 업무적 소신의 화신이었다. 보통의 엄마들은 군에 간 아들이 좋은 곳에 배치받기를 청탁하고 싶고 아프면 애타게 휴가연장을 부탁한다. 엄마가 국회의원이면 보좌관에게 그 일의 처리를 맡길 수도 있다. 법무부 장관은 그런 점들을 모두 부인한 것 같다.
실수 없는 인간이 없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사실대로 얘기하고 용서를 구하면 납득할 사항이다. 문제는 납득하기 힘든 논점을 변경하는 답변과 엉뚱한 검찰개혁 사명을 내세워 안 들어가도 될 수렁으로 빠져드는 점이다. 잘못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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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