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장은 천안함의 피습과 승무원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없다. 실은 그는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했고 덕분에 생존자들이 모두 구조되었다.
북한에 대한 편향으로 판단이 흐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번 사건의 원인은 처음부터 뚜렷했다. 북한의 도발이 아니면, 큰 군함이 갑자기 두 동강 나서 침몰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증거들마다 북한의 손길을 가리켰다.
그러나 유족들 가운데 북한의 야만적 행위를 규탄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책임이 우리 해군에 있다고 믿는 듯했으며, 살아 돌아온 승무원들을 무슨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대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나? 근본적 원인은 우리 시민들의 정부와 군에 대한 믿음이 아주 얕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정부 발표를 불신하고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한 제일야당 국회의원들은 이런 불신이 넓고 깊다는 것을 괴롭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직접적 원인은 현 정권의 잘못된 대응 방식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북한의 연루가 거론되는 것을 꺼렸다. 심지어 이 대통령이 국회에서 증언하던 국방장관에게 메모를 보내서 솔직한 발언을 막기까지 했다.
이런 태도가 오래 이어지자, 피해자들은 많은데 눈에 뜨이는 용의자는 없는 상황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선 유족들과 시민들의 가슴마다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가 배출될 곳이 없다. 그래서 이내 눈에 들어오는 함장과 해군에 대해 발산되었고 궁극적으로 국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북한으로 향해서 우리 사회를 결집시킬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분노가 오히려 안으로 향해서 분열을 깊게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북한의 연루 가능성을 축소하려 한 까닭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북한의 소행임이 확실히 증명되어도 우리로선 응징할 길이 마땅치 않다. 군사적 응징은 너무 위험하다. 국제 사회에 호소하는 길이 합리적이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릴 터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응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체면과 권위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어느 길을 고르든 우리로선 손해를 보게 된다.
이처럼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 정부로선 아주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북한의 연루가 드러나는 시기를 되도록 늦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나름의 위험이 따른다. 유족들과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의감과 애국심의 거센 물살이 흐를 곳을 마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결식에서 해군 참모총창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해서 추상적 다짐으로 끝낸 대통령의 입장이 곤혹스러워지는 상황까지 나왔다. 이제 이 대통령은 되도록 빨리 이런 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시민들 가슴 속 거센 감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소설가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