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세계 각국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주요 국가들의 재정악화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근본적으로 세계경제가 국제적 재정위기의 사슬을 끊으려면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재정적자를 막는 혁명적 수준의 재정개혁이 필요하다. 여기에 성장동력을 회복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세원을 확대하는 것도 절실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쉽지 않다. 이미 유럽연합에서는 노조의 파업사태가 잇따르는 등 거부반응이 강하다. 이런 상태에서 이번에 조성된 구제금융기금이 소진될 경우 유럽발 재정위기는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부재정은 안전한가? 한마디로 그리스 재정위기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재정지출 수요는 큰데 세수가 불안하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4대강 정비 등 국책사업을 계속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빈곤층과 실업자가 많아 복지지출도 늘릴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감세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낮아 세원 확대가 쉽지 않다.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정부부채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정부부채는 359조 원으로 GDP대비 33.8% 수준이다. 주요 20개국(G20) 국가평균 75.1%의 절반 정도다. 그러나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의 빚을 합하면 실제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부채는 공식 발표치의 두 배가 넘는다. 더욱 문제는 정부부채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298조 원이었던 정부부채가 올해 407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부채는 누적되기 시작하면 통제가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천수답 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그리스 사태에도 외국자본이 매도세를 보이자 주가가 100포인트나 떨어지는 등 극도의 불안을 드러냈다. 현 상태에서 정부재정이 계속 악화되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증권시장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경제를 다시 위기상태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재정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즉 재정지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논란이 많은 정치적 성향의 재정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신산업 발굴,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에 지출을 늘리는 등 재정지출구조를 생산적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서 지하경제를 척결하고 불필요한 감세정책은 지양하여 세수를 늘리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경제가 해외발 재정위기를 선제적으로 막아내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전략을 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