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고향이었던 내 짝이 가보자고 해서 다니기 시작한 그 대학부는 팍팍했던 대학생활의 윤활유가 되고 있었다. 나는 모이면 부르게 되는 찬양이 좋았고, “형제”, “자매”라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얼어붙은 정국, 독재의 무서움을 비판하지 않고도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았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이 첫사랑인 사람들의 심지를 본 듯했다. 무언가 중심을 지키지 않으면 증오나 무력감이 생을 통째로 삼킬 80년대였다, 더구나 그 때 우리는 젊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어린, 틴에이저였다.
11월이었던 것 같다. 낙엽 떨어진 거리를 두꺼운 외투자락을 여미며 걸었으니까. 대학부에도 선거바람이 불었다. 누가 누군지도 파악되지 않은 내게도 ㅁ은 괜찮은 후보였다. 그 친구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류의 책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런 친구였다. 선배들이 추천한 후보 둘 중에 그 친구가 있었고, 나도 당연히 ㅁ이 회장이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또 한 후보는 ㄱ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장님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그 선한 눈빛과 절제된 말투에 매료되어 짝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빛이 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ㄱ은 ㅁ 못지않게 우리의 회장으로 손색이 없는, 정말 괜찮은 친구였으나, 내 짝사랑은 그 친구가 회장으로 괜찮은지, 아닌지 찬찬히 뜯어보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를 볼 때마다 그저 심장만 팔딱팔딱 뛰었으니까.
투표하는 날, 나는 누구에게 투표했을까? 나는 ㄱ에게 투표를 했다. 내가 그를 짝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ㅁ이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너무 많은 표차로 ㅁ이 당선되면 ㄱ이 무색해질까봐 표차를 줄여주기 위해 ㄱ에게 표를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ㄱ이 회장이 되었다. 나는 놀랐다. 진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표차였다. 3표차였다. 무효표가 2표 있었기 때문에 내가 ㅁ에게 표를 던졌다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표를 던졌을까, 아직까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사실 교회 대학부 회장은 누가 해도 된다. 그러나 그 때 내가 배운 것은 투표의 힘이었다. 그 때 나는 한 표가 무섭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것이었다. 한 표는 시시하지 않다. 어떤 생각으로 표를 던졌든 그것이 바로 민심이라 읽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6월 2일은 투표하는 날이다. 단체장이든, 교육감이든 우리나라는 그런 리더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민주주의, 지방자치라고는 하지만 선거를 빼면 국민이나 주민이 주인이란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이상한 민주주의다. 대신 리더의 기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참 많다. 상대적으로 국민이, 혹은 주민이 힘이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에 목청을 높여야 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투표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국민 혹은 주민이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치니까. 더구나 이번에는 8표나 되지 않는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