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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삼성역 인근에 위치한 트래픽ITS. 사진의 건물 9층에 입주해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한 기업은 예외다. 트래픽ITS라는 회사다. 불과 6개월 전 반기 보고서에서만 하더라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양호한 기업으로 투자추천을 받던 기업이 퇴출 기업으로 판명났다.
트래픽ITS는 도로교통정보 파악용 차량검지기 제조업체로 지난 2000년 매출액 증가율 107%, 2001년 63.9%, 2002년 80.8%, 지난해 6월 반기보고서에는 75.7%를 기록하는 한편, 매해 1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재무제표를 금융감독원에 보고해왔다. 지난해 6월 M증권사는 트래픽ITS가 재무안정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성장성 수익성이 양호하다며 목표주가를 4천원(액면가 5백원)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당시 트래픽ITS의 주가는 2천원대 초반이었다.
때문에 트래픽ITS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은 코스닥위원회의 퇴출 결정이 내려진 뒤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트래픽ITS와 관련된 증권가 보고서나, 회사가 발표한 재무자료, 지난 몇 해 동안 회계법인이 감사했던 자료들을 믿고 투자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트래픽ITS의 소액주주들은 퇴출 명령이 난 뒤 회사를 찾아가 트래픽ITS의 오너인 이유봉 사장을 면담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등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사장의 발언 내용. 그는 소액주주들과의 면담에서 “적정 의견이 나올 줄 알았다, 내 주위에도 4백만 주가 넘게 우리 회사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회계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소액주주들은 트래픽ITS의 코스닥 등록 때 주간사 업무를 대행했던 D증권사와 최근 5년 넘게 트래픽ITS의 회계 감리를 맡아왔던 W회계법인에 대해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W회계법인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회계 감사를 맡아오면서 계속 적정 의견을 내고, 트래픽ITS의 순이익이나 매출액 부분을 모두 인정했다가 어떻게 6개월 만에 ‘의견 거절’을 낼 수 있는지, 그동안 회계 감사는 제대로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자 해당 회계법인이 올해 갑자기 ‘면피성’ 의견 거절을 낸 게 아니냐는 것.
W회계법인이 감독원에 제출한 트래픽ITS에 대한 감사보고서에는 회계법인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표현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은 감사보고서에서 트래픽ITS가 제출한 회계보고서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장부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소액투자자들은 황당해 하고 있다. 코스닥 등록 이후 해마다 매출 성장률이 50% 이상이고, 10억원대의 영업이익이 난다는 장부를 감사하고 ‘적정’하다고 의견을 냈던 회계법인이 어떻게 6개월 안에 ‘이 회사의 장부는 전혀 믿을 수 없어 의견을 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냈던 감사보고서도 믿을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소액 투자자들의 항의에 대해 W회계법인은 “반기보고서는 회사에서 발표한 내용이 그대로 가는 것으로 감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12월결산보고 때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했던 2백5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 자금이 회사에 들어와 어떻게 쓰였는지 증빙 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트래픽ITS쪽에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견 거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과거 2000년, 2001년 감사보고서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W회계법인이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W회계법인은 “트래픽ITS의 영업적 측면은 둘째다. 자금면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유상증자 자금이 문제다. 과거의 문제는 지금 논하지 말자”고 말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문제의 유상증자 자금은 지난해 7월 이후 수차에 걸쳐 진행된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가리킨다. 트래픽ITS는 수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단행해 2백50억원 정도의 현금이 유입됐다. 하지만 이 자금의 용처를 트래픽ITS의 경영진들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W회계법인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트래픽ITS에선 부채 탕감 등에 썼다고 소액주주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6월만 해도 자본금 31억3천만원에 불과하던 트래픽ITS가 유상증자를 통한 신규자금이 2백50억여원이 들어왔음에도 부채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점을 들어 그간 트래픽ITS 내부에 비밀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특히 2대 주주인 체이스벤처와의 석연치 않은 금전거래도 지적을 받고 있다. 체이스벤처는 지난해 7월 제3자 배정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제3의 투자자로부터 50억원을 모아 트래픽ITS에 투자하는 중간 모집책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체이스벤처가 대주주인 K상호신용금고의 자금여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예보에서 50억원에 달하는 트래픽ITS의 유상증자 주식을 가압류했다.
그러자 애초 트래픽ITS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체이스벤처에 돈을 냈던 투자자들이 트래픽ITS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트래픽ITS는 대주주인 체이스벤처에 56억원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증자 자금 2백50억여원 중 1백6억원은 대주주인 체이스벤처로 인해 트래픽ITS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날아가 버린 셈이 된 것이다.
이런 자금 사용 내역도 소액 투자자들이 퇴출 공시가 난 뒤 밝혀낸 것이다. 때문에 코스닥위원회 등 감독당국의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증자자금 사용 내역을 설명하라는 소액주주의 요구에 대해 트래픽ITS의 이유봉 사장은 부채 상환 등에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W회계법인은 재무제표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1일의 소액주주와의 만남 시간에 이 사장은 “나스닥에 등록된 팬바이오텍과 합병하려는 계획만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탄생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회계법인이) 죽이냐”고 오히려 회계법인을 탓해 소액주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나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트래픽ITS의 공시 담당자는 “(문제의 이 사장 발언이) 등록이 한 번 보류됐다는 말이 와전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때문에 소액주주들은 “회사도, 장부도, 회계법인도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국 금융당국이나 회계법인은 트래픽ITS가 급격하게 실적이 나빠지고,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퇴출시킨 뒤 소액주주들만 남기고 빠져나간 셈이다. 트래픽ITS에 대한 경보는 지난 2월 말 한국신용평가(한신평) 보고서가 유일하다. 한신평이 트래픽ITS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며 신용등급을 내린 게 전부였다. 이때도 트래픽ITS측에선 한신평의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트래픽ITS의 감사보고서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일부 소액주주들도 회사의 주장에 동조해 한신평에 항의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허점에 대한 책임 공방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주목된다.
한편, 지난 2일 트래픽ITS는 W회계법인에 재심을 요구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