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주연 아닌 조연…후배들아, 팍팍 밀어줄게!
▲ 이운재 선수. 연합뉴스 |
그리스전을 맘 편하게 즐기면서 관전했다면 아르헨티나전은 90분 내내 심하게 마음 졸이며 지켜봤고 90분이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자꾸 전광판 시계만을 쳐다봐야 했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기였습니다.
경기 후 많은 기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아르헨티나를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이기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래도 비기거나 1, 2점차 승부를 벌인다면 다음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란 기대를 했던 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그렇게 심한 점수 차로 대패할 줄은 예상 못했거든요. 선수들이 워낙 자신감에 차 있었고 아무리 아르헨티나가 우승 후보로 꼽힌다고 해도 실수와 기회를 노린다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던 거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메시, 테베스의 발에 공이 닿기라도 하면 바로 골로 이어질 것 같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이전 박지성 선수가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개인기가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는데 직접 현장에서 지켜본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개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공이 발에 붙어다니는 듯했으니까요. 완벽한 패배! 이 말 외엔 더 이상 설명할 말이 없을 것 같네요.
▲ 김남일 선수. |
다음날, 루스텐버그 올림피아파크 스타디움에는 23명의 태극전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회복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그리스전 이후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전날 굳게 입을 닫았던 박주영 선수가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얼굴에는 비장함까지 서려 있었습니다.
▲ 안정환 선수 |
마지막 남은 나이지리아전, 선수들이 ‘올인’하겠다는 각오는 환영하지만, 너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칫 잘못하면 더 긴장하고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허정무 감독이 주장한 ‘유쾌한 도전’을 위해서 조별리그 3차전도 그리스전처럼 우리만의 플레이를 펼쳐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후회없이, 미련없이, 잘 싸웠다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주 ‘남아공 러브레터’는 어디에서 쓰게 될까요. 기자 또한 원정 16강 진출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청용 선수처럼 제가 준비해온 샴푸가 다 떨어질 때까지 남아공 월드컵 무대를 누비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입니다.
남아공 루스텐버그=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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