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시 구절을 자주 읊을 법한 정치권 인사들이 있다. 바로 지난 대선 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당선을 위해 ‘분골쇄신’했던 이 전 총재 측근인사들이다.
이 전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기약 없이 미국으로 떠났지만 정가에선 이들 측근인사들의 행보를 예의 주시해왔다. 이 전 총재의 정치적 비중이 컸던 만큼 이들의 행보가 곧 ‘창심’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는 시각 탓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봐선 이러한 전망은 다소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사들이 각자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를 쫓는 ‘개별적’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를 보좌했던 인사들 중 중진격인 특보 출신 인사들은 일부 한나라당 당권 주자들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력 당권 주자인 최병렬 의원측을 돕는 한 인사는 “이 전 총재 특보진 중 알짜들은 죄다 최 의원측 일을 돕는 중”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2차장 출신으로 이 전 총재 언론특보를 담당했던 이병기 전 특보를 비롯해 이 전 총재 핵심참모였던 몇몇 특보 출신 인사들이 현재 최 의원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 의원의 한 측근인사는 “현재로선 이병기 특보 이외에 다른 인사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 만약 이름이 알려지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이 우리 일을 돕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 밝혔다. 윤여준 의원도 최 의원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다.
▲ 윤여준 의원(왼쪽), 금종래 전 특보 | ||
금 전 특보는 단국대 선배인 윤여준 의원 라인의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윤 의원의 추천으로 이 전 총재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 대표측 관계자는 “이번 당권 경쟁에 ‘창심’은 없다. 각별한 사이인 윤 의원과 금 전 특보가 각자 개인 소신에 따라 다른 길을 가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른바 ‘창심’에 대해서는 최 의원측 관계자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 전 총재의 특보 출신 인사들 중엔 강재섭 의원을 돕는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특보단의 좌장격이었던 양휘부 전 특보는 최근 방송위원으로 임명돼 당분간 정치권에서 거리를 두게 될 전망이다.
한편 특보 출신 인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30∼40대 보좌역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내년 총선을 향해 뛰고 있다. 이 전 총재의 보좌역을 지낸 인사 8명 중 정찬수 조해진 김해수 구상찬 홍희곤 김성완씨 등 6명은 현재 한나라당 부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찬수 부대변인은 충북 제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조해진 부대변인은 경남 밀양을 다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당 개혁을 위한 밀알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차명진 전 보좌역은 얼마 전 경기도청 공보관으로 들어가서 손학규 지사와 손을 맞추고 있다. 손 지사가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것을 볼 때 차 전 보좌역 영입은 ‘큰일’을 위한 공보기능 강화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 전 총재 관련 업무를 계속 맡고 있는 측근 인사들도 있다. 현재 모 당권주자측에서 일을 돕는다는 소문이 나 있는 이종구 전 특보는 이를 부인하며 아직도 이 전 총재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도맡고 있다.
외교안보 특보를 맡았던 박신일 전 특보는 이 전 총재 미국생활과 관련한 보조업무를 하고 있다. 이 전 총재 수행비서를 맡았던 이채관 부장은 현재 이 전 총재 국내 재산관리 등을 하며 사실상의 비서 업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