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선수단 손발 따로 노네~
▲ 오 노~ 나이지리아 사니 카이타가 지난 17일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레드카드를 받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AP/연합뉴스 |
승리 때마다 10만 달러씩?
하지만 나이지리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대표팀 선수단과 축구계 고위층 간에 ‘신뢰’가 바탕이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국 축구협회와 ‘슈퍼이글스’란 애칭의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한 쪽은 지킬 수 없는 약속만 남발하는 데다 다른 한 쪽은 매번 똑같은 공약(公約)에 속아 온 터라 서로 절대적인 믿음 대신 냉소만을 보내고 있다.
2006독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조별리그 1차전에서 격돌한 토고가 밟았던 전철을 이번에는 나이지리아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경기 출전 및 승리 수당 등 보상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대회에 나섰던 토고는 한국에 패하는 등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이번 대회만 볼 때 나이지리아도 마찬가지. 상금은커녕 지원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굿럭 조너선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를 꺾으면 선수단에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정부나 축구협회 측이 마련한 자체 지원금이 아닌 재력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실제로는 ‘나올’) 돈이었다. 아비드 마크 나이지리아 정부 상원의장도 “나이지리아가 승리할 때마다 10만 달러씩 풀겠다”고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 뱅가드 등 나이지리아 언론들은 ‘주지 못할 상금만 무작정 내걸게 아니라 당장 선수들을 위한 물품 지원부터 잘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이후 나이지리아는 모든 게 엇박자였다.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할 때는 또 다른 후보자였던 잉글랜드 출신 명장 글렌 호들 감독 에이전트가 폭로한 뇌물 수수 스캔들이 빚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라예르베크 감독을 데려온 뒤에는 선수단 상견례조차 하지 못했다. 예비 엔트리를 발표했을 때는 ‘(라예르베크) 감독이 선수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강한 비난을 받았다.
영국 런던과 오스트리아 바텐스를 오가며 평가전을 치른 후 남아공에 입성한 뒤에는 더반 시내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가 ‘파리와 모기가 많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무려 25만 달러(3억 원) 위약금을 물고 더반에서 200km 외곽에 떨어진 도시로 숙소를 옮기는 촌극을 빚었다. 물론 이 위약금을 제대로 지불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진 않는다.
라예르베크 감독은 “현재 모든 게 만족스럽고 외부 걱정과는 달리 나 역시 모든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알고 있다”고 FIFA 닷컴을 비롯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선수를 잘 알고 있다’는 대표팀 사령탑의 코멘트 자체가 코미디라는 평가다.
▲ 느왕쿼 카누. |
한국이 중국 및 동남아 등지의 불법 체류자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남아공은 매년 끊임없는 내전으로 인해 유입된 엄청난 숫자의 나이지리아 불법 체류자들 탓에 한숨을 내쉰다.
같은 아프리카라고 해도 ‘환영받지 못한 자’ ‘환영받을 수 없는 자’의 전형이 남아공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나이지리아인들이란 얘기다. 현지 교민들은 “나이지리아인 불법 체류자들은 남아공 치안 당국의 집중 단속대상 1순위”라며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실제 남아공 정부에서도 나이지리아인 불법 체류자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약 밀매, 강간과 납치 및 강도, 소매치기 등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르는 범죄자들 중심엔 나이지리아인 불법 체류자들이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전이 열릴 더반이 가장 불안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더반은 요하네스버그와 함께 나이지리아 인들이 가장 많이 머물고 있는 지역이란다. “괜히 이기고 총 맞느니 차라리 집에서 TV로 응원하자”는 얘기가 교민들 사이에서 나돌 정도라니 단순히 원정 경기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
나이지리아 선수단이 굳이 더반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옮긴 것도 불안한 치안 때문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실제로는 축구에 열광하고, 결과에 극성맞기로 소문이 난 자국의 부끄러운 교민(불법 체류자)들과 연계되기 싫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모든 게 허술하고 주변 정황마저 좋은 편이 못돼도 나이지리아는 이번 월드컵 모토를 ‘국민에게 희망을’이라고 정했다. 협회와의 갈등은 별개의 얘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지병으로 반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해오던 우마르무사 야라두아 전 대통령이 지난달 타계한 것. 야라두아 전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사상 첫 민간인 대통령으로서 재산을 공개하는 깨끗한 정치를 표방했고,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국민적 신망이 두터웠지만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부정과 부패 등 예전의 악습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심지어 잠잠해졌던 뿌리 깊은 분쟁 조짐까지 보이며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30대 중반이란 많은 나이에도 불구, 심장 판막 수술 후유증을 극복하며 오뚝이처럼 일어선 ‘국민 영웅’ 느왕쿼 카누는 BBC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우린 (월드컵에서) 잘할 이유가 있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첫째는 지친 국민들을 위해, 둘째도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결국 축구가 희망이란 의미다.
극심한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가 2002한일월드컵 선전을 통해 화려한 부활을 알린 한국 축구의 신명났던 8년 전을 기억할 때, 사상 첫 아프리카 대륙 월드컵 무대라는 점과 축구를 통한 국민적 자존심 회복이란 측면에서 마냥 나이지리아를 쉽게 볼 수만은 없다. 이렇듯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것이 나이지리아 축구의 현실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