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술 이사(왼쪽),김정태 행장 | ||
최근 금융권의 눈과 귀가 온통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에게 쏠려 있다. 정 전 회장이 국내 최대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의 이사회 의장으로 내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현 김상훈 이사회 의장의 후임으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국민은행 사외이사)을 내정했으며, 곧 공식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것.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정 전 회장의 이력에 ‘현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이라는 타이틀이 버젓이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 국민은행이 공식 창구를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나서 궁금증을 낳고 있다.
국민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정 전 회장의 의장 내정설을 부인했다. 이사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국민은행의 양재영 차장 역시 “아직 이사회가 열리지도 않은 상황”이라며 “누가 그런 소문을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 사실을 부인했다.
이렇게 되자 업계에서는 정 전 회장의 내정 여부를 떠나 이런 얘기가 나온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다.
더욱이 내정자로 거론되고 있는 정 전 회장의 다소 ‘튀는’ 이력 탓에 업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국정원(과거 중앙정보부)에서 20여 년을 근무한 공무원 출신. 그는 국정원에서 퇴사한 이후 마흔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 실패를 거듭하다가 지난 1983년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을 세워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난 1999년에는 젊은 사람들의 주무대로 알려진 IT분야로 관심을 돌려 인터넷 포털업체 라이코스코리아를 설립, 대표적인 벤처 1세대로 꼽혔다.
당시 그는 대표적 벤처인이자, 성공한 기업가로 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실질적인 경영활동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00년 이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주로 학계나 연구기관 등에 여러 직함을 갖고 활동을 해왔다. 그는 현재 한국경영자협회포럼 회원, 벤처농업대 학장, 동원증권 사외이사, 국민은행 사외이사 등을 맡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그가 단순한 사외이사 수준이 아닌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으니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이는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이라는 자리가 은행 경영과 직접 관련된 자리는 아니지만 그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
이사회는 주총 소집 및 안건 상정, 경영일반에 걸친 사항, 조직 및 임원에 관한 권한 등을 맡고 있다.
특히 합병 전 국민은행장이었던 김상훈 회장이 그동안 맡아왔을 정도로 이사회 의장은 상징적인 의미도 큰 자리.
정 전 회장 내정설이 흘러나온 이유는 뭘까. 국민은행의 설명에 따른다면 정 전 회장의 내정이 공식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국민은행 이사회 회의가 오는 4월 말로 예정돼 있기 때문. 현재 국민은행 이사회는 총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상임이사 4명과 사외이사 11명이 그 멤버다.
사내이사로는 김정태 행장을 비롯, 이성남 감사, 맥킨지 부행장, 이성규 부행장이 등기임원이다. 사외이사로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과 김선진 유한화학공업 회장, 정동수 환경부 차관, 리처드 엘리엇 컨설팅회사 회장, 윤경희 ING증권 대표이사, 남승우 풀무원 대표이사, 차석용 해태제과 대표이사, 버나드 블랜 스탠퍼드대 교수, 김기홍 전 금감원 부원장보, 박은주 (주)김영사 대표,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서경배 (주)태평양 사장 등이 있다.
이들 중 정 전 회장은 지난 2000년 국민은행(합병 전 주택은행) 사외이사를 맡았고, 지난해 3월 다시 내정돼 사외이사를 두 차례 연임했다.
국민은행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사외이사 중 가장 연장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사회 의장 얘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것.
그러나 업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정 전 회장의 내정설에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깊숙이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김 행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생각도 했으나, 모양새가 좋지 않아 사외이사 중 자신과 가장 친분이 두터운 정문술 전 회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적극 추천했다는 얘기다.
정 전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경우 사실상 김 행장은 이사회와의 불협화음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김 행장과 정 전 회장은 행장-사외이사 관계를 뛰어넘는 무척 돈독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연유로 인해 친분을 쌓게 됐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김 전 행장이 동원증권 사장을 맡았을 무렵부터 정 전 회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일단 두 사람은 호남 출신. 정 전 회장은 전북 임실 출신이고, 김 행장은 전남 광산 출신이다. 특히 정 전 회장의 다양한 사회 경험을 미뤄보면 김 행장과 행보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정 전 회장은 김 행장이 재임중이던 지난 2000년 2월부터 주택은행 사외이사를 맡기 시작했고, 이후 2001년 5월에는 동원증권 사외이사도 맡게 됐다. 김 행장은 지난 1997~98년 동원증권 사장, 98~2001년에는 주택은행장을 역임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사외이사 임기가 끝난 지난해 3월에도 다시 유임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경우 합병 전부터 사외이사를 역임해 여러 이사들 중 가장 실세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무렵 주택은행(현 국민은행)과 금전 거래를 맺기 시작해 그때부터 김 행장과 친분을 쌓았다는 얘기가 정설로 돌고 있다고 전했다.
어쨌든 정 전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경우, 김 행장으로서는 이사회와의 마찰 부담이 한결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