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왜 내 등이 터지냐고요~
▲ 영화 <상사부일체>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15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63.2%가 ‘사내에 파벌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게다가 파벌이 존재한다고 답했던 직장인들의 90% 이상이 그 파벌로 인해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파벌의 존재가 흔한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성 직장인들이 많은 회사에는 유독 편 가르기가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보통신 업체에 근무하는 M 씨(여·28)는 세 살 많은 선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분란 만드는 게 싫어서 좀 따라다니다가 점점 정도가 심해져서 서서히 빠져나왔어요. 그랬더니 업무를 빼앗는 일도 많고 본인이 잘못한 일도 제 잘못으로 몰아가더군요. 자기 그룹 소속이 아니면 밟을 궁리만 하면서 남자 직원들에게는 어찌나 잘하는지…. 한번은 여러 명이 점심을 먹는데 그 선배가 다른 사람들 흉을 보더라고요. 누가 회사 돈을 썼다느니, 어느 여직원은 매일 놀기만 하고 이말 저말 옮기기만 한다느니, 누구는 전 남자친구 냉정하게 버리고 회사 사람이랑 사귄다느니 하면서요. 그게 다 본인 이야기거든요. 어디 가서 내 이야기도 저렇게 꾸며대겠구나 싶어서 그날 밥이 안 넘어갔어요.”
M 씨는 이런 사정도 모르고 그 선배가 시원하고 화끈하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쓰리다고. 그는 “그냥 참는 수밖에 없어 일단은 가만있는데 그렇게 날뛰다가 언젠가는 당할 날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털어놨다. 의류회사에 다니는 J 씨(여·29)도 직장 내 파벌 때문에 신입 시절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유명한 의류 브랜드만 몇 개가 있는 큰 회사에 취업해서 기뻤던 것도 잠시. 디자인실의 텃세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단다.
“한마디로 명문 여대 출신 아니면 취급을 안 했었어요. 그쪽 출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 챙겨주기 바빴죠. 다른 학교 출신들은 대놓고 무시했고 몰려다니면서 명품으로만 쫙 빼입고 다니더군요. 제대로 꾸미고 회사에 가지 않으면 품위 떨어진다고 대놓고 뭐라고 하기도 했죠. 그 파벌 멤버는 대체로 좀 부유한 집안 딸들이었는데 사는 정도도 따졌어요. 잘나가는 여성복 브랜드에서 근무한다는 프라이드에 학교 괜찮지, 집 잘 살지 저 같은 서민들은 낄 엄두도 못내는 집단이었죠.”
J 씨는 결국 1년 정도 근무하다가 이직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큰 회사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그는 “지금 회사 디자인실은 서로서로 잘 챙겨주고 파벌 같은 건 생각도 안 한다”며 “처음 그 회사에 다닐 때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고 매일 매일이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라면 파벌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L 씨(29)의 고민을 들어보자.
“실무에 강하고 윗분들한테도 인정받는 차장님과 그런 차장님을 불편하게 여기는 부장님이 은근히 대결 구도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부장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 직원 이미지라는 거죠. 이렇게 가다가 나중에 차장님이 승진하거나 영향력이 더 커지면 제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많지 않겠어요? 그래서 중립을 지켜야 할지, 라인을 갈아타야 할지 고민입니다. 어느 특정한 상사와 친분을 유지하기보다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라는 선배의 조언이 있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유통회사 새내기 P 씨(여·27)의 고민도 비슷하다. 노선을 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것.
“하루는 다른 부서의 부장님이 오시더니 저한테 우리 부서 부장님이 절 그만두게 하려고 하는데 뭐 밉보인 게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런 건 없고 다만 얼마 전 회식 때 가슴을 만져서 다음날 사과를 받았다고 했죠. 그 부장님이 말하길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으니 이번에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 부서 부장님을 몰아내는 데 협조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게 겁도 나고 윗분들 파벌 싸움에 제가 희생양이 되는 건 아닌지, 요새 계속 잠도 편히 못자고 있습니다.”
스포츠 용품회사에 다니는 H 씨(28)도 부서 간 파벌로 매일이 살얼음판 같다고. 기획팀인 그는 영업팀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저는 업무상 영업팀 사람들과도 자주 접촉해야 하는데 기획팀장이 영업팀장과 영역 싸움이 치열한 상태라 늘 눈치 보느라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영업팀 입장에서는 기획팀장이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사장님하고 해외출장만 자주 가면서 아부만 한다고 하고, 기획팀 쪽에서는 영업팀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만 걸어서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하죠. 저는 기획팀이지만 영업팀에 맘에 드는 좋은 분들이 많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윗분들 눈치가 보여서 조심조심 하고 있어요.”
한 심리학 전문가는 인간이 파벌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인간은 혼자 있으면 고독하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혼란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일단 모이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파벌은 인지상정이라는 얘기. 그 안에서 늘 고민하는 직딩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