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MBC ‘PD수첩’
“딱 당해보니까요. 막말로 보험사는 사기꾼이다. 정부의 허가받은 사기꾼이다.”
2019년 4월 17일 김용선 씨는 광주대구고속도로 사치 터널에서 연료 부족으로 정차된 차량을 발견했다. 평소 남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서기를 좋아해 ‘의인상’까지 수상했던 김용선 씨는 그날도 사고 안전 조치를 취하며 2차 사고를 예방했다.
그런데 김용선 씨가 차량을 밀어 이동시키고 있는 동안 덤프트럭 한 대가 김용선 씨를 덮쳤다. 사고 여파로 왼쪽 팔과 다리에 심각한 장해를 입은 김용선 씨는 가입했던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의료자문 의사의 소견서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근력 등급을 고려할 때 능동적 관절 가동범위 제한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1년 넘게 휠체어를 타며 병원 생활 중인 김용선 씨를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익명의 자문의의 소견이었다.
경주에 사는 김정완 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쪽 손과 발에 영구장해를 얻었다. 보험사에 장해진단서를 제출해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의료자문 의사의 소견서를 근거로 진단서 상의 장해율을 인정할 수 없다며 보험금 삭감을 통보했다.
사고 이후 생계가 무너지고 가족과 헤어지게 된 김정완 씨는 보험사 의료자문의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며 울분을 토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보험사 의료자문으로 인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건수는 3만여 건이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22개 생명보험사, 14개 손해보험사가 38만 523건의 의료자문을 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과잉청구나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보험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사에게 의학적 소견을 묻는 과정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의료자문을 악용하여 보험금 삭감 또는 부지급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보험금 청구가 들어왔을 때 보험금을 지급해주지 않는 비율, 즉 부지급율을 높이는 게 보험사들이 돈을 버는 핵심이에요. 보험사는 이 보험금을 부지급해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술을 쓰고 있어요. 그 여러 전략 중 확률이 가장 높은 게 뭐냐면 이 의료자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보험사 의료자문의는 환자의 개인정보인 진단서와 진료기록을 들여다보지만 환자는 보험사 의료자문의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보험사에서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의사의 정보를 철저히 감추기 때문이다.
취재 도중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자문의들의 신원을 파악해 그들의 입장을 들었다. 한 자문의는 자신이 작성한 의료 자문서는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없는 예비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자문서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되기도 한다는 것을 듣고 도리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보험사 의료자문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험업계 관계자들로 수소문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취재에 응한 전 현직 관계자들은 의료자문에 대한 충격적 사실을 털어놓았다. 일부 보험사 의료자문 업체에서는 보험사로부터 자문 내용을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18년 경력의 전직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 의료자문을 가리켜 “결론은 거의 다 맞춰진 것”, “답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라 말했다. 또 그는 의료자문을 믿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믿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보험금을 두고 벌어지는 보험사와 보험 소비자 간의 분쟁, 보험 소비자들이 알 수 없었던 보험사 의료자문의 뒷이야기가 공개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