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만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충격은 줄어들고 생각은 많아진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으로 불행해지는가? 젊은 날,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의 기대였다. 엄마는, 가족은 얼마나 이중적인가? 가족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위대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놓아버려야 할 때 놓지 못하는 애착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워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사진작가로 나오는 경수의 가족! 경수의 엄마는 동성애자인 아들을 도저히 용인하지 못한다. 돈도 많고 열정도 많고 체면도 중요한 엄마는 아들을 쫓아다니며 읍소에서 협박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아들의 성적 취향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들 잡는 귀신이 된 엄마와 심장병에 걸려버린 아버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지긋지긋한 이 땅 가족의 자화상이 아닐는지.
엄마의 불행과 아버지의 심장병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들 때문에 생긴 것인가, 아니면 아들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욕심과 집착이 만든 자업자득(自業自得)인가. 집착은 생각보다 무섭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생각보다 알아채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참 많이 듣지 않았는가. 사람에 대한, 명품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자식을 특별하게 만들려는 부모의 집착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스트레스 속에서 자기를 유폐시키거나 반대로 감각적 쾌락으로 도피하는지.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또 얼마나 꽉 찬 시간표에 맞춰 살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자기를 잃었는지.
이래저래 현대는 자기를 잃기가 너무 좋은 시대다. 박용하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가수 신해철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연예인 생활을 하다 보면 껍질을 쓰고 활동하기 마련인데 나중에는 그 껍질이 난지 내가 껍질인지 헷갈리고, 껍질이 갑옷처럼 두꺼워져 인생을 눌러버리거나 침식해 오면 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성공만이 진정한 성공인 양 호도하는, 삶의 껍질이 중요하다고 강요된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성공했다고 배울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웠다고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나이 들었다고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호기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열심히 종교생활을 한다고 영성이 깊은 것도 아니고, 농촌에 산다고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곱게 생겼다고 마음이 고운 것도 아니고, 매너가 좋다고 친절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상처인지도 모른 채 휩쓸려 살다가 한순간에 무너지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 한숨이 ‘나’의 삶의 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기를!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