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등 방식 무상감자 ‘지분율 유지’ 대주주에 유리·…관리종목 지정 부담 커 안건 통과 관측
감자란 쉽게 말해 회사 발행 주식 수를 줄이거나 액면가를 낮춰서 자본금을 줄이는 것이다. 줄어든 자본금만큼 감자 차익이 나오고, 이를 통해 장부상의 손실(결손금)을 털어내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용된다.
아시아나항공 감자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 2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이 56.3%를 기록했다. 연말 기준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주식 매매정지가 될 수 있고, 장기화하면 상장폐지 대상에도 오른다. 장기간 적자가 누적되면서 주주가 낸 자본금을 계속 까먹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은 추가 자본확충이나 감자 등의 조치 없이는 앞서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기존 주주의 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은 쉽지 않고, 채권단 지원만으로는 자본잠식 해소에 한계가 있어 불가피하게 감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이 3 대 1 비율의 균등감자를 결정하면서 시장 후폭풍이 거세다.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은 감자 기준일을 오는 12월 28일로 정했다. 올해 안에 감자를 완료하고 자본잠식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문제가 된 건 감자를 하는 방식이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균등 무상감자’를 결정했다. 무상감자를 하면 주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결정된 감자 비율만큼 주식수를 잃게 된다. 아사아나항공은 차등 방식이 아닌 대주주부터 소액주주까지 모든 주주들의 주식이 줄어드는 방식인 균등 방식을 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감자비율을 3 대 1로 결정했다. 이번 감자안이 시행되면 현재 아시아나항공 주식 3주를 가진 주주는 감자 후엔 보유 주식 수가 1주로 감소한다.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지분율 30.79%), 2대주주 금호석유화학(11.02%), 기타 소액주주(58.2%) 모두 주식수가 줄어든다.
통상 구조조정 대상에 채권단 관리를 받는 기업은 대주주의 경영 실패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로 차등 방식의 감자가 이뤄진다. 대주주 지분 대부분은 소각하고, 다른 주주들의 감자 규모를 줄이는 방식이다. 앞서 2010년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개선 작업)에 돌입했던 금호산업도 당시 박삼구 회장 등 지배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100 대 1로, 금호석유화학 등 소액주주와 채권단 지분을 6 대 1로 차등 감자했다.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HDC현산과의 매각 협상이 결렬된 이후부터 감자 방안을 고민해 왔다. 차등과 균등안을 놓고 오랜 기간 저울질을 해온 셈이다. 최종 균등 무상감자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풀이된다.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 이후 사실상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경영에서 물러났고 △ 올해 매각 무산과 경영 악화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만큼 대주주에게만 큰 책임을 지게 하는 건 가혹하며 △책임을 모두 물렸다가 자칫 금호산업(최대주주)까지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설립주주로 그동안 2대주주 지위를 계속 유지해왔다. 과거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사이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 과정에서도 지분 매각은 없었고 경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경영 실패 책임을 묻기 어려운 셈이다. 소액주주들 역시 이번 감자가 시행되면 투자손실이 확정되는 만큼 속이 편할 리 없다.
균등감자안은 오는 12월 임시주총에서 통과 여부가 결정되지만, 2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A350 모델.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결과적으로 채권단과 대주주에 유리하고 나머지 주주들은 현저히 불리한 방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균등 무상감자를 통해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위를 그대로 유지해 금호산업은 물론 동일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박삼구 전 회장의 지배력 변화는 없다. 시장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 측이 경영에서 물러난 만큼 책임을 묻기 가혹하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재직 중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사내이사 등 핵심 임원 일부는 모두 박삼구 전 회장 시절 임명됐다. 단순 형평성 문제를 넘어 사실상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은 등 채권단 역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본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에 1조 9000억 원을 지원하면서 금호산업이 가진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모두 담보로 잡았다. 차등감자가 이뤄지면 담보가치가 하락한다. 금호산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사 금호고속에도 1200억 원을 빌려줬다. 향후 채권 회수 등을 위해선 균등 무상감자가 더 유리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차등 무상감자를 하면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에 큰 타격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채권단의 부담도 커진다.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작업은 채권단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부담도 검토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균등 방식의 감자안은 오는 12월 14일 주주총회에서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당장 금호석유화학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부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단 무작정 반대표를 던지기에는 관리종목 지정 및 상장 폐지 부담이 크다. 특히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에 어깃장을 놓는다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정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감자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이번 균등 감자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기업의 재무 개선을 위한 감자는 주주총회 보통 결의 사항으로, 총회 출석 주식 수의 50% 이상, 전체 발행 주식 수의 25% 이상 동의를 받으면 통과 된다. 금호산업이 30.79%를 가진 만큼 금호석유화학은 물론 전체 소액주주 절반 이상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는 이상 균등 감자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아시아나항공 주주들의 손익 계산서가 시장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감자안에 대한 논란은 주총 직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산은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 방안을 이르면 오는 12월 초 발표할 예정이다. 감자안은 물론, 아시아나항공 장거리 노선 축소, 일부 인력 구조조정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추후 아시아나항공과 자율협약을 맺으면 본격적인 채권단 관리체제로 전환된다. 항공업계는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대한항공과 LCC(저비용항공) 등 국내 항공사 대부분이 채권단 지원을 받는 만큼 항공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및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