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 한남대교(가운데) 남단 일대. | ||
“강남구에 사는 것이 무슨 죄인가? 받아들일 수 없다”(강남구 의회)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으로 꼽히는 서울시 강남지역이 요즘 시끄럽다.
문제의 발단은 행정자치부를 축으로 한 정부가 강남지역의 땅값 등을 고려, 재산세를 기존보다 3~7배 올리기로 한 때문. 이 제도를 시행키로 한 것은 강남지역 땅값이 다른지역에 비해 크게 높은 데다, 부동산 투기바람까지 불어 이를 잠재우려는 목적에서였다.
이에 따라 강남구청 등 강남지역 지자체들은 오는 6월1일부터 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롭게 상향 조정된 재산세를 부과키로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강남지역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행자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기초자치단체장인 강남구 의회가 재산세율 조정권을 발동, 정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논의를 처음 벌인 곳은 서초구. 지난달 30일 서초구는 ‘2004년 재산세율 조정 대토론회’를 열고, 세금 인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날 열린 토론회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은 끌었지만,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다음으로 나선 곳은 강남구.
강남구 의회는 지난 1일 같은 내용을 주제로 한 회의를 열었고, 결국 정부의 재산세 인상안과 정반대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날 강남구 의회는 재산세율을 50%로 감면하는 내용의 세 개정 조례안을 상정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 현행법에 따르면 재산세는 지방세로 분류되고, 자치단체장은 조례를 통해 이 세금에 대한 세율을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 날 공청회에는 옥무석 이대법학과 교수가 토론 사회자를 맡았고, 김성수 연세대 정경대 교수, 김의효 한국지방세 연구회장, 박정우 서울시립대 교수, 전동훈 행자부 사무관 등과 지역 주민 6백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의 분위기는 무척 격앙된 상태였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한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강남구에 대한 재산세 부과에 찬성하는 발의가 나올 때는 야유와 질타의 목소리가,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박수가 나오는 등 흥분된 분위기 였다는 것.
그러나 이 날의 격앙된 분위기가 결국 구의회의 재산세율 인하로 곧장 이어졌고, 결국 강남 지역의 재산세 인상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한판 대결구도를 걷게 됐다.
<일요신문>은 당시 이 자리에 패널로 참석했던 5명 중 4명과 릴레이 인터뷰를 갖고 찬성, 반대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패널 참석자는 최근의 ‘강남구 재산세 사태’에 대해 “현 정부가 경제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를 ‘세금주의’로만 풀어가려는 문제가 결국 폭발한 것”이라고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이 참석자는 “강남지역 집값 폭등, 부동산 투기 등 모든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특히 행자부가 지자체에 대해 경고 조치를 할 경우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본래의 취지가 훼손된다”고 경고했다.
다른 참석자는 “강남 재산세 파문이 향후 범죄와 같은 사회 문제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또 다른 패널 참석자는 “강남구 의회, 서초구 의회 등이 이미 사전 조율을 했다”고 밝혀 향후 이 문제가 강남구뿐 아니라, 서초구, 송파구 등 인근지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농후함을 시사했다.
이 날 공청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사회자인 옥무석 교수가 중립을 선언한 가운데, 김의효 한국지방세 연구회 회장과 박정우 교수는 강남 재산세 적용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전동훈 행자부 사무관은 ‘찬성’의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옥무석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서로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된 문제”라며 말문을 열었다.
옥 교수는 “서울의 강남지역 주민과 강북지역 주민 간에 서로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다”며 “이번 일을 시작으로 향후 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옥 교수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툼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행자부 등 중앙정부와 강남구 의회 등 지자체가 다퉈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며 “향후 이 문제가 더 복잡하게 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행자부와 강남구 의회 등은 물론, 이 날 패널에 참석한 사람들조차 이번 ‘강남구 재산세 파문’을 둘러싸고 이견이 많은 상황이어서 향후 이 문제에 대한 해법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의효 한국지방세 연구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재산세 부과 반대”를 재차 강조했다. 김 회장은 “재산세 부과 등의 여러 상황이 갑작스럽게 전개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가 강남 재산세 부과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번 시행 대책이 부동산 안정화 정책에 일조하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 때문.
특히 그는 최근 행자부가 강남구 의회가 지방세율을 조정한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이 없다’는 표정이다.
김 회장은 “지방정부에서 세율을 최고 50%까지 내리는 것은 법적으로 명시된 지자체의 권한”이라며 “지자체의 취지가 지역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때 강남구 의회가 세율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말했다.
박정우 서울시립대 교수 역시 ‘반대’하는 입장.
박 교수는 “오랫동안 부과된 세금을 바꿀 때에는 ‘조세저항’이 일어난다”며 “서유럽의 경우 조세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10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동훈 사무관은 “강남 재산세 부과는 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사무관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럽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전 사무관은 “각종 국민여론조사, 구청장 회의, 시도 관계자들의 질의서를 받아 ‘강남 재산세 부과’ 내용을 지난해 밝힌 것”이라며 “강남지역과 강북지역의 집 값이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인 평수를 기준으로 재산세를 산정하는 것은 ‘공평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강남구 의회가 지방세율을 50% 감면한 부분은 지역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처사”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부동산 안정화라는 큰 틀 내에서 권한을 행사해야지,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지자체의 본뜻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이 날 패널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모두 오는 6월1일이 재산세 부과 일이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정면 충돌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