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군단에 ‘다문화 지네바퀴’ 달아
▲ 독일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3·4위 결정전. 이 경기에서 독일이 우루과이를 3 대 2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국의 외신과 축구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이다. ‘독일 축구는 재미없다’라는 인식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싹 바뀌었다. 사람들은 투박하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던 모습 대신 세련되고 정교한 플레이로 중원을 장악하는 독일 선수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젊은 전차군단’이 축구팬들의 주목을 받는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도 있다. 젊은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민자 가정 출신, 즉 외국계 선수들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시사주간 <슈테른>과 <슈피겔> 등 독일 언론들은 독일대표팀에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에 대해 연일 보도하면서 인종 갈등으로 얼룩진 독일 사회에도 독일 축구의 성공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점치고 있다.
독일축구의 미래는 이미 지난해 열렸던 U21(21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의 우승을 통해 어느 정도 점칠 수 있었다. 마누엘 노이어, 메주트 외칠, 자미 케디라, 제롬 보아텡, 마르코 마린 등 당시 잉글랜드를 4 대 0으로 격파하고 우승을 이끌었던 멤버들이 남아공월드컵 주전 멤버로 고스란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독일팀의 남아공월드컵에서의 약진은 ‘신선한 이슈’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였다. 4강에서 스페인에 1 대 0으로 패한 후 3위에 그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2014년의 우승을 내다볼 정도로 여유를 부리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때문에 많은 축구전문가들과 독일 대표팀이 스스로 “이번 전차군단의 기량은 앞으로 2~4년 후에 만개할 것”이라고 점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요아힘 뢰프 독일대표팀 감독 역시 “이번 국가대표팀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전성기를 누릴 것이다. 그리고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릴 꿈에 부풀어 있다.
젊어진 독일은 선수들의 연령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번 23명의 엔트리 중 30대는 아르네 프리드리히(31), 미로슬라프 클로제(32), 한스 외르크 부트(36) 등 세 명에 불과했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25.3세로 1934년 월드컵 처녀출전 이후 가장 젊어졌다. 11명의 주전 선수 중 32세인 클로제가 최고령이었던 독일은 주장 필리프 람(27), 메주트 외칠(21), 토마스 뮐러(20), 제롬 보아텡(21), 마누엘 노이어(24),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6), 루카스 포돌스키(25), 페어 메르테자커(25), 데니스 아오고(23), 자미 케디라(23), 슈테판 키슬링(26), 토니 크로스(20) 등 20대 초중반이 주를 이루었다.
이렇게 젊어진 선수들이 팀플레이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예전에는 무게감 있는 조직력과 힘을 바탕으로 했던 선배들과 달리 젊은 신예들은 빠른 템포와 현란한 기술, 감각적인 개인기로 중무장했다. 골을 넣은 후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활기찬 모습은 예전의 ‘재미없는 독일 축구’가 맞는지 의구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독일대표팀이 세계를 놀라게 한 데에는 젊은 나이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3명 중 무려 절반인 11명이 외국계 선수란 점이 그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외국계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뛰었던 적은 독일 축구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남아공월드컵 출전국 가운데 독일처럼 외국계 선수가 많은 나라 역시 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순수혈통만 고집하면서 ‘게르만 축구’를 하던 독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만 해도 독일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선수들은 없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독일 정부가 ‘독일인 부모에게서,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라는 규정을 삭제하면서부터였다. 1998년 월드컵에서의 8강 탈락과 유로2000에서의 조별예선 탈락,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 5 대 1로 패한 충격과 맞물려서 대표팀 변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00년대 들어 독일축구협회는 이민자 가정 출신의 실력 있는 선수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재능 있는 선수들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6억 1000만 유로(약 9400억 원)를 들여 청소년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성과는 최근 몇 년간의 경기 결과를 통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령 지난해 U21 유럽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 중 10명 이상은 적어도 한쪽 부모가 독일인이 아니었다. 또한 현 U17 대표 선수들 18명 가운데 8명은 순수한 외국계다. 사정이 이러니 더 이상 독일 청소년들의 우상은 과거의 클린스만, 베켄바워 등이 아니다. 이제 이들은 외칠, 포돌스키, 케디라에 열광한다. 이들의 부모가 터키 사람이건, 폴란드 사람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얼마나 축구를 잘하는지, 그리고 독일의 국가대표라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외국계 국가대표의 성공이 이주민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이 독일에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기회가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리아 뵈머 사회통합 담당관은 “독일대표팀이 독일 사회 통합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들의 성공은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너도 할 수 있다’ ‘너도 이 나라에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라는 것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보수 기민당 역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국가대표팀이야말로 사회 통합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통합은 16강전이었던 잉글랜드전 승리 후 뮐러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잉글랜드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면서 팀의 주축임을 각인시켰던 뮐러는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를 칭찬할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을 칭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이번 대표팀은 진짜 독일팀이 아니다”라고 비난하면서 여전히 순수 혈통을 고집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외국인이 절반인 잡탕팀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않길 바란다”는 원색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민족주의자들은 “축구는 바보들이 하는 스포츠다. 이민자들은 평균 교육 수준이 낮다. 그래서 축구선수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신분상승의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축구에 열중한다는 뜻이다. 사실 독일의 20~25세 인구 가운데 이민자들 수는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대표팀의 절반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은 분명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극우파들의 발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성공한 것은 이민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축구에서 실력은 객관적으로 평가되며, 어떤 선수건 실력이 안 되면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다문화 대표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1998년 월드컵 우승과 유로2000 우승, 2006년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던 프랑스대표팀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럽팀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흑인 선수들이 많은 프랑스대표팀의 출생지는 실로 다양하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계 노동자 2세이거나 아니면 과거 프랑스 식민지 국가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다. 2006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23명의 선수 중 무려 16명이 외국계 출신이었을 정도다.
가령 간판 공격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출신의 이민 2세대고, 티에리 앙리와 릴리앙 튀랑은 프랑스령인 카리브해 연안의 과달루페 출신이다. 또한 파트리크 비에라는 세네갈 출신이고, 지브릴 시세는 코트디부아르 조상을 두고 있다. 트레제게는 아르헨티나 이민 2세대, 그리고 클로드 마켈렐레는 콩고가 고향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선수들 간의 불협화음과 이기심 등으로 무너진 프랑스를 보면서 독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이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팀원 간의 조화와 끈끈한 동료애가 중요하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독일 외국계 주전선수 11명 스토리
히딩크 감독도 ‘찜’ 외칠 터키
터키 사령탑을 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탐낼 정도의 재능을 자랑하는 독일의 유망주. 커다란 토끼눈으로 인상 깊은 그는 강력한 왼발 슈팅과 정확한 패스 능력 등을 겸비한 차세대 독일의 핵심 공격수다. 부모 모두 터키인인 터키계 3세로 출생지는 독일 겔젠키르헨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일팀에서 뛰길 희망했던 외칠은 터키축구협회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일을 택함으로써 터키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터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터키어로 말하며, 가족 모두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집안이다. 외칠 역시 독실한 무슬림으로 8강전이 열리기 이틀 전에는 터키에 계시는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급히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서 추모를 하기도 했다.
약혼녀이자 유명 여가수 사라 코너의 여동생인 안나-마리아 역시 외칠을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유럽 사람 클로제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1985년 독일 쿠젤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폴란드 프로축구선수였고, 어머니는 폴란드 핸드볼국가대표 출신인 운동선수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의 조상이 독일인인 까닭에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폴란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폴란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독일인 혹은 폴란드인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 그저 유럽 사람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가나 택한 형 눌러 보아탱 가나
독일 베를린 출생으로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1년 독일로 건너온 이주민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DJ 겸 웨이터로 일했고, 어머니는 스튜어디스였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청소년국가대표팀 시절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 일찌감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인종 차별 때문에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고 말하는 그는 “청소년대표팀에서 뛰던 시절 한번은 상대팀 선수들의 부모들이 침을 뱉으면서 욕을 한 적도 있었다”며 씁쓸해 했다.
가나 대신 독일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한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선수라면 적어도 그 나라에서 살고, 그 나라 말을 해야 한다. 나는 가나의 문화를 배우지 못했다. 나는 독일 사람으로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이복형인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가나를 택해 가나팀에서 뛴 것과는 대조된다. 그는 동생과 맞붙은 조별예선에서 독일에 0 대 1로 패했다.
발라크 대체할 선수 케디라 튀니지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생. 80년대 초반 관광객으로 잠시 독일에 들렀던 튀니지 출신의 아버지가 독일인이었던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해 독일에 눌러앉게 된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U21 대회 우승 멤버로 뢰프 감독으로부터 “발라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선수”라는 칭찬을 들었다.
철강공장에서 26년 동안 일하고 있는 근면한 이주 노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술이나 나이트클럽은 멀리 한 채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했으며,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아랍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케디라는 “나는 튀니지에 여행 차 가본 게 전부다. 나는 독일과 나를 100% 동일시한다. 내가 생각할 때 나야말로 성공적인 통합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한다.
두 문화 체험은 축복 타스지 터키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완전히 터키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주민 노동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의 독일어를 못하는 까닭에 집에서는 터키어로 말하고, 생각했다.
이런 까닭에 타스지의 아버지는 그가 독일보다는 터키 국가대표가 되길 원했다. 아버지는 “사실 나는 아들이 터키에서 뛰길 원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좋다. 난 항상 네 편’이라고 말해줬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타스지는 오랜 고민 끝에 독일을 택했다. 그는 자신을 독일과 터키 양쪽 문화를 모두 습득한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두 가지 문화를 모두 배우면서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훗날 내 자녀들도 이렇게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폴란드 무관심 때문에…포돌스키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1987년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오면서 2세 때 독일 시민권을 획득했다. 친할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독일령이었던 곳에서 살았던 독일 국민이었던 까닭이다.
독일과 폴란드 이중국적자이지만 그는 주저 없이 독일을 택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폴란드 축구협회는 U21 대회 시작 전까지 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다”면서 “내 심장은 벌써 독일을 위해 뛰고 있었다”라고 말해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을 택할 것을 암시해왔다.
독일의 ‘메시’ 찬사 마린 보스니아
출생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다. 내전으로 독일로 망명했던 부모를 따라 2세 때 독일로 이주했다. 보스니아와 독일 중 국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보스니아 대신 독일을 택하면서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170㎝의 단신이지만 독일 선수들에게는 부족한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면서 ‘독일의 메시’로 불린다. U21 대회 우승 멤버로 독일의 신흥 전차군단을 이끄는 신예다.
친구들처럼 되기 싫었다 아오고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칼스루에 빈민촌에서 자란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이주민 노동자 자녀들의 비참한 생활을 눈으로 목격하고 일찌감치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 가운데 대부분은 탈선을 해서 불량 청소년이 됐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축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 덕분에 다른 친구들처럼 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 요청에 귀화 카카우 브라질
독일로 귀화한 브라질 선수. 1999년 돈을 벌기 위해서 독일로 건너와 분데스리가에서 뛰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뢰프 감독의 요청에 따라 독일로 귀화했다. 따라서 모든 가족이 현재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다.
21세 때 ‘올해의 선수’ 고메즈 스페인
스페인 출신의 이주민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독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17세 때 스페인 대신 독일을 택함으로써 독일 국기를 가슴에 달게 됐고, 21세의 나이에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폴란드서 날 거절 트로호프스키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5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해왔다. 조상들이 과거 프러시아 왕조에 속해있던 지역에서 거주했던 독일계인 까닭에 사실 독일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트로호프스키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폴란드에서 뛰길 희망했지만 폴란드축구협회의 거절로 하는 수 없이 독일을 택했다. 당시 트로호프스키의 어머니는 직접 아들의 재능을 소개하는 편지를 폴란드축구협에 보내는 등 열성적이었다.
그는 “내 심장은 폴란드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관심이 있는 독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도 ‘찜’ 외칠 터키
터키 사령탑을 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탐낼 정도의 재능을 자랑하는 독일의 유망주. 커다란 토끼눈으로 인상 깊은 그는 강력한 왼발 슈팅과 정확한 패스 능력 등을 겸비한 차세대 독일의 핵심 공격수다. 부모 모두 터키인인 터키계 3세로 출생지는 독일 겔젠키르헨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일팀에서 뛰길 희망했던 외칠은 터키축구협회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독일을 택함으로써 터키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터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터키어로 말하며, 가족 모두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집안이다. 외칠 역시 독실한 무슬림으로 8강전이 열리기 이틀 전에는 터키에 계시는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급히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서 추모를 하기도 했다.
약혼녀이자 유명 여가수 사라 코너의 여동생인 안나-마리아 역시 외칠을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유럽 사람 클로제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1985년 독일 쿠젤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폴란드 프로축구선수였고, 어머니는 폴란드 핸드볼국가대표 출신인 운동선수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의 조상이 독일인인 까닭에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폴란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폴란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독일인 혹은 폴란드인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 그저 유럽 사람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가나 택한 형 눌러 보아탱 가나
독일 베를린 출생으로 가나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1년 독일로 건너온 이주민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DJ 겸 웨이터로 일했고, 어머니는 스튜어디스였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청소년국가대표팀 시절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 일찌감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인종 차별 때문에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고 말하는 그는 “청소년대표팀에서 뛰던 시절 한번은 상대팀 선수들의 부모들이 침을 뱉으면서 욕을 한 적도 있었다”며 씁쓸해 했다.
가나 대신 독일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한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선수라면 적어도 그 나라에서 살고, 그 나라 말을 해야 한다. 나는 가나의 문화를 배우지 못했다. 나는 독일 사람으로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이복형인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가나를 택해 가나팀에서 뛴 것과는 대조된다. 그는 동생과 맞붙은 조별예선에서 독일에 0 대 1로 패했다.
발라크 대체할 선수 케디라 튀니지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생. 80년대 초반 관광객으로 잠시 독일에 들렀던 튀니지 출신의 아버지가 독일인이었던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해 독일에 눌러앉게 된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U21 대회 우승 멤버로 뢰프 감독으로부터 “발라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선수”라는 칭찬을 들었다.
철강공장에서 26년 동안 일하고 있는 근면한 이주 노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술이나 나이트클럽은 멀리 한 채 오로지 축구만을 생각했으며,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아랍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케디라는 “나는 튀니지에 여행 차 가본 게 전부다. 나는 독일과 나를 100% 동일시한다. 내가 생각할 때 나야말로 성공적인 통합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한다.
두 문화 체험은 축복 타스지 터키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완전히 터키식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주민 노동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의 독일어를 못하는 까닭에 집에서는 터키어로 말하고, 생각했다.
이런 까닭에 타스지의 아버지는 그가 독일보다는 터키 국가대표가 되길 원했다. 아버지는 “사실 나는 아들이 터키에서 뛰길 원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좋다. 난 항상 네 편’이라고 말해줬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타스지는 오랜 고민 끝에 독일을 택했다. 그는 자신을 독일과 터키 양쪽 문화를 모두 습득한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두 가지 문화를 모두 배우면서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훗날 내 자녀들도 이렇게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폴란드 무관심 때문에…포돌스키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1987년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오면서 2세 때 독일 시민권을 획득했다. 친할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독일령이었던 곳에서 살았던 독일 국민이었던 까닭이다.
독일과 폴란드 이중국적자이지만 그는 주저 없이 독일을 택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폴란드 축구협회는 U21 대회 시작 전까지 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다”면서 “내 심장은 벌써 독일을 위해 뛰고 있었다”라고 말해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을 택할 것을 암시해왔다.
독일의 ‘메시’ 찬사 마린 보스니아
출생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다. 내전으로 독일로 망명했던 부모를 따라 2세 때 독일로 이주했다. 보스니아와 독일 중 국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보스니아 대신 독일을 택하면서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170㎝의 단신이지만 독일 선수들에게는 부족한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면서 ‘독일의 메시’로 불린다. U21 대회 우승 멤버로 독일의 신흥 전차군단을 이끄는 신예다.
친구들처럼 되기 싫었다 아오고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칼스루에 빈민촌에서 자란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이주민 노동자 자녀들의 비참한 생활을 눈으로 목격하고 일찌감치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 가운데 대부분은 탈선을 해서 불량 청소년이 됐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축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 덕분에 다른 친구들처럼 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 요청에 귀화 카카우 브라질
독일로 귀화한 브라질 선수. 1999년 돈을 벌기 위해서 독일로 건너와 분데스리가에서 뛰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뢰프 감독의 요청에 따라 독일로 귀화했다. 따라서 모든 가족이 현재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다.
21세 때 ‘올해의 선수’ 고메즈 스페인
스페인 출신의 이주민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독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17세 때 스페인 대신 독일을 택함으로써 독일 국기를 가슴에 달게 됐고, 21세의 나이에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폴란드서 날 거절 트로호프스키 폴란드
폴란드 출생으로 5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해왔다. 조상들이 과거 프러시아 왕조에 속해있던 지역에서 거주했던 독일계인 까닭에 사실 독일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트로호프스키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폴란드에서 뛰길 희망했지만 폴란드축구협회의 거절로 하는 수 없이 독일을 택했다. 당시 트로호프스키의 어머니는 직접 아들의 재능을 소개하는 편지를 폴란드축구협에 보내는 등 열성적이었다.
그는 “내 심장은 폴란드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관심이 있는 독일을 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