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의 다음 월드컵은 없다”
#카드보다는 현금
박지성이 한국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의 돈을 쓸까. 우선 이번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박지성은 아버지로부터 30만 원의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빳빳한 1만 원권 지폐로만 준비했다. 그래도 명색이 박지성인데 용돈 30만 원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가 아닐까. 이에 대해 아버지 박 씨는 이런 생각을 밝혔다.
“물론 돈이 부족하면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지성이는 가급적 카드 사용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현금으로 용돈을 주는 이유는 밥값이나 옷을 살 때도 쉽게 카드로 긁는 것보다는 돈을 세어서 내야 그 돈의 가치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딜 가나 대접을 받는 편이다. 그래서 걱정되는 부분이 정작 써야 할 때, 자신이 계산해야 할 때 그냥 지나치거나 받는 데에만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한 시기가 분명 찾아올 것이다.”
#대표팀 생활 체력적 무리
남아공월드컵 이후 박지성은 가족 회의 끝에 이번 월드컵이 진짜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데에 의견 일치를 봤다고 한다. 여전히 박지성은 대표팀 은퇴에 대해 속 시원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아버지 박 씨는 유럽과 한국의 정서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선입견 때문에 박지성이 확실하게 발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맨유의 스콜스는 27세인데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콜스를 비난하거나 뭐라 하는 팬들은 없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여론도, 선배들, 지도자들도 지성이의 은퇴 시기가 너무 빠르다면서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정서로 흘러가다보니까 지성이도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회의 끝에 지성이한테 월드컵은 이번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이라는 부분에 합의를 봤다. 지성이의 다음 월드컵은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박지성은 대표팀에 소집될 때마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귀국, 곧장 팀 훈련에 들어간다. 그런 생활이 오랫동안 반복되다보니 체력적인 무리가 뒤따르게 되고 나이가 먹을수록 선수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은퇴 시기를 못 박을 수 없지만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뛰는 박지성을 볼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한 모양이다.
#주장을 맡지 않으려 했던 이유
박 씨는 대표팀 주장을 맡은 박지성은 성격상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설명한다.
“처음에 지성이는 주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 선배들이 있는데 왜 내가 해야 하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런데 코칭스태프 측에서 계속 주장을 맡으라고 권유한 걸로 알고 있다. 지성이는 초등학교 때 주장을 맡은 이래 ‘축구 그만둘 때까지 절대로 주장은 안 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다른 선수보다 일찍 등교해서 숙소 문 열고 청소하고 심지어 감독이 키우는 강아지 밥까지 줘야 했다. 성격이 강하지 못하다보니 다른 선수한테 일을 맡기지도 못했다. 그런 사람이 설마 월드컵을 앞두고 주장을 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남아공월드컵 동안 말은 못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다보니 남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 박성종 씨가 오는 24일 개관을 앞둔 ‘박지성축구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박지성은 종종 인터뷰 자리에서 축구 인생 최대의 위기를 얘기할 때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 입단했던 초기를 꼽는다. 당시 부상과 수술 등으로 운동장에 제대로 서지 못한 데다 재활 후 홈경기에 나섰다가 PSV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욕설을 듣고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원공고 3학년 때도 그 좋아하던 축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수원 삼성에서 해마다 수원시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유망주 선수들 4~5명을 데리고 가선 훈련을 시켰었다. 거기에 지성이가 뽑혀 합류한 적이 있었는데 선수들 중 지성이가 제일 축구를 못한다고 당시 지도자로부터 엄청나게 혼이 났던 모양이다. 그 혼난 강도가 너무 세서 다음날 경기를 뛸 때 위축된 나머지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때 축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이번에 남아공월드컵 갔다 와서 처음 얘길하더라.”
#감독한다면 비난 기사 써 달라
남아공월드컵을 마치고 한국에서 벌어진 한 자선 경기에서 감독으로 변신을 꾀했던 박지성. 과연 은퇴 후 지도자로 나선 박지성을 볼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지성이는 지도자 자격증도 안 딸 것이다. 만약 지성이가 마음을 바꿔 감독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거짓말 했다고 비난 기사를 써도 좋다. 지성이가 대학원에 등록한 이유는 자신의 꿈인 축구행정가를 이루기 위함이다. 지도자는 유소년 축구 꿈나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족하다. 은퇴 후 지도자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건 꽤 오래 전 얘기인데 지금까지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 ‘박지성 도로’ 부담스러웠던 이유
박지성축구센터는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박지성도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박 씨는 이 도로가 만들어진다고 알려졌을 때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찾아가 정중히 거절했다는 사연을 밝혔다.
“한때 인천에서는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난리였었다. 하물며 살아있는 축구선수의 도로가 만들어질 경우 그 선수의 사생활이나 성적에 따라 도로의 존재 이유에 대해 항의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도 있었다. 지성이한테는 굉장히 부담스런 부분이다. 결국 박지성 도로가 개통되긴 했는데 당시 내가 지성이한테 한 말이 있다. 앞으로 어디 가서 술 먹고 잘못하거나 시비가 붙거나 그것도 아니면 쓰레기조차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지만 ‘박지성 도로’가 계속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성이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도 집에 사람이 있어야만 주문한다. 얼굴이 알려진 뒤로는 어디 가서 라면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걸 보면서 안쓰러울 때가 많다.”
#박지성과 여자
혹시 박지성이 비밀리에 만나는 여성이 있을까. 외부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조심스레 만나는 여성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박 씨는 ‘정말 그랬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지성이는 종종 엄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엄마’일 때랑 ‘아내’일 때랑은 또 다르다고 충고했다(웃음). 얼마 전 연예인 관련 단체에서 나한테 항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내가 연예인 며느리를 싫어한다고 한 말이 언짢게 들렸던 모양이다. 난 연예인이 싫다고 하지 않았다. 단 연예인을 직업으로 가진 며느리가 생긴다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지성이도 나도 전문직 여성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더라. 지성이가 싫다고 했다. 전문의가 되려고 오랜 시간 어렵게 공부한 사람한테 결혼 후 일을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이유였다. 지성이는 결혼 후 같이 사는 여성을 원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성취감 때문에 남편은 영국에서 아내는 한국에서 따로 산다면 결혼의 의미가 없다고 얘기한다.”
박 씨는 오는 26일 영국으로 출국하는 박지성이 그 전에 몇 차례 소개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설령 내 아들이 누구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기자들은 잠시 눈 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것도 못하면 평생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좋아하는 것과 투자하는 것
오는 7월 24일 오픈하는 박지성 축구센터. 이 축구센터는 아버지 박 씨의 수고와 노력이 집대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센터 부지 마련부터 스폰서들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닌 일까지 모두 박 씨의 몫이었다.
“솔직히 돈만 생각한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성이가 축구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라 아들을 위해 온갖 경험 다 해가면서 일을 진행시켰다. 박지성이란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것과 박지성 축구센터를 위해 투자하는 것과는 온도 차이가 많이 나더라. 나보단 지성이가 이번 일을 통해서 사회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간접 경험했을 것이다. 수익사업이 아닌 만큼 축구인들이나 관공서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많은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이 센터를 통해 축구를 사랑하고 좋은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팀 이적설? 들은 바 없다!
지금도 종종 눈에 띄는 기사가 박지성의 이적설이다. 최근에 또다시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며 관심을 모았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는 매일 주전으로 뛰고 싶고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고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조건의 이적 제의가 들어올 경우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아직까지 맨유와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 있다. 우리의 의사보다는 구단에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남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부모 입장에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보단 이미 적응된 맨유에 남길 바라지만 그 또한 내가 원한 대로 이뤄질 수 없는 부분 아닌가.”
박 씨는 아들의 결혼에 대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건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축구선수로서는 안정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면 인간 박지성의 인생을 위해선 좋은 여성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게 박 씨의 일관된 생각이다.
“지성이가 심하게 꼼꼼한 편이다. 요리도 완벽한 레시피로 만들어야 하고 영국 집의 가구를 고르는 데도 한 달 이상이 걸렸다. 향수 하나 사는 데 한 시간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이다. 여성을 고르는 데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할까봐 심히 두렵다. 그래서인지 지성이가 앞으로 결혼하려면 2년은 걸릴 것 같다고 하더라.”
수원=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