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바람에 떠밀려 결단
▲ 은퇴선언을 한 양준혁이 후배들의 배팅훈련을 돕기 위해 공을 던져준 후 뒷정리를 하고 있다. |
#감독 이기는 선수 없다
“올스타전에서 홈런도 치고, 팀도 상승세라 은퇴를 선언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지금도 양준혁의 은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양준혁과 친형제처럼 두터운 우정을 자랑하는 이 위원은 “(양)준혁이가 시즌 초부터 은퇴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지만 일단 올 시즌까진 현역으로 뛸 뜻을 밝혔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어 후반기에 진가를 발휘하리라 예상했다”며 양준혁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이 위원의 말처럼 양준혁은 시즌 초부터 은퇴를 고심했다. 이유가 있었다. 출전기회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 3연전에 선발출전하고 양준혁은 다음 4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했다. 그 후 간간이 선발로 출전했어도 그날 부진하면 다음날엔 어김없이 대타 신세였다. 그러나 시즌이 흐를수록 대타마저도 기회가 줄며 양준혁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실 양준혁의 출전기회가 준 건 삼성 선동열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였다. 선 감독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부터 “언제까지 양준혁 진갑용 박진만 등 베테랑 선수에게 팀의 운명을 맡겨야 하느냐”며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기동력 야구’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시즌 중 베테랑 선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한 틈을 타 이영욱 김상수 오정복 등 젊은 선수들이 대활약을 펼치자 선 감독의 세대교체 의지는 더 강해졌다. 양준혁이 은퇴 이유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도 팀의 세대교체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양준혁처럼 세대교체 와중에 은퇴를 선언한 선수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전 한화투수 송진우다. 1989년 빙그레(한화 전신)에 입단한 송진우는 현역생활 20년째가 되는 2008시즌에 25경기에나 선발로 출전했다. 20대 투수들도 체력적 부담을 느끼는 132⅔이닝을 42세의 나이로 거뜬히 소화했다. 그러나 2009년 팀의 부진과 함께 세대교체가 화두가 되며 송진우는 시즌 중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해 은퇴한 전 히어로즈 외야수 전준호도 세대교체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준호는 젊은 외야수들을 주전으로 기용하길 바라는 코칭스태프의 요구에 밀려 개인 통산 550도루를 달성한 직후 은퇴를 결심했다. 야구계에서 ‘감독 이기는 선수가 없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은퇴 뒤의 그림자
삼성 장태수 수석코치는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다. 35세의 나이로 은퇴한 장 수석코치는 양준혁을 가리키며 “시원섭섭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도 은퇴를 선언하고서 지긋지긋한 부상과 연일 이어지는 경기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져 얼마나 가슴이 시원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섭섭’한 감정은 어느 때 느꼈을까. 그는 손가락으로 ‘OK’를 그리며 “돈”이라고 했다. 장 수석코치는 “현역 시절엔 몇 억 원씩 받던 선수도 코치가 되면 연봉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올 시즌 1군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2800만 원이다. 감독 평균 연봉은 3억 600만 원이다. 그러나 코치 평균 연봉은 7918만 원에 불과하다. 여기다 코치 초임은 4000만 원 수준이다. 선수, 감독과 달리 코치는 계약금도 없다. 양준혁의 올 시즌 연봉은 4억 5000만 원. 지난 시즌엔 7억 원이었다. 양준혁이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면 연봉이 선수 시절의 10분 1로 떨어진다. 그러나 양준혁은 프로 18년 동안 연봉으로만 50억 4800만 원을 벌어 그나마 걱정이 덜하다.
은퇴 뒤 가족과의 관계로 고통을 겪는 선수들도 많다. 현역시절 대스타로 추앙받았던 A 씨는 은퇴 뒤 야구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현역 시절 벌어놓은 돈이 많은 데다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도 잘됐기 때문. 그러나 이 선수가 은퇴하고서 얼마 있다가 이혼을 했다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다. A 씨의 지인은 “A 씨가 야구에만 몰두하느라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아내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도박에 손댄 걸 은퇴 후에야 알았다”라고 전했다. 수십억 원의 재산가로 알려진 이 선수는 아내의 노름빚을 갚느라 현재는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퇴 후 진로
“코치수업을 받겠다”고 선언한 양준혁처럼 다수의 선수는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지난 5월 LG에서 은퇴한 박종호는 팀의 배려로 2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활동 중이다. 박종호는 “초등학교 이후 야구에만 전념한 통에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은퇴선수가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호해 지도자의 길을 선택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야구판을 떠나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은퇴 선수들도 적지 않다. 삼성 출신의 강기웅은 은퇴 뒤 의료계에 투신했다. 장인이 운영하는 지방병원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며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 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MBC(LG의 전신) 창단 멤버인 차준섭은 은퇴 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1985년 무릎부상으로 은퇴한 차준섭은 개인사업과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1년 성공회 신학대학에 입학하고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현재는 경기도 군포에 있는 성공회 교회에서 주임신부로 있다.
1999년 해태(KIA의 전신)에서 내야수로 뛰다 은퇴한 최희창은 골프 캐디로 전업해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캐디로 활약한 바 있는 최희창은 현재 국내 최고의 여자프로골퍼 서희경의 백을 메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