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는 쪄도 된다고 누가 그랬나
▲ 젊은 초보엄마들 가운데는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데도 ‘몸매가 나빠진다’는 등의 생각으로 쉽게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부평 성모산부인과의원 초음파 진단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작년에 결혼한 Y 씨(31)는 출산예정일이 두 달가량 앞으로 다가오자 ‘내가 아기를 잘 나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요즘 계속 밤잠을 설치고 있다.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차라리 수술을 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출산은 처음이든, 그렇지 않든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과정이다. 그렇다 보니 젊은 초보엄마들 가운데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데도 쉽게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자연분만을 하면 성감이 나빠진다’거나 ‘몸매가 나빠진다’고 생각해서, 좋은 사주에 맞춰 아이를 낳기 위해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결혼이 늦어지면서 고령임신으로 인해 수술을 하거나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시술 등으로 쌍둥이를 가져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제왕절개 분만율은 5~1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 결과 국내 제왕절개분만 비율은 2001년 40.5%에서 2006년 36.0%로 점차 감소했고 2008년 기준 36.3%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1970년에는 제왕절개 분만 비율이 전체 출산의 8.7%에 불과했지만, 수술이 보다 안전해지면서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엄마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아기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제왕절개가 ‘신생아 호흡곤란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3배라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에 비해 천식에 걸릴 위험도 50%나 증가한다. 노르웨이 연구진이 1967~1998년까지 31년 동안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공중보건연구소에 등록된 신생아 170만 명의 천식 발생 여부를 조사한 결과다. 연구진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세균에 노출되지 않아 면역체계 발달이 약하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와 가슴 압박이 적어 숨 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자연분만을 할 때는 태아가 산모의 골반을 통과하며 가슴이 조여져 폐에 차 있는 양수가 배출되고 건강한 호흡이 가능해진다. 제왕절개에서는 이런 과정이 없으므로 호흡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 중 1~2명이 호흡곤란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제왕절개수술 시기와 관련해서는 일찍 수술을 할수록 아이들의 호흡기 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9주에 수술을 하면 호흡기 질환 위험이 2배, 38주에는 3배, 37주에는 4배로 높다.
스웨덴에서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알레르기, 당뇨병, 백혈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태어날 당시의 스트레스가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훗날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의사와 상의해 제왕절개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산모의 골반이 작아 태아가 나오기 어렵거나 임신중독증, 심장병, 당뇨병 등이 있을 때는 자연분만이 위험할 수 있다. 태반의 이상이나 자궁근종, 조기 파수, 자궁파열인 경우에는 제왕절개수술이 안전하다.
뱃속 아기의 상태도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뱃속 아기가 거꾸로 있거나 4㎏ 이상인 경우, 태아와 산모의 혈액형이 다른 경우, 출산 시간이 길어져 태아의 상태가 나빠질 때는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임신 기간 동안 체중 관리에 신경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러 해째 자연분만율 전국 1위를 하고 있는 부평 성모산부인과의원의 이종승 원장은 “임신부 비만이 태아 비만으로 이어져 순산이 힘들어진다”며 “임신 기간 체중이 많이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임신 기간에 10~12㎏의 체중이 늘면 적당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종승 원장에 따르면 7㎏ 증가하면 적당하고 비만이거나 키가 작은 임신부는 5㎏ 정도만 늘어나는 게 좋다고 한다.
‘임신을 하면 무조건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임신 기간의 중간 지점인 20주까지 태아의 몸무게는 300g에 불과하므로 임신 전과 똑같이 먹고, 몸무게가 거의 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이때 이미 5~7㎏가량 몸무게가 늘어난 임신부들이 많다.
임신 20주까지는 체중이 0~1㎏ 증가하도록 관리하고 20~40주 사이에는 4주에 약 1~1.5㎏씩만 늘도록 하면 임신 기간 동안 5~7㎏ 이내로 증가한다. 체중이 많이 늘어날수록 자연분만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체중 증가량을 줄이려면 과당이 많은 과일을 적게 먹거나 오이, 당근 등의 채소로 대신하는 것이 좋다. 흔히 ‘과일이 몸에 좋다’는 생각으로 과일 섭취량이 많아지면 체중 증가의 한 요인이 된다. 이와 함께 적당한 운동도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다면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다닐 병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왕절개 분만율을 참고하는 것도 한 요령이다.
의료기관별 제왕절개 분만율 공개자료는 심평원 홈페이지(www.hira.or.kr)/병원 질병정보/병원평가정보/제왕절개 분만 항목을 체크하면 자세한 내용을 조회할 수 있다. 연간 100건(반기 50건) 이상 분만을 실시한 병원을 대상으로 해당 병원에서 실시한 분만 건수는 물론 제왕절개 분만율을 등급을 나눠 알려주고 있다. 물론 중증 질환이 있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제왕절개술을 실시할 확률이 높은 산모들은 아예 큰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런 부분을 반영해서 평가한 결과다.
또 하나, 임신과 출산은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겨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좋다. 출산을 일종의 병처럼 여겨 지나치게 불안·초조해하면 나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분만한 임신부의 경우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다면 의사와 충분히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산모나 태아의 상태에 크게 이상이 없는데도 자연분만이 어렵다고 하면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 즉 브이백(VBAC;Vaginal Birth After Cesarean)을 도와주는 병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전에는 제왕절개를 한 번 하면 다음에 아기를 낳을 때도 무조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수술 부위가 얇아져 다음 출산에서 자연분만을 하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궁이 파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3%에서 자궁 파열의 위험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의사들이 애써 브이백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자궁이 파열돼 산모와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우려 때문이다.
브이백에 관심이 있다면 브이백에 성공하거나 시도하려는 임신부들의 온라인 동호회를 통해 정보를 얻어도 좋다. 브이백을 시도할 때는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고, 만약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부평 성모산부인과의원 이종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