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위원회 건물에는 금융감독원도 함께 입주해 있다. | ||
특히 향후 금감원 노조는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파업을 하는 등 초강경 태세에 들아갈 계획이어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새로 설립될 금융감독기구를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가 한판 대결을 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지만, 내부를 뜯어보면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금감원과 금감위의 충돌, 진짜 이유는 뭘까.
금감원과 금감위의 통폐합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해 말 국내 최대 카드회사인 LG카드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부터. 카드회사들이 연이어 부도위기에 처하자, 감사원은 카드사 부실 책임을 둘러싸고 당시 금감원과 금감위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였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행 금융 시스템은 재경부와 금감위, 금감원의 세 군데에서 맡고 있다. 굵직한 정책 결정은 재경부의 금융정책국에서 맡고 있고, 금융감독정책은 금감위가, 세부적인 금융감독업무는 금감원이 집행하고 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정부 산하의 공무원 조직이고, 정작 업무를 집행하는 금감원은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금감원 직원 1천6백여 명은 ‘준공무원’으로 불려왔다. 정확한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업무 수행에서는 뇌물수수금지, 주식투자금지, 취업제한, 재산공개 의무 등을 갖고 있고, 특별가중처벌이 적용되는 공무원과 같은 제약을 받기 때문.
그러나 재경부와 금감원, 금감위의 영역이 나누어 있다 보니 이들의 감독을 받는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세 명인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에 LG카드 사태를 정점으로 감사원은 이 같은 감독체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금융감독기구를 수술대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 실제로 이 같은 조치에 대해서는 재경부와 금감원, 금감위가 모두 동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무가 중복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건의해왔던 사항”이라며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고 전했다.
금감위 관계자 역시 “현재의 시스템이 아닌 새로운 금융감독기구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이라는 대전제만으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발생한 것은 재경부와 금감위, 금감원이 통폐합 방법을 두고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금융감독기구의 정부기구화’를 추진하고 있고, 금감원은 ‘공적민간기구화’를 주장하고 있다. 금감위는 금감원-금감위를 묶어 공무원 조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고, 금감원은 금감위-금감원을 묶어 민간기구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만약 금감원의 주장대로 감독기구가 민간기구가 된다면 현행 공무원인 금감위의 관계자들이 공무원 옷을 벗고 일반 근로자가 된다는 얘기다.
반대로 금감원이 정부기구가 되면 통폐합되는 금감위의 경우는 변화가 없지만, 금감원 관계자들의 신분은 하루아침에 공무원으로 바뀌고, 대대적인 변화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 이에 대해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금감원측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애시 당초 공무원을 할 것 같았으면, 미리부터 시험(고시)를 봤지, 이제 와서 무슨 공무원이냐”고 말할 정도다.
금감원 노조는 향후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한다는 강경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만일 금융감독기구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대외적인 신인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경제는 또 한 차례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
문제는 금감원 조직이 정부조직화가 돼, 직원 1천6백여 명이 공무원이 될 경우 당장 급여가 삭감된다는 데 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금융감독기구가 정부의 주장대로 정부기구화되는 것보다 민간기구화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전제”라며 “하지만 사실상 금감원이 공무원 조직화될 경우 당장 금여가 삭감되는 등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이 같은 배경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금감원 직원들의 임금 수준은 은행, 증권사 등 유관기관보다는 낮지만, 일반 금융기관 공무원보다는 높은 수준. 만일 금감원이 정부조직이 될 경우, 직원들의 임금이 당장 삭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인사 시스템도 관건 중 하나.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금감원은 원장을 필두로 부원장, 부원장보, 국장, 부국장, 팀장, 팀원의 직급체제로 돼 있다. 이 중 부원장보까지는 임원으로 분류되고, 국장 이하는 일반 평사원으로 분류된다는 것.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팀장급은 고참급 시니어 팀장과 주니어 팀장이 있는데, 일반 팀원에서 주니어 팀장에 오르는 데 평균 17년, 시니어 팀장은 20여 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조직이 공무원 조직으로 바뀔 경우, 어느 직급을 몇 급으로 쳐줄 것이냐 하는 새로운 문제도 생기는 셈.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우리는 초임 팀원의 경우, 사무관(5급 공무원)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금감원이 공무원 조직화 될 경우, 어느 정도를 인정할는지의 여부도 불분명한 상황인데 무리수를 두고 정부 기구화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금감원 내부에서 일어날 사내 변화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금감원과 금감위가 정부 기관으로 통폐합 될 경우, 사실상 금감위의 기존 공무원이 위의 직급을 차지하고, 밑의 직급은 금감원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결국 ‘상명하복’의 시스템에서 그간 다소 자율적이었던 금감원측으로서는 딱딱한 조직문화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주장대로 금융감독기구가 정부기구화될 경우, 금감원 직원 1천6백여 명은 당장 급여 삭감, 어정쩡한 인사 시스템, 새로운 조직문화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금감원과 금감위는 서로 다른 견해를 논의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정부의 개혁 의지가 강하다보니 당사자들끼리 논의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전혀 대화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위 관계자 역시 “정부의 방침을 따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6월 중에 새로운 감독기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들의 마찰이 조만간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