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한국인의 밥상
시린 겨울 한없는 온기를 가져다주는 불. 그윽한 열기 속에 둘러앉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흐르고 활활 타오르는 불로 익힌 추억의 맛이 모여 따뜻한 한 끼를 완성한다.
이제는 손가락 움직임 한 번으로 켜지는 불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오랜 시간을 들인 자만이 얻어내고 지킬 수 있었던 게 바로 ‘불씨’였다. 한겨울 아궁이는 따뜻한 온돌 바닥을 만드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솥을 걸어 한 식구 먹일 음식을 하고 뭉근히 남은 잔불로는 발효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는 ‘불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간직되어왔다.
다 타버린 줄 안 그 시점에서야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되는 숯. 직접 해온 장작을 넣은 아궁이와 잔불을 가득 담은 화로 그리고 추억 속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연탄까지.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변치 않은 불 지킴이들이 차린 따뜻한 밥상을 만난다.
숯 꺼내는 날이면 연기가 자욱해지는 백곡면.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깊숙한 곳에 있는 숯을 꺼내는 일은 힘이 센 아들 규원 씨가 꺼낸 숯을 숯 통에 집어넣는 일은 아버지 규종 씨가 담당한다.
호흡이 척척 맞는 남편과 아들을 안쓰러운 눈길로 보는 이가 있으니 바로 아내 부월 씨.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겠다는 아들을 처음에는 극구 반대했었다고. 하지만 아들이 이곳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고마운 남편과 아들을 위해 오늘도 부월 씨는 숯불 위에서 요리를 시작한다.
숯을 꺼내는 날마다 꼭 새참으로 먹는 음식이 있다는데 바로 양념 돼지고기구이. 숯을 갓 꺼낸 숯가마에 전용 삽으로 고기를 넣었다 빼면 금세 완성된다. 이에 질세라 아들 규원 씨가 노련한 솜씨로 닭에 진흙을 발라 구울 준비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숯불 위에서 구워 먹는 파의 단맛은 한번 맛보면 잊지 못한다는데.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떡과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늙은호박 묵은지국까지 밥상 위에 차려지고. 타버린 이후에야 그 수명이 시작되는 숯처럼 숯가마의 전통을 잇는 가족 앞에도 새로운 인생이 불꽃처럼 펼쳐진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상주에 피어오른 연탄불 내음. 괴산의 삼대가 사랑한 아궁이 등도 소개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