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한국 천주교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대구 성모당. 흔히 ‘성지’라고 하면 멀리 있어서 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성모당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아파트와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접근성이 좋고 경관도 아름다워서 가벼운 산책을 나왔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된 시민들부터 ‘성지순례’를 위해 찾아온 천주교 신자들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 동굴 속의 성모 마리아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들 중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방문한 사람들마저 숙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기도의 광장’ 많은 이들에게 안식처이자 사유의 공간이 되어주는 이곳을 찾아가 보았다.
성모당을 찾아온 많은 이들은 이곳이 ‘어머니의 품’ 같아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어머니의 품속에서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이해받을 수 있기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경영 씨(51)는 “(성모당은) 어머니 같은 곳. 성모님은 (예수님이) 고통의 길을 겪으시는 걸 다 봤잖아요. 그래서 저도 어머님한테 구하는 거죠.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며) 애끓는 마음을 아시니까 주님한테 좀 전해주시라고”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품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성모당에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도 많이 찾아온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해에 수능 시험을 치르게 된 아들, 또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딸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이곳을 찾아와 간절하게 기도한다.
자식의 고통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성모님이라면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성모당에서 도보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성직자의 묘지’. 대구 교구에 소속된 주교들과 신부들이 안장된 묘지로서 이곳 또한 ‘성지’이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11월은 ‘위령성월’ 기간으로,죽은 자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신자들은 ‘성직자의 묘지’를 방문하여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동시에 ‘나 또한 언젠가 세상을 떠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다.
양쪽 기둥에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라틴어 경구가 쓰여있다.
최성준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오늘은 죽음이 나에게 찾아왔지만, 내일은 바로 너에게 찾아갈 것이니까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기도는 그리움을 달래주고 어떤 기도는 기쁨을 축복해주거나 분노를 회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는 ‘기적’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성모당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파서 기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성모당을 방문하여 기도하는 이들. 현실을 회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 속에 ‘어떤 기적’은 이미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이 찾아오며 날씨가 추워졌지만 여전히 성모당에는 기도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삶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한, 기도 또한 끊일 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기도가 되는 곳, 성모당에서의 3일을 담아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