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한국인의 밥상
국물 없이는 밥 못 먹는 한국인의 못 말리는 국물 사랑. 국이나 탕, 찌개, 전골 등 모든 국물음식의 맛은 육수에서 나온다.
육수는 고기 외에도 해산물, 채소 등을 끓여 우려낸 맛국물을 말하는데 육수 하나만 잘 준비하면 밥상은 풍성해지고 깊은 맛을 담는다.
추운 겨울 한복판 시린 몸과 마음을 달래줄 뜨끈한 국물 한 그릇. 국물 맛의 비밀을 품은 깊고 진한 육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육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멸치육수. 멸치에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는 누구나 익숙하게 활용하는 국물맛의 주인공이다.
거제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멸치 조업을 하는 박노현 씨. 새벽 정치망에 멸치떼가 걸려들면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잡은 즉시 찌고 말리는 작업을 서두른다.
멸치 조업으로 부자 소리를 듣던 마을에는 어디서나 멸치를 널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바닷가에 널어 말리던 멸치가 최고의 간식이었다.
멸치 배가 들어오면 싱싱한 생멸치만 넣고 끓인 멸칫국으로 추위를 달래고 덤으로 얻은 물메기로는 시원한 맑은탕을 끓이곤 했다. 생선으로 끓이는 탕이지만 더 깊고 진한 국물맛을 내려면 멸치육수가 기본. 멸치와 단짝인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끓이면 다른 재료가 없이도 국물맛을 낼 수 있다.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멸치육수에는 자꾸 입맛을 당기는 맛의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멸치에 들어 있는 이노신산 성분과 다시마의 성분인 글루탐산이 감칠맛을 내는 주요성분이기 때문이다.
멸치와 닮았지만 크고 넓적한 모양의 디포리는 멸치보다 맛이 진하고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 디포리 육수로 끓인 미역수제비 한 그릇은 추운 겨울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부모님 곁을 든든하게 지키며 사는 3대 가족의 멸치육수보다 더 감칠맛 나는 사연을 만나본다.
육수를 우려내기에 가장 익숙한 재료는 육류다. 우리 밥상에는 늘 국물 음식이 있었는데, 농경사회의 영향으로 소를 쉽게 사용할 수 없어 돼지, 닭, 꿩 등 다양한 고기를 육수로 사용해왔다.
청양의 한 마을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 온 칠원 윤씨 종갓집 가마솥에는 늘 국이나 탕을 끓이기 위해 돼지 뼈 육수가 끓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윤희숙 씨는 요리 공부를 시작해 한식 조리 기능장이 되었다.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덕에 오늘도 윤희숙 씨는 할머니의 음식을 기억해내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항상 가마솥에 끓고 있었던 돼지고기 육수는 동태를 넣고 무조림을 만들고 삭힌 고추와 실고추를 넣어 돼지족편으로 활용한다.
할아버지가 처음 청양에 구기자를 심으면서 집안에서는 구기자를 활용해 육수를 내기도 했는데 닭 육수를 낼 때 구기자 열매, 지골피(구기자 뿌리), 엿기름 등으로 깔끔한 육수를 만들어 완자탕을 만들었다고.
집안에 제사가 많아 굴비가 남는 날에는 소고기 육수를 차가운 물에 오래 끓여 전골을 만들었는데 자주 접해 질릴 수 있는 재료에 할머니의 지혜가 담겨 가치 있게 변신한 굴비전골은 이제 윤희숙 씨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할머니의 비법으로, 하나하나 음식을 완성할 때면 음식에 담긴 배려와 공경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는 윤희숙 씨를 통해 육수의 깊은 맛을 담는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장수 영월암 정효 스님의 채수로 차린 위로의 밥상, 태안 어은돌 마을의 홍압탕 등이 소개됐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