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국내 금융시장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요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투자시장의 속성상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매머드 재벌의 몰락을 틈타 외국인들이 돈잔치를 벌인다면 입맛이 개운치 않다.
바로 대우그룹이 주인공이다. 지난 99년 대우그룹은 거의 1백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부채를 껴안고 넘어졌다. 50여 개에 달하는 계열사들 중 80%는 그냥 문을 닫았다. 일부 회사는 계열분리를 통해 독자생존에 나섰고, 대우정보통신 등 일부 회사는 매각됐다.
대우그룹이 침몰하면서 한국 경제에 준 충격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채권단이던 제일, 외환은행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채 끝내 소유권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투신, 보험 등 제2 금융권 기관들도 공중으로 사라진 대우채권으로 휘청거렸다.
게다가 부도를 간신히 면한 대우 계열사들은 국민혈세로 조성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그나마 목숨을 부지했다.
그랬던 것이….
어찌된 일인지 국민혈세로 연명시킨 대우 계열사들은 해외 매각이라는 절차를 밟아 외국인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헐값에 이들 회사를 사들인 외국인들은 불과 5년도 안돼 최고 5배에 이르는 가격으로 되파는 작업에 나서는 등 돈벼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런 외국인의 봉이 된 대우 계열사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대우종합기계, 대우조선해양 등 4개사.
이들 4개사는 대우그룹 시절에도 그룹 내에서 가장 우량한 기업군이었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은 (주)대우 소속이었고, 대우종기와 대우조선해양은 (주)대우중공업 소속이었다. 그룹이 몰락한 뒤 사업부별로 독립법인으로 분리된 것.
대우그룹 계열사 매각으로 돈방석이 예약된 곳은 JP모건,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크레요네 등 1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우그룹이 몰락한 직후인 2000년에 핵심 계열사인 (주)대우 등이 자산공사로 소유권이 넘어가자 워런트라는 금융기법을 통해 주식 인수권을 부여받았다.
워런트는 기존 지분을 일정기간 동안 보유하되, 기간이 지난 뒤에는 약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권리다. 2000년 당시 정부는 외국인의 시장 이탈을 막기 위해 일종의 투자자에 대한 스톡옵션이랄 수 있는 워런트를 제공했던 것이다.
당시 외국인들이 부여받은 워런트는 대우건설 주당 4천37원, 대우인터내셔널 3천4백52원, 대우종기 3천2백97원, 대우조선해양 1만2천2백20원 등이었다. 또 외국인들이 인수할 수 있는 주식수는 대우건설 7백21만주(전체 지분의 8%), 대우인터내셔널 1백49만주(8%), 대우종기 4백92만주(4%), 대우조선해양 5백87만주(4%).
외국인들이 부여받은 이들 4개사의 워런트 행사 가능시기는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의 경우 올해 1월부터 내년 6월까지이고, 대우종기와 대우조선해양은 올해부터 2005년 7월까지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은 올 들어 주가가 오르자 앞다퉈 워런트 행사에 나서면서 막대한 매각차익을 거두고 있다.
증권가에 따르면 2004년 6월12일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이 행사한 워런트는 대우인터내셔널 45만주, 대우건설 43만주, 대우종기 1백50만주, 대우조선해양 47만주 등에 불과하다. 외국인들은 종합주가지수가 8백50선을 넘은 지난 4월부터 워런트 행사에 나서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있다.
현재 이들 4개사의 주가는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주당 7천~8천원대이고, 대우건설은 4천원대, 대우종기는 8천원대, 대우조선해양은 1만5천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워런트를 통해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종기의 경우 최고 3배의 평가익이 났고,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도 30~40% 평가익을 거두고 있다.
이들 4개사의 워런트 행사권을 가진 주식의 총액이 2조원대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워런트 행사로 예상되는 수익은 현시점에서만 보아도 1조원 안팎에 이르고 있다. 아직 외국인들이 행사한 워런트는 전체 가능주식(4개사 합계 1천6백여만주) 가운데 20% 정도에 불과한 (2백80여만주) 수준이다.
문제는 이들 4개사가 현재 국내외 기업을 상대로 매각작업에 나서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장 매각작업이 빠르게 진행중인 대우종기는 두산, 효성, 로템 등 국내 대기업들이 나서 인수의향서를 제시하면서 주가가 1만3천원대까지 치솟아 외국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4배 장사했다. 현재는 1만원대 이하로 주식값이 떨어지긴 했지만 인수자가 정해질 경우 대우종기의 주가는 1만5천원대를 넘을 것으로 증권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어 외국인들이 거둘 이익은 천문학적이다.
여기에 조만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해양 등 나머지 기업들도 매각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정돼 있어 가격은 지금보다 배 이상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럴 경우 전체적으로 외국인들이 얻게 되는 차익은 최대 6조원대로 예상된다.
이와는 달리 이들 4개사에 투자한 국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이들 4개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기존 주주들은 해당 회사가 감자를 하는 바람에 그나마 가지고 있던 주식마저 평균 5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물론 외국인에게 주어진 워런트가 부여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대우그룹이 침몰한 직후 이들 회사의 주식을 억지로 떠안은 투신사와 증권사, 은행 등은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대우 채권에 대해 최대 90% 손실보전을 해주긴 했지만 저가에 워런트를 부여받은 해외 투자자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결국 대우그룹이 파산한 것이 외국인에게는 돈벼락을 가져다 주었고, 내국인에게는 빚더미를 안겨준 셈이 됐다. 외국인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워런트를 제공했다고는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워런트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해준 것은 국내 투자자들과 비교해 특혜”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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