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엔 ‘장수국’ 실제론 ‘유령국’?
▲ 최근 일본에서 노령연금과 장수 축하금을 타내기 위해 부모나 조부모의 사망을 숨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도쿄의 남성 최고령자는 아다치구의 센주에 살고 있는 가토 소겐으로 올해로 111세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을 때 얘기다. 그는 지난달 죽은 지 30년이 지난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그의 사체를 방치한 채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가토의 장녀(81)와 그녀의 남편(83), 손녀딸(49)과 손녀딸의 동거남(49)이었다.
경찰이 가토의 집에 도착해 1층 다다미방의 문을 열자 침대 위에 남성의 사체가 누워 있었다. 속옷과 내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머리는 이미 백골 상태였고, 몸은 미라로 변해있었다.
경찰은 “특별히 사체로 인한 악취가 있지는 않았다. 단지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지독했다.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토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 민생위원회와 구청에서는 최고령자인 그의 근황을 알기 위해 가족에게 몇 번이고 면회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는 “아직 살아계시지만 다른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조부는 5년 정도 전부터 요양시설에 들어가 있다”, “시골 주소는 너무 길어서 가르쳐줄 수 없다”며 핑계를 댔다. 그러다가 올해 2월 중순에 “집 안에서 자고 있다”고 말을 바꾸더니 다시 “절에 들어가 설법 중”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말이 계속 바뀌자 구청에서는 결국 센주경찰서에 협력을 요청했다.
7월 26일 동사무소와 구청직원들이 함께 생일선물을 들고 집을 찾아갔지만 가족들은 다시 “식물인간 상태라 일어날 수 없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돌아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이틀 후인 28일 손녀가 직접 서에 나타나 사정을 털어놓았다.
주택가에서 보통 사체가 부패하면서 지독한 악취가 주변에 퍼지기 때문에 주민의 제보로 금세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가토의 몸은 미라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일까.
경찰은 “사체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급격히 수분을 잃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고 미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기담요를 깔고 있었던 점도 미라처럼 변하게 만든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토의 손녀는 경찰서에서 “올해 3월에 갑자기 방문이 열려서 안쪽을 살펴보니 두개골이 보였다. 집에서 우리끼리 할아버지가 가진 기가 문을 열었다며 무서워했다”고 증언했다. 이 말로 미루어 가족들은 가토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절대 문 열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았다”며 발뺌하고 있다.
센주서에서 가토의 가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의혹이 추가 제기됐다. 바로 사기혐의다. 손녀는 “(가토의 계좌에서) 연금을 빼내서 일부는 대출금 통장에 옮겼다”고 진술했다. 가토는 처가 죽은 이후 처가 가입해뒀던 공립학교공제조합의 유족연금(한 달에 약 16만 엔(약 200만 원))을 수급하고 있었다. 일본연금기구에 따르면 가토 명의로 노인복지연금과 유족연금으로 수급 받은 금액이 총 1800만 엔(약 2억 20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유족연금의 잔고는 약 340만 엔으로, 약 610만 엔이 인출된 상태며 가토 씨의 안부확인이 활발히 이루어진 7월 중순 이후 6회에 걸쳐 270만 엔이 인출되었다고 한다.
가토 사건 이후, 구청과 동사무소의 조사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100세 이상의 노인들이 수백 명 행방불명 상태고, 조사과정에서 찾은 신원파악이 불가능한 유골 등이 전국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등산용 가방에 어머니 유골을 넣어 두기도 했다.
자식들이 부모의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 사실을 숨긴 것으로 호적상으로는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실은 이미 사망해 저승과 이승 사이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센서등. |
이에 따라 도쿄도 치요다구에서는 구내에 있는 28명의 100세 이상 고령자들의 생존 여부 조사를 시작했다. 담당자는 “아다치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는 장수축하금을 전달하는 기회를 이용해 안부 확인을 지역과 협력해 진행할 예정”이라며 대응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구의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고령자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지 모른다”라며 염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부야구의 담당자는 “모든 주민들을 다 의심할 순 없다. 의료보험이나 건강호보험의 이용실적을 보고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요코하마에서는 센서로 독거노인 사망을 확인하거나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최신장비가 도입되기도 했다. UR이라 불리는 센서는 현관과 화장실, 침실 등에 설치해 적외선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문의 개폐와 조명, TV리모컨 등에 반응한다.
자치단체 독거노인 담당자는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컴퓨터로 노인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각 센서에 반응이 없으면 경고 메시지가 표시되어 주민과 민생위원에게 방문이나 전화로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컴퓨터로 입력한 말을 센서로 입주자들에게 전달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어 생활상의 주의를 주는 등의 일도 가능하다고 한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