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배려는 조감독 작전 미스
▲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조기 투입? 글쎄. 본인이 던지겠다는데 막을 길이 있나.” 오른손 새끼손가락 골절로 두 달여간 팀을 떠났던 윤석민이 재활을 마치고 8월 10일 1군에 등록했을 때, KIA 조범현 감독은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도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말을 아꼈다.
조 감독은 기자들이 “몸 상태가 불안정한 윤석민을 너무 일찍 1군에 올린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도 “코칭스태프의 뜻이 아니라 윤석민 본인의 의지”였음을 재차 강조하면서 “(윤석민이) 무리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조 감독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배려 차원에서 윤석민을 적은 투구 수를 책임지는 불펜투수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상황에 따라 (윤석민을) 마무리로도 기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 감독의 ‘배려’를 되레 우려하는 야구인들도 없지 않았다. 모 야구해설가는 “부상에서 벗어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 회복”이라고 강조하고서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했을 때 자칫 블론세이브를 허용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 선수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윤석민의 마무리 기용이 과연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8월 24일 사직 롯데전에서 KIA는 드라마 같은 뒤집기를 꿈꿨다. 그런데 윤석민의 체인지업이 높게 제구되면서 조성환의 헬멧을 강타하고 말았다. 9일 전 광주에서 홍성흔이 윤석민의 투구에 맞아 왼손등 골절상을 당한 데 이어 이날 조성환까지 투구에 맞자 롯데 팬들은 크게 분노했다. 흥분한 롯데 팬들은 그라운드 안으로 물병을 던지며 윤석민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간신히 경기를 마친 윤석민은 1루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조성환에게도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사과했다. 롯데 선수단과 조성환은 윤석민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성환만큼이나 윤석민의 부상 정도도 심각했다. 윤석민이 다친 곳은 마음이었다. 결국, 윤석민은 사구 사건이 벌어진 이틀 뒤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윤석민의 사구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어째서 윤석민이 유독 4강 라이벌 팀인 롯데 주축선수들을 상대로 사구를 던졌느냐는 것이다. 억측과 소문이 난무했지만, 진실은 하나였다.
사실 윤석민은 8월 초 1군 등록 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트레이너들도 이른 1군 복귀를 경계했다. 그러나 팀이 계속 부진하자 윤석민의 부담감과 자책감은 심해졌다. 윤석민이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면서도 1군행을 원한 건 이러한 부담과 자책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경기장을 찾은 한 여성 관중이 피켓을 들고 윤석민을 응원하고 있다. |
1군 엔트리 말소 후, 윤석민은 3군에 편입돼 광주에서 훈련 중이다. 현재 KIA 3군엔 이종범, 김원섭, 채종범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윤석민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9월 2일 3군 훈련을 보려고 광주구장에 도착했을 때 윤석민은 없었다. 구단 관계자는 “구장에 없으면 산에 갔을 것”이라고 했다. 차영화 3군 코치도 “윤석민이 산행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차 코치는 “윤석민의 인상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준재 트레이너 팀장도 “(윤)석민이가 당장 마운드에 올라도 될 만큼 몸 상태는 정상”이라며 “상담치료와 주위의 격려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다.
이날 윤석민은 구단과도 연락을 끊은 채 온종일 산을 탔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은 윤석민은 “주변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심적으로 많이 편안해진 상태”라고 했다. 복귀 시점을 묻는 말엔 즉답을 피하면서도 “조만간 구장에서 볼 수 있느냐”는 말엔 “네”라고 대답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석민의 사구에 맞아 개인타이틀 경쟁에서 밀린 홍성흔은 “석민이가 하루빨리 마운드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윤석민에게 맞은 사구는 현역생활 12년 동안 맞은 수많은 사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윤석민은 KIA의 간판스타가 아닌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이기 때문”이란다.
홍성흔의 진심을 전해들은 까닭일까. KIA 관계자는 “산에서 내려온 윤석민이 시즌 후반기 출전을 목표로 다시 공을 잡았다”고 전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