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사칭 조작된 신청 양식으로 개인정보 빼돌려…‘우선순위’ 명목 예치금 요구도
예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19와 이에 대한 여파가 매출감소로 이어져 어려움을 겪던 A 씨는 도움을 받고자 문자에 안내된 링크에 접속했다. 해당 링크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창으로 접속됐다. 곧바로 상담사가 등장했다. 상담사는 “안녕하세요. 정부 24시 재난지원금센터 담당자 김병기(가명)입니다”라고 소개했다. 프로필 사진 속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성의 증명사진이 신뢰감을 주었다.
A 씨가 나눈 피싱범과의 대화. 사진=A 씨 제공
무엇을 하면 되냐는 A 씨의 질문에 김 씨는 “3차 긴급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신청서 작성 및 전자 서명을 해달라”며 파일 한 개를 보냈다. 발송된 신청서는 기존의 지원금 관련 문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름, 주민등록번호(외국인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사업자등록증보유 여부, 계좌번호와 총 소득을 기재하고 날인하는 난이 있었다.
이상한 점은 서류 자체가 그림 파일로 되어 있어 그 자체로는 서류 작성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부기관에서 취급하는 일반적인 문서의 형태는 ‘한글(HWP)’이다. 이에 A 씨가 “신청서를 어느 기관에서 다운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김 씨는 답하지 않고 “서류에 표시된 항목만 작성해 보내달라”고 말했다. 이어 “(정보를 보내주시면) 제가 작성해 드릴까요?”라며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업무 도중 연락을 받았던 A 씨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계좌 등의 개인정보를 모두 넘겨주었다.
A 씨는 1월 13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3차 재난지원금 신청서 양식을 확인하고 작성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따로 검색을 해보았으나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서류 양식이 이전 재난지원금 신청서와 유사하여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고 졸지에 개인정보를 모두 넘겨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알려진 일반적인 스미싱 수법이다. 문제는 피싱범의 사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A 씨의 개인정보를 손에 넣은 김 씨는 “(지원대상 여부를) 조회해보겠다”며 사라졌다. 앞서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 내용과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4분 뒤 등장한 김 씨는 “일반 지원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게 인당 300만 원씩, 총 3조 6000억 원의 정부 추가 지원금이 있다”며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다. 3조 6000억 원은 2020년 11월 국민의힘에서 정부에 제시한 3차 재난지원금 예산으로 실제 집행된 예산안이 아니다.
김 씨는 “예치금을 걸면 우선순위로 받아보실 수 있다”고 회유했다. A 씨 역시 이 지점에서 피싱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고 했다. 이들이 예치금으로 요구한 금액은 298만 원. 지원금 300만 원 중 2만 원을 제외한 금액을 예치금이라며 속인 셈이다. 김 씨는 “예치금은 지원금과 함께 돌려준다”며 A 씨를 안심시켰으나 이미 피싱 사실을 인지한 A 씨는 “나중에 하겠다”며 거절했다.
피싱범이 보낸 3차 재난지원금신청 서류. 2차 서류와 양식이 유사하다. 사진=A 씨 제공
피싱범이 보내 온 서류를 자세히 보면 어색한 점이 많다. 기존에 있던 서류를 ‘3차 긴급 재난지원금 신청서’로 바꾸기 위해 일부 문구를 드러내고 다시 붙인 까닭이다. 이 때문에 각 줄의 서체가 다르고 글씨 크기도 일정하지 않았다. 전체 표 역시 일부가 잘려나간 형태로 엉성했다. 무엇보다 왼쪽 하단의 ‘재난동부장관’이라는 직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가지고 따져보면 조잡한 서류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지만 지원금이 절실한 소상공인·프리랜서라면 쉽게 개인정보를 넘겨주거나 우선순위에 들고자 예치금을 송금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A 씨는 “지금 돌이켜보면 오탈자도 많고 문맥도 어색한 대화였다. 그런데 나 역시 업무로 정신이 없었고 서류를 처리하는 담당자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지난번에도 지원금 신청 안내가 문자로 왔던 기억이 있어 더욱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십 권의 책을 편집한 나도 깜빡 속아 넘어갔는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의 채팅방은 현재 비활성화된 상태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는 문자를 통해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다. 다만 문자에 첨부된 링크는 버팀목자금 홈페이지 외 다른 곳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온라인 채팅 상담도 홈페이지 안에서만 진행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3차 재난지원금 지급 안내와 관련해 정부 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내는 스미싱이 퍼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의 웹발신 문자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나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로는 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