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순위 혼선, 영국 혼용접종 우왕좌왕…현장 “단순 지침 말고 완벽 시나리오 달라”
#누가 먼저 맞을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르면 2월 말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세부 접종 계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큰 관심은 ‘누가 먼저, 어떤 백신을 맞을 것인가’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국가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해 크고 작은 논란이 발생했다.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가 메모를 적어 창 밖으로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접종 순서를 두고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콜로라도에선 65세 이상 노인보다 재소자가 우선접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커졌다. 1월 3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콜로라도는 고령층과 기저질환자보다 교도소 수감자를 우선접종하겠다고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건 지침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준법시민보다 범죄자의 생명이 우선이냐”며 반발했고 콜로라도의 한 지방검사는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반발이 이어지자 자레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는 일주일 만에 수정된 계획안을 발표했다. 개정된 지침 내용은 재소자, 노숙자와 같은 집단시설 거주자는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고 의료 종사자, 장기 요양시설 생활자 등의 집단시설 거주자를 우선 순위로 올린다는 것이었다. 70세 이상의 노인과 일선 근로자도 백신 접종 우선 순위에 포함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역 효과를 버리고 정치적 이익을 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발표된 우선접종 대상자 명단은 방역 전문가와 의료진으로 이뤄진 자문단이 수개월의 논의를 거쳐 재소자를 우선접종하는 것이 방역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랜싯 의학 저널의 ‘코로나19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50건의 집단발병 가운데 40건이 교도소에서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접종 대상자 안에서의 세부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 대학병원 초기 백신 할당량은 5000회 분량이었는데 일선 의료진 중에는 단 7명만 우선접종 대상자로 선발됐다. 나머지 4993명의 접종 대상에는 고령자도 있었지만 환자 대면 업무를 하지 않는 병원 고위직, 병원이 속해있는 학교 간부 등이 포함됐다. 이런 조치가 불평등하다는 레지던트들의 집단 반발에 병원 측은 “병원 간부도 의료기관 종사자이고 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레지던트가 제외됐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의료기관 종사자가 우선접종 대상이라는 정부 지침을 어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기관 종사자, 집단시설 생활자 및 종사자, 노인(65세 이상), 성인 만성 질환자(19∼64세, 중등도 이상 위험), 소아청소년 교육·보육시설 종사자 및 직원,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 경찰·소방 공무원·군인 등을 우선접종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인플루엔자 유행시기인 올해 4분기 이전 우선접종 대상자에 대한 예방접종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이후 건강한 일반 성인을 상대로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순위의 세부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의료윤리학회는 2020년 12월 성명서를 통해 “감염과 사망 위험이 높은 만성질환은 그 종류와 범위가 넓은데 위험도가 높고 낮은 만성질환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이를 구분해 접종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은 있는가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백신을, 어떻게?
영국 국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접종 방법도 문제다. 1월 4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최초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접종 시작 3일 전 갑작스레 백신 간 혼용을 승인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1차에 맞은 백신이 없을 경우 2차에는 다른 종류의 백신을 맞아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즉, 1차에 아스트라제네카 2차에는 모더나를 접종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승인한 것이다. 당초 제약사가 발표한 접종방법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와 모더나는 4주 간격으로 2번을 맞도록 되어 있다.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따랐을 경우 예방효과는 각각 70.4%와 94.1%다. 혼용 접종을 했을 때의 부작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영국 정부는 1차와 2차 접종 간격을 최대 12주로 늘리는 것도 승인했다.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원이 접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의 결정은 확보한 백신 물량을 1차로 몰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접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도 예상보다 저조한 접종률과 공급 부족으로 백신 투여량을 기존의 절반으로 낮추는 등의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위 방법의 유용성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이처럼 접종 선발국인 미국과 영국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우리나라를 포함한 후발 국가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접종대상자를 대면해야 하는 의료 현장에서는 ‘단순 지침이 아닌 완벽한 시나리오’를 요구하고 있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의 간호사 A 씨(28)는 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2020년 마스크, 인플루엔자 백신 대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인플루엔자 백신 유통 문제가 생긴 뒤 백신 안전성을 묻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와 아수라장이 됐던 기억이 난다”며 “백신의 안전성은 물론이고 여러 문제에 대한 상황별 시나리오가 수립되어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접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접종 한 달을 앞둔 1월 8일 현재까지도 세부 사항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월 8일 출범한 ‘예방접종 대응추진단’이 세부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방접종 대응추진단’은 1월 안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와 기간, 접종 간격, 이상반응 관리 체계 등 세부적인 접종계획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 1분기까지 백신 보관에 필요한 초저온 냉동고 200여 대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백신에 대해서는 ‘동일 백신 접종’ 원칙은 지키되 개인이 백신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백신마다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기가 달라 개인의 백신 선택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