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난하게 살아오신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상당히 엄격하셨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말이 많다고 맞고, 동생이랑 싸운다고 맞고, 초등학교 때 검사한 아이큐가 낮다고 맞았다. 아이큐가 낮은 건 내 문제가 아니고 아버지 문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노량진에서 조그맣게 장사를 했던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사채를 썼고, 그 사채에 이자까지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시 굉장히 낡은 삼륜차를 타고 나와 누나를 데리러 왔다. 부모님과 누나 동생이 앞에 탔고, 나는 천막이 씌워진 짐칸에 홀로 앉아 아버지 철물점으로 향했다. 삼륜차는 덜컹거렸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했다. 부모님과 함께 잔다는 생각에 기뻤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섯 가족이 다 모이면 어머니는 김치찌개를 끓여줬다. 난 배불리 밥을 먹고 단칸방에서 아버지 등을 만지며 잤다.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고급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승용차에는 50대 아저씨와 20대 청년이 타고 있었다. 50대 아저씨가 나를 찾았다. “네가 OO 아들이냐”고 물었고 나는 “맞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당시 내가 너무나 갖고 싶어 했던 고급 필통을 건넸다. 필통 안엔 지우개가 달린 연필, 칼, 자 같은 학용품이 들어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게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필통을 가슴에 꼭 안고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했다. 그 아저씨 승용차에 타 나는 이리가라, 저리가라며 길을 안내했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가는 내내 필통을 자랑할 생각에 몹시 흥분해 있었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 철물점에 그들을 안내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철물점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를 무참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네가 내 돈을 떼어먹고 도망을 가느냐”며.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뭇매를 맞았다. 그제야 나는 상황판단이 됐다. 내가 빚쟁이 아저씨를 아버지에게 데려다준 것이었다. 상황은 아버지가 언제까지 돈을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야 종료됐다.
난 단칸방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언제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까라는 생각에 바들바들 떨었다. 어머니는 채권자들에게 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아버지에게 김치찌개와 소주를 곁들인 술상을 가져왔다.
아버지는 말없이 소주를 드시다 갑자기 엉엉 울었다.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언제 아버지에게 맞게 될까. 얼마나 맞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울음을 멈추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놈이 말이야. 어떻게 여길 찾아왔지? 깜깜한 야밤에 그것도 두어 번 트럭 뒤에 타고 온 놈이 여길 정확히 찾아온 게 난 너무 신기해.”
아버지는 나를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기특해 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아오셨다.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위해서 살지 못했고 가난을 이기려고 열심히 살아왔다. 소띠 해를 맞아서 열심히 살아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과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응원과 감사함을 전한다. 2021년 신축년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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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