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파란 가을’을 만나다
▲ 남한산성 트레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 |
일단 남한산성부터 보자면 이보다 걷기 좋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산줄기들은 가까이 다가와 성을 겹겹이 외호했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서 성 밖 들에 닿았다. …성 안은 오목했으나 산들이 바짝 조이지는 않았다. …성벽을 따라서 소나무 숲이 서늘했고….”
소설가 김훈이 본 ‘남한산성’의 풍광이다. 남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의 성터에 1624년(인조 2년) 축조하기 시작해 1626년 완성됐다. 광주와 하남, 성남에 걸쳐 있으며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해 청량당, 숭열전, 수어장대, 침괘정, 연무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둘러보는 길은 짧게는 1시간 코스부터 길게는 3시간 30분 코스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남문에서 출발해 수어장대·서문·북장대·북문·산성종로를 도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대략 4㎞ 거리로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걷기 좋은 선선한 날에는 전체를 도는 코스도 버겁지 않다. 동문·남문·수어장대·서문·북문·동장대터를 거쳐 다시 동문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거리는 8㎞가 채 되지 않는다.
미리 알고 걸으면 즐거움 두 배
성곽 주변으로 울창한 노송들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함께 견딘 산 증인. 뿜어대는 피톤치드에 아픔이 어려 있다. 짧은 코스로 돌았을 때 보지 못 하는 남쪽의 옹성들을 차례차례 지나면 남문이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또 하나의 성벽을 둥그렇게 둘러싼 것을 말한다. 적이 성문을 열기 위해서는 옹성이라는 1차 방어선을 먼저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방어가 쉽다. 남한산성에는 남쪽에 세 개의 옹성과 서쪽과 동쪽에 각 하나씩의 옹성 등 모두 5개가 있다. 이곳에서 30분쯤 더 걸으면 남한산 최고의 야경 명소인 서문에 닿는다. 도중에 지나는 수어장대는 지휘통제소와 같은 곳으로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서 있다. 남한산성에는 수어장대를 포함해 모두 5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현재 남은 것은 서장대와 수어장대뿐이다.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다시 30분 거리다. 그리고 북문까지 동장대터까지가 그보다 조금 멀어서 50분가량 걸린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적의 화살을 방어하기 위한 여장과 대포를 설치했던 포루 등을 볼 수 있다. 미리 이런 성곽의 다양한 구조물들에 대해 공부를 해서 트레킹에 나서면 훨씬 유익하다. 지형에 따라 왜 그러한 것들이 설치가 됐는지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동장대터에서 출발지였던 동문까지는 다시 30분을 더 걸어야 한다. 동문 가까이에는 장경사와 망월사가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장경사는 성내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지은 당시(1624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불경을 적어 놓은 원통인 마니차가 사찰 뒤편에 있다. 이것을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장경사 뒤편의 망월사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정할 때 지은 것이라는데, 일제강점기 때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것은 그후 복원했다.
한편, 남한산성을 찾는 길에는 엄미리에 잠시 들러보길 권한다. 43번 국도를 타고 하남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은고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엄미리 미라울마을이 있다. 남한산성에서 약 30분 거리다. 그곳에 아주 멋진 장승이 있다. 오리나무를 깎아 만든 목장승으로, 요즘엔 엄미리의 장승처럼 제대로 전통의 형식미를 갖춘 것들을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엄미리에서는 330여 년 전부터 장승제를 이어오고 있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난 뒤 전염병이 창궐하자 장승을 세워 물리치려는 의도로 시작된 의식이다. 장승제는 2년에 한 번씩 음력 2월 초에 지낸다. 높이 2m, 두께 30㎝ 크기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각 2개씩 만들어 세운다. 장승제가 끝난 후에도 장승들은 함부로 뽑아 던지지 않는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 7월 새로 단장해 선보인 청석바위 생태공원, 남한산성 서문, 남한산 망월사. |
습지생태공원도 걷기 명소다. 조성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공원으로 퇴촌면 정지리에 자리하고 있다. 용인시 호동 문수봉에서 발원해 광주시를 거쳐 북쪽의 팔당호에 합류하는 경안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경안천의 총 연장은 49.5㎞로 제법 길다. 공원의 위치는 팔당호의 바로 아랫부분이다. 강물이 수도권 식수원인 팔당호로 유입된다는 점에서 경안천은 관리감독이 철저히 필요한 하천이다. 이 하천은 1998년부터 광주시가 실시해온 수질 개선 사업 이후 오염 하천이란 예전의 오명을 벗었다. 광주시는 수백억 원을 들여 하수처리시설을 확충하고, 연꽃, 갈대, 부들, 창포, 부레옥잠갈대 등 수생식물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하천을 정화했다. 그 결과 쉬리·농어·잉어·모래무지 등 민물고기가 넘치고, 쇠오리·흰뺨검둥오리·논병아리·왜가리·가마우지 등 새들의 천국이 되었다.
16만 2000㎡ 규모로 조성된 습지생태공원은 달라진 이 하천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연이은 태풍으로 연꽃은 거의 모두 떨어지고 없지만, 부들과 창포가 습지에 가득하고, 산책로 주변으로는 들꽃들이 흐드러졌다. 산책로는 3㎞가량 이어진다. 걸어서 1시간쯤 걸린다.
수상으로 설치된 나무데크를 따라 걷다보면 팔자 좋은 개구리가 연잎 위에 앉은 채 사람 구경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청개구리가 대부분이지만, 운이 좋다면 금개구리를 만날 수도 있다. 최근 이곳 생태공원에서 멸종위기 2급 종인 금개구리 서식지가 발견됐다. 금개구리는 길이 6㎝가량의 한국 특산종. 환경부서 양서류 가운데 맹꽁이과로는 유일하게 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생물이다. 경안천의 생태계가 얼마나 잘 복원 됐는지 보여준다. 나무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선 이전에 본 풍경과는 또 다른 경안천의 모습이 좌측으로 펼쳐진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산과 둑방 사이에 섬처럼 떠 있는 늪.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새들이 하늘을 맴돈다.
‘자전거로도 OK’ 청석바위공원
걷기 좋은 곳은 또 있다. 지난 7월 개장한 청석바위공원이다. 습지생태공원에서 8㎞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 공원은 광주시와 신세계그룹이 습지생태공원과 마찬가지로 팔당 상수원 보호와 수질개선을 위해 조성한 것이다. 목현천과 경안천이 만나는 청석체육공원 맞은편에 약 3만㎡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관찰학습원, 식생수로, 수질정화관찰습지, 산책로, 잔디광장, 관찰데크, 친환경학습장 등의 시설이 있다. 공원이 완성되고, 수질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곳은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되었다. 특히 목현천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즐긴다. 옆으로는 자전거도로가 있어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수변을 하이킹한다.
영은미술관도 산책하기 괜찮다. 대유문화재단이 예술문화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0년 11월 설립한 미술관이다. 영은미술관 건물은 지난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 입선할 정도로 건축미가 빼어나다. 미술관 건물과 유리공방, 도자기공방, 연구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으로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돌면 공방건물들이 나온다. 공방건물을 지나 미술관 쪽으로 가는 길에 숲이 아주 좋다. 미술관과 공방 건물 사이에는 잔디광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각종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중부고속도로 경안IC→도마삼거리(우회전)→광동교→광동사거리(우회전)→퇴촌면사무소→습지생태공원. 남한산성은 이곳에서 광주시청 방면으로 나오다가 43번 국도를 만나서 우회전 한 후, 중부면사무소 앞 쪽에서 342번 지방도 이용. ▲먹거리: 분원리에 붕어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들이 많다. 그중 ‘어가’(031-768-3995)는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붕어찜과 매운탕을 팔아온 집이다. 붕어찜(2인 기준) 3만 원, 어가매운탕 4만 원. ▲잠자리: 습지생태공원에서 퇴촌면사무소 방향으로 올라가면 타보레모텔(031-765-3050) 등 강변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숙박업소들이 있다. ▲문의: 경기도 광주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 gjcity.go.kr), 친환경사업단 031-760-4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