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차려논 밥상’서 숟가락질만?
▲ 삼성화재배에서 김은선 3단과 루지아 2단이 판정시비를 벌여 결국 재대결을 했다. |
한국과 중국의 바둑 룰이 다른 데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한국과 일본 룰에서는 잡은 돌 하나는 한 집이다. 상대방 돌을 잡으면 통 뚜껑에 담아 놓았다가 계가할 때 그걸로 상대방 집을 메운다. 중국 룰에서는 사석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결과는 같게 나온다. 공배 처리로 변수가 생기는 수가 있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어쨌든 난감한 장면이었다. 세계대회는 주최국의 룰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한국 룰을 숙지하지 못한 루지아 2단의 불찰이다. 그러나 반외의 실수 아닌가. 고심하던 입회인은 재대국을 제안했고, 김 3단이 다시 이겼다.
이걸 두고 한·중 양쪽에서 논란이 있었다. 바둑의 승부는 반상-반외의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것, 실수라는 게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주장과 정당하지 못한 승부, 아름답지 못한 태도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한국 팬들이 모두 김 3단 편을 든 것은 아니었다. 중국 팬들이 모두 루지아 2단 편을 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마샤오춘 9단이 김 3단과 한국기원의 처사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는 식으로 격렬히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제2탄은 9월 7일자 국내 일간지 바둑란에 실린 글. 우연히 지난호 본란에서 지적한 것과 비슷한 내용인데, 중국도 이제는 번듯한 세계대회 같은 걸 주최하라는 것. 시쳇말로 덩치 값을 좀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이튿날 중국 체육국의 바둑 관계 간부인 류스밍 주임(54)이, 앞서 마샤오춘 9단이 그랬던 것처럼 거친 목소리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요지는 “우리도 할 만큼 하고 있다. 한국이 그렇게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국도 세계대회를 국내대회로 돌리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제3탄은 루이나이웨이 9단과 장주주 9단 부부. 장·루이 부부는 현재 한국기원 소속기사인데, 프로기사회에서 장·루이 부부를 다시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때처럼 객원기사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장·루이 부부는 1980년대 끝 무렵에 중국을 떠나 일본 미국 등지로 10여 년 유랑하다가 1999년에 한국에 들어와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활동을 시작해 2001년에 소속기사가 되었다. 중국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톈안먼(천안문) 사건’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사실은 중국 바둑계의 최고 실권자 녜웨이핑 9단과의 불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들도 톈안먼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녜웨이핑 9단과의 불화 때문이었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소속기사와 객원기사는 차이가 크다. 우선 객원기사는 복지 수당을 받지 못한다. 지금은 한 사람이 56만 원씩, 합해서 매월 112만 원을 받고 있다. 퇴직금도 없다. 퇴직금은 한국기원이 주는 것이 아니다. 기사들이 대국료와 상금에서 일부를 떼어 적립한 기금에서 나가는 것. 객원기사는 또 기사총회에 참석할 수는 있어도 투표권은 없다.
루이 부부의 신분 강등에 대해선 국내 바둑인들이 찬반으로 갈라져 설전을 벌이고 있다. 반대하는 쪽이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객원기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는 것. 이제 와서 규정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걸 소급적용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 △게다가 루이 9단이 아시안게임에 중국 대표로 나온다는 것에 대한 옹졸한 보복 조치 같은 것 아니냐는 것 등이다.
미묘한 사안이다. 명분으로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는 게 사실이다. 예컨대 권갑룡 8단의 딸 권효진 5단과 결혼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인 위에량 5단은 객원기사라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은 위에량 5단을 소속기사, 루이 부부를 객원기사라고 하는 것이 더 쉽게 수긍되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한국기원 객원기사 규정이 다소 무원칙했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아시안게임 대표 건도 그렇다. 가령 중국기원이 한국기원에 양해를 구하고 루이 9단을 초청했다거나 그랬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루이 9단은 중국에 건너가 아시안게임 중국 대표선수 선발전에 참가해 뽑혔다. 조치훈 9단이나 박지성 선수를 예로 들곤 하는데, 적절치 않다. 조치훈 9단이 한국 대표로 출전한 적은 없었고, 박지성 선수는 계약이다. 한국기원과 루이 부부가 계약서를 주고받은 것은 아니다. 바둑의 세계무대는 아직은 입단, 방출, 트레이드 같은 것이 없는 시장이다. 한국기원은 손님을 너무 후하게 대접했다가 뒤늦게, 조금은 억울하게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어설펐던 면이 있다. 그러나 오비이락일지언정 한국기원이나 기사회가 그렇게 비난을 받을 일만은 아니다.
새로 만들어진 객원기사 규정은 9월 하순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라가며 통과되면 10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