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킥 스트레스 쫙~ 내려갑니다”
배우에게 변신은 숙명이다. 주어지는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선 캐릭터마다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정보석의 변신은 가히 파격적이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너무나 무능하고 무기력한 남성상을 선보이더니 드라마 <자이언트>에선 너무나 유능해 악랄한 남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두 캐릭터가 같은 배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보석은 두 작품 속 엇갈린 이미지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색깔의 인간 정보석이었다.
▲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철저하게 악인 캐릭터인 ‘조필연’을 맡아 열연 중인 정보석. ‘지붕킥’ 속 소심한 가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
MBC 월화드라마 <동이>와의 시청률 격차를 크게 줄이며 추월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 드라마 <자이언트>는 강적 <동이>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돼 방영 초기 다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서서히 시청률을 끌어 올린 <자이언트>는 이제 <동이>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 저력은 무엇일까.
“처음 책(대본)을 받고 우리 근세사, 그 가운데서도 특히 관심이 많은 개발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 핵심 지역인 강남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 이끌렸어요. 결국 드라마는 이런 개발기를 살아간 이들의 욕망을 드려내고 있죠.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선 잘 사는 이들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어쩌면 기업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좀 약한 부분 역시 개발과 성장기에 있었던 정경유착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이로 인해 기업가들에 대한 일정 부분 편견이 있죠. <자이언트>는 정경유착 같은 부분을 보여주면서도 전체 기업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부분도 보여주고 있어요. 이런 부분이 드라마 안에서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좋은 드라마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정보석은 이 드라마에서 철저한 악역인 ‘조필연’을 연기하고 있다. 군 장교 출신의 안기부 간부에서 이제는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조필연은 주인공 이범수 가족과 대립한다. 그렇지만 정보석은 조필연이 악역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조필연이 악역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방영분에서 조필연의 악인에 대한 자기 변론이 나왔어요. 그는 비록 다른 사람과는 다른 가치관, 다른 깊이를 갖고 있지만 자기 신념을 옳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어요. 다만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악인이라 치부해 버린다는 게 조필연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죠. 나 역시 조필연이 악당이라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어졌던 그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던 의식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는 뚜렷한 자기 신념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갖고 밀고 나가는 인물일 뿐이죠.”
요즘 드라마의 특징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악역 역시 그 나름의 사연과 상황이 있고 드라마는 이를 시청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조필연은 다르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등장한 순수한 악역이다. 배우 입장에선 출연을 망설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만큼.
“바로 전에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굉장히 헐렁한 역할을 소화했어요. <지붕 뚫고 하이킥>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돈돼 있고 강렬하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기존 이미지 때문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기존 이미지를 이젠 풀어놔야 되는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어 1년 넘게 방송 활동을 중단한 채로 연극 무대에 서며 그런 캐릭터를 기다리던 상황이었어요. 반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을 시작하면서는 다음 작품에서 지독한 악역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만약 빨리 그런 캐릭터가 안 오면 다시 연극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기다리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너무 적절할 때 <자이언트>를 만났죠. <대조영>을 함께했던 장영철 작가에게 섭외 전화를 받았는데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악역이기 때문이라는 데 그 얘길 듣고 내가 되레 정말 악역이냐고 되물었어요. 정말 반갑게 출연을 결정했고 지금도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정보석은 이처럼 배우로서 조필연을 만난 것이 너무 행복하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 더 그는 배우에게 악역은 부담스럽기보단 오히려 시원하고 스트레스까지 날려 버릴 수 있는 좋은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본인이 요즘 조필연 때문에 행복하다고.
“실제로 악역을 하다 보니 너무너무 신이 나요. 평소엔 마음속에 좀 불편한 뭔가가 다가와도 보통은 그냥 이해하려 애쓰거나 참고 넘기려 하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상황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며 살진 못하니까요. 그런데 조필연은 마음대로 표현해요.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용서 안하니까. 그게 너무 신나요. 내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 풀고 살았을까 싶어요. 내가 배우이고 조필연이라는 캐릭터를 만났기에 그런 감정의 부침들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고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죠. 정말 시원하고 스트레스도 다 풀리는 것 같아요. <지붕 뚫고 하이킥>을 하며 쌓였던 걸 여기서 다 풀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지붕 뚫고 하이킥>의 ‘보석’과 같은 캐릭터를 만나기 위해 1년 넘게 방송 활동을 쉬었고, 그 다음엔 반드시 악역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에서 완벽한 연기 변신을 보여주는 배우 정보석의 내공이 엿보인다. 그렇지만 처가살이를 하며 부인과 장인을 비롯한 가족들은 물론 장인이 사장인 회사에선 직원들에게까지 무시당하는 무능한 남성상을 그려내다 하루아침에 조필연같이 강인한, 너무 강인해 악랄하기까지 한 남성으로 변신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연기 스타일은 캐릭터와 나의 소통점을 만들고 그것을 확대시켜 나가는 거예요. 난 끊임없이 캐릭터를 분석하고 설정해서 연기하기보단 캐릭터를 믿고 내 감정으로 밀고 나가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지붕 뚫고 하이킥>의 ‘보석’도 나의 일부이고 <자이언트>의 조필연도 내 일부예요. 평소 내가 참고 지냈던 것들, 나도 사람인데 욕망도 있고 욕심도 있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이렇게 내 안에 조필연과 합치되는 부분을 찾아낸 뒤 확대시켜 가며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요. 그런 뒤엔 조필연이라는 캐릭터를 믿고 합치된 감정을 밀고 나가죠.”
너무 무능해 보이던 ‘보석’과 너무 악랄한 ‘조필연’, 이처럼 판이한 캐릭터를 연이어 소화하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도 이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주변에선 과연 어떤 캐릭터를 더 싫어할까. 특히 그의 가족들 반응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조필연을 조금 더 싫어할 거 같아요. 아무래도 조필연에 집중하다 보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죠. 평소 생활에서도 조금만 걸리는 일이 있어도 반응을 하게 돼요. 반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풀어놓고 가야 되는 캐릭터라 어지간한 일엔 그냥 허허하며 지나갔죠. 생활과 연기를 완벽하게 구분을 못해서 아직 배우로서 멀었다는 얘길 종종 하는데 그런 부분 때문에 집에선 조금 불편할 거예요.”
이제 <동이>와의 시청률 경쟁은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이>가 연장 방영이 결정된 뒤 극의 전개가 다소 느려졌다는 평까지 받고 있는 터라 <자이언트>의 막판 대역전까지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청률 접전이 <자이언트> 출연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정보석은 그런 생각을 가장 금기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은 의식해서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만약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건 너무나 건방진 생각이죠. 우리는 갖고 있는 능력만큼 최선을 다할 뿐이고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에요. 최선을 다한 뒤 내 노력에 대한 평가와 선택을 행복하게 받아들여야지 시청률을 의식해 이렇게 하면 <동이>를 이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이런 얘길 동료 배우들과 많이 해요. 감독님에게도 비슷한 얘길 했었어요. 우리가 열심히 하면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시청률을 의식해 이기려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편안하게 우리끼리 열심히 하자고.”
정보석은 드라마 <달콤한 인생>에 출연 중이던 지난 2008년 ‘김태진 리포터의 맛있는 인터뷰’ 코너를 통해 <일요신문> 독자들에게 인사한 바 있다. ‘김태진 리포터의 맛있는 인터뷰’ 코너가 마무리된 뒤 이를 정리하는 기사에선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매너 있는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정보석의 빼어난 매너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이는 인터뷰에서의 모습일 뿐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분장을 하고 의상까지 갈아입자 배우 정보석은 오간 데 없고 그는 다시 ‘조필연’이 돼 있었다. ‘조필연’을 만난 게 너무 행운이고 기쁘다는 정보석. 시청자들은 조필연을 연기하는 정보석이라는 배우를 만났다는 게 행복할 것 같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정보석의 특별한 외출
“후배들의 ‘판’ 키워주고 싶다”
9월 29일부터 11월 21일까지 두 달 가량 대학로에서 축제가 하나 열린다. 우수예술축제로서 10회째를 맞이하는 ‘2인극 페스티벌’이 바로 그것. 1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려질 예정인 이번 ‘2인극 페스티벌’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조직위원장을 정보석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관여했는데 그땐 처음이라 배우기만 했고 올해부터는 조금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같이 하고 있어요. 2인극은 말 그대로 두 명이 하는 연극이에요. 사실 두 명이면 가장 작은 소통 단위지만 또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단위기도 해요. 두 명만 모여도 이런 저런 얘길 하다보면 우주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잖아요. 사실 모든 게 벌리는 것은 얼마든지 쉽지만 함축은 어려워요. 그만큼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영화로 보면 독립영화에 해당되는 연극이에요. 그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이 뜨겁지만 큰 규모의 연극을 꾸려가기 힘든 이들을 위한 자리예요. 이런 분들에게 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인데 너무 좋은 취지이고 재밌겠다 싶어 함께하게 됐어요.”
이번 2인극 페스티벌엔 모두 22개 팀이 참여한다. 우선 10주년에 맞춰 10개 팀을 공식 초청했는데 현재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이 초대됐다. 그리고 10개 팀은 자유 참가작으로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의 반짝이는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페스티벌 분위기를 돋워줄 야외 공연 팀이 두 팀 참가한다. 정보석은 만약 이번 일이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사라면 해내지 못했을 거라 얘기한다.
“그동안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해온 편인데 이번에 2인극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예요. 전 배우로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운이 좋아 많은 혜택을 받은 편이에요. 이런 내가 후배들을 위해 그런 일에 같이 참여하는 게 내가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안타까운 부분은 직접 2인극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올해 반드시 한 작품에 출연하려 했지만 지난해 그가 출연했던 연극 <시집가는 날>이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선정돼 10월 말 무대에 올라 일정이 겹친다. 아쉽게도 올해는 2인극 출연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년에는 꼭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올해 무대에 직접 서지 못해 너무 아쉬운데 많은 분들이 대학로를 찾아 2인극을 관람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관람표도 비싸지 않은 데다 기발한 생각들이 참 많아요. 특히 자유참가작들은 깜짝 놀랄 정도예요. 비록 잘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상력과 아이디어만 느껴도 굉장히 큰 소득일 거예요. 또 그들의 폭발할 것 같은 열정도 느껴보시고. 정말 많이들 같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의 ‘판’ 키워주고 싶다”
“지난해부터 관여했는데 그땐 처음이라 배우기만 했고 올해부터는 조금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같이 하고 있어요. 2인극은 말 그대로 두 명이 하는 연극이에요. 사실 두 명이면 가장 작은 소통 단위지만 또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단위기도 해요. 두 명만 모여도 이런 저런 얘길 하다보면 우주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잖아요. 사실 모든 게 벌리는 것은 얼마든지 쉽지만 함축은 어려워요. 그만큼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영화로 보면 독립영화에 해당되는 연극이에요. 그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이 뜨겁지만 큰 규모의 연극을 꾸려가기 힘든 이들을 위한 자리예요. 이런 분들에게 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인데 너무 좋은 취지이고 재밌겠다 싶어 함께하게 됐어요.”
이번 2인극 페스티벌엔 모두 22개 팀이 참여한다. 우선 10주년에 맞춰 10개 팀을 공식 초청했는데 현재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이 초대됐다. 그리고 10개 팀은 자유 참가작으로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의 반짝이는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페스티벌 분위기를 돋워줄 야외 공연 팀이 두 팀 참가한다. 정보석은 만약 이번 일이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사라면 해내지 못했을 거라 얘기한다.
“그동안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해온 편인데 이번에 2인극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예요. 전 배우로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운이 좋아 많은 혜택을 받은 편이에요. 이런 내가 후배들을 위해 그런 일에 같이 참여하는 게 내가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안타까운 부분은 직접 2인극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올해 반드시 한 작품에 출연하려 했지만 지난해 그가 출연했던 연극 <시집가는 날>이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폐막작으로 선정돼 10월 말 무대에 올라 일정이 겹친다. 아쉽게도 올해는 2인극 출연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년에는 꼭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올해 무대에 직접 서지 못해 너무 아쉬운데 많은 분들이 대학로를 찾아 2인극을 관람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관람표도 비싸지 않은 데다 기발한 생각들이 참 많아요. 특히 자유참가작들은 깜짝 놀랄 정도예요. 비록 잘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상력과 아이디어만 느껴도 굉장히 큰 소득일 거예요. 또 그들의 폭발할 것 같은 열정도 느껴보시고. 정말 많이들 같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