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죽이기냐 상식적 목소리냐
▲ 타블로를 고소한 인터넷 카페 ‘상식이 통하는 세상’ 화면 캡처 사진. 작은 사진은 상진세의 |
지난 10월 1일 <MBC 스페셜> ‘타블로 스탠퍼드를 가다’ 편에서 타블로는 직접 스탠퍼드대학을 찾아 학력위조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했지만 타블로를 고소한 인터넷 카페 ‘상식이 진리인 세상’ 회원들은 여전히 관련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은 악플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누구이기에, 또 무슨 이유로 법정다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타블로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일까.
연예부 기자들에겐 참으로 많은 제보 이메일이 배달된다. 올 초부터 타블로 학력 관련 제보 이메일이 꾸준히 늘었는데 이메일에는 관련 의혹을 볼 수 있는 곳이 링크돼 있었다. 그곳은 바로 인터넷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다. 타진요 사이트에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타블로 관련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이에 스탠퍼드대학 재학시절 성적표 등을 공개하며 맞선 타블로는 타진요 회원들에게 관련 글을 내리라는 최후통첩을 했고 결국 타진요 회원 스물두 명을 경찰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악플러에 대한 연예인의 고소는 이미 여러 번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렀다. 지난 9월 3일 인터넷 카페 ‘상식이 진리인 세상(상진세)’ 회원 네 명이 직접 자신들의 얼굴을 공개하며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타블로를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죄(또는 사문서부정행사죄)로 고발한 것. 9월 17일엔 상진세 회원 두 명이 전산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타블로를 상대로 추가 고발장을 접수했다. 한편 상진세는 본래 타진요에서 활동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타진요를 나와 새롭게 만든 카페다.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그렇지만 더 눈길을 끄는 사안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네티즌들의 움직임이다. 타블로를 고소한 상진세 회원들은 자신들을 악플러라 치부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데 그만큼 기존 악플러들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우선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인 익명성을 버렸다. 물론 1만 3000여 명의 회원 모두가 익명성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카페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회원들은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냈다. 회원들이 직접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당당히 매스컴 앞에 섰다. 1인 시위를 하며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익명성에 숨어 의혹만 제기하지 않고 직접 타블로를 검찰에 고발하고 MBC가 <MBC 스페셜> ‘타블로 스탠퍼드를 가다’를 방영하려 하자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원에 방송보류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상진세의 검찰 고발장은 총 15페이지에 증거자료가 180여 페이지에 이르는데 상진세 사이트에는 더욱 다양한 타블로 의혹 관련 자료가 빼곡히 담겨 있다. 단순한 악플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루머가 아닌 나름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의혹 제기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우선 연령대부터 다르다. 한 상진세 회원은 ‘30~4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 할일 없어 안티 팬? 애초에 연예인 타블로를 알지도 못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물론 회원 모두가 30~40대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활동 회원의 상당수 연령대가 30~40대다. 심지어 45세 이상 65세 이하의 회원을 중심으로 한 ‘경노당’이라는 상진세 내부 조직을 결성한다는 글도 발견된다. 기존 10~20대 위주이던 악플러들과는 상당히 다른 연령대다.
가장 매스컴에 자주 노출된 이는 ‘당근밭’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회원으로 44세 남성인 그는 온라인 광고대행사 부사장이다. 그가 최근 상진세 사이트에 올린 글이 인상적이다.
“혼자 신문기자를 만나 실명으로 인터뷰를 했던 일, 절친인 변호사를 만나 법적 상의를 했던 일, 생전 처음으로 고발을 했던 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1인시위에 동조하여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던 일,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송인터뷰와 동영상 취재에 응했던 일, 오늘은 스나이퍼와 담담하게 MBC와 맞대응을 하러 가는 날.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참 요지경입니다.”
상진세 사이트에 자신의 사진과 자세한 이력을 밝힌 유명 소설가도 있다. 유명한 역사소설가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디지털작가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압슬’이라는 아이디로 상진세 사이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인증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라는 글을 통해 자신이 유명 소설가임을 밝히며 각종 수상식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 한국에 와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고 있다고 밝힌 회원, 문제의 스탠퍼드대학을 실제 졸업한 회원, 전직 신문기자 등 각계각층의 평범한 시민들이 상진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0~20대 학생 중심의 기존 악플러와는 전혀 다른 회원 구성이다. 그러다 보니 각계각층에서 관련 의혹에 대한 다양한 근거자료를 수집하고 검찰에 정식으로 고발장까지 접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전면에 나서 타블로의 학력 위조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근거를 캐내는 것일까. 상진세 사이트 초기화면을 통해 이들은 ‘대한민국엔 허위학력, 학위위조자가 5만 명에 달한다. 이중국적과 국적세탁으로 병역 의무를 회피하고 권리는 모두 향유하는 0.1%의 기득권 상류층의 만행들도 가히 목불인견이다. 타블로 씨, 그런 중심에 당신도 서있다. 5분이면 증명할 수 있는 졸업증명을 5년째 끌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을 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출입국증명서, 여권, 입학허가서, 유학비자, 졸업앨범, 학창시절 사진 중 하나만이라도 보여달라’는 글도 보인다. <MBC 스페셜>이 스탠퍼드대학에서 직접 확인한 타블로의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들을 보도했고, 스탠퍼드대학도 타블로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요구한 자료는 단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인터넷문화협회 박천욱 사무처장은 “가수를 노래보다 명문대를 나왔다는 등의 배경으로 평가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슈 제기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네티즌들의 거듭된 의혹 제기와 파헤치기로 타블로의 사생활이 침해된 것은 우려스럽다”며 “기존 악플러들과 상당히 달라졌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얘기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