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교수 “왜곡된 인식만 키운 방송” vs 장항석 교수 “공포심 조장한 적 없어”
지난 1월 3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전염병의 역사’ 편에서 스페셜 강사로 출연한 장흥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비판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사진=tvN 제공
지난 4일 장항석 교수는 환자들과의 소통 공간인 인터넷커뮤니티 ‘거북이 가족’ 카페에 “박흥식 교수께서 개인 SNS에 방송(벌거벗은 세계사)이 역사 왜곡을 했으며 자문을 거치지 않았고, 괜한 공포심을 조장했다는 내용의 비판글을 게재했다”며 “저는 의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2018년 ‘판데믹 히스토리’라는 책을 집필한 바 있고, 당시 검토했던 수많은 책과 자료 및 연구를 토대로 이번 ‘페스트’ 편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작진과 함께 여러 가지 잘 알려진 설들 중 가장 보편타당성이 있는 내용을 엄선하려 노력했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 각 세부 주제들을 구성했다”며 “의학적인 관점에서 페스트라는 감염병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질병에 승리해온 역사를 말하며 현재를 이겨낼 희망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흥식 교수가 지적한 왜곡 부분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 교수는 “저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양한 역사학적 관점과 의견이 존재하며, 세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지적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며 “제가 감염병 관련 책을 준비하면서 찾았던 그 수많은 자료들이 박 교수님의 주장대로 다 왜곡이라고 한다면, 페스트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수많은 책들은 다 폐기되어야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송과 관련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몇 가지 말씀을 덧붙이고자 한다”며 “SNS에 공개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의 의사가 나섰다’는 식의 인신공격성 언급은 지나친 발언이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원 출연진이었던 설민석의 논문 표절과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사진=tvN 제공
장항석 교수는 “의학 분야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상충될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한 토론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킨다. 충분히 역사학적 토론이 가능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언사를 통한 일방적인 매도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술하고 생명을 살리는 외과 의사로서 신뢰성이 중요한 사람이다. 박 교수님의 지적 이후 많은 매체에서 저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제 저술 또한 일거에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 박 교수님의 SNS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대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제게 더 가르침을 주시고자 한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면 시정할 의사가 있다. 그런 만남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 일들이 해결되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며 “박흥식 교수님께 같은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 이야기를 풀어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박 교수님의 해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청한다. 박흥식 교수님의 긍정적 답신을 기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박흥식 교수는 지난 1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벌거벗은 세계사-전염병의 역사’ 편을 두고 “내용도, 구성도 꽝이었다”고 혹평한 바 있다. 박 교수는 “흑사병을 10년 넘게 공부했고 중세 말기 유럽을 전공하는 학자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라며 “중세 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료도 해석할 줄 모르는 한 의사가 왜곡된 인식만 키웠다. 흑사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목표였던가”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박 교수가 지적한 부분은 방송 속 강의에서 다룬 사안에 최근의 해석이 반영되지 않은 점, 강의 전반에 중세에 대한 편견이 깃들어져 있는 점, 르네상스가 흑사병 발병 시기보다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흑사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라는 희망이 시작됐다고 설명한 점 등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끝도 없을 듯 하고 그럴 가치도 없다. 설민석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문제인 듯 하다”며 “힘들게 자문해줬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 엉터리로 역사적 주제를 전달하려면 프로그램을 당장 폐지해야 옳다”고 프로그램 제작진을 꼬집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