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보행자와 함께 쓰는 겸용도로, 사람 치면 과실 100%…마땅한 보험도 없어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자전거 사고도 증가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A 씨는 “얼마 전 자전거로 출근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한 아주머니를 치었다. 자전거도로로 달리고 있었는데 인도 쪽에서 걷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자전거도로로 들어오면서 사고가 났다”며 “자전거 속도도 빠르지 않았고 자전거 규율을 잘 지켜가며 운행했기 때문에 처음엔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경찰은 100% 자전거 책임이라고 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도로는 크게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 전용차로 세 가지로 나뉜다. 그중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70∼80%다. 사진=연합뉴스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문제는 A 씨가 자전거도로라고 알고 있던 길이 실제로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였다는 점이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제2조에 따라 ‘차’로 분류되는 교통수단이다. 자전거가 차로서의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A 씨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서 ‘차’로 ‘보행자’를 친 셈이다.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우측통행을 해야 하며 자전거운전자도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 음주운전 시 사고가 나면 교통사고로 분류돼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도로는 크게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 전용차로 등 세 가지로 나뉜다. 2014년에 신설된 자전거우선도로도 있지만 비중이 현저히 낮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도록 차도 및 보도와 구분해 설치한 자전거도로이고,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자전거 외에 보행자도 통행할 수 있도록 차도와 구분되어 별도로 설치한 자전거도로다. 또 자전거 전용차로는 차도의 일정부분을 자전거만 통행하도록 안전표지나 노면표지로 차로와 구분해 놓은 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설치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도로의 효율면에서 불리하다. 또 자전거 전용차로는 시설비용은 거의 들지 않지만 역시 도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도시 내 자전거 도로의 70∼80%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로 보도에 설치되어 있다.
서울시의 ‘2020 자전거도로 및 자전거주차시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자전거 도로는 총 연장 940km(590개 구간) 가운데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622km(340개 구간)이고, 자전거 전용도로는 148km(100개 구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전거 운전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국가차원의 도로교육이 없을 뿐더러 공공자전거가 늘어남에 따라 도로교통법 등 법령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도 누구나 손쉽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전거 인구는 2019년 기준 1400만 명이나 되지만 자전거 이용자들의 보호 장비 착용이나 안전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여기에는 어린아이들도 다수 포함된다.
#자전거 사망사고도 많지만 보험은 없어
자전거사고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의 6~8%를 차지한다. 자전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건수 역시 전체 교통사고 사망 건수의 5~6%나 된다.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중 60%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가벼운 산책을 나왔다가도 언제든 자전거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
특히 좁은 인도 위에 설치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위에서 자전거운전자와 보행자가 부딪힐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차량 사고와 같이 운전자나 보행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적지 않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의 6~8%를 차지한다. 자전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건수 역시 전체 교통사고 사망 건수의 5~6%나 된다. 사진=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
휴일에 취미삼아 자전거를 타던 B 씨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줄 모르고 자전거도로라고만 생각해 약간 속도를 내어 달리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70대 노인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해 구속됐다. B 씨는 “수년째 취미로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자전거도로는 그냥 자전거도로인 줄로만 알았지, 보행자와 같이 이용하는 도로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퇴근하다가 사고를 겪은 C 씨는 “보행자와 섞여 겸용도로를 타고 가다가 보행자와 부딪히는 순간, 자전거도로는 곧바로 보도로 탈바꿈하게 되더라. 겸용도로에서 보행자와 부딪히면 거의 100% 자전거 잘못이 된다. 자전거 사고로 벌금은 물론 거액의 피해자 합의금과 위자료를 무는 자전거운전자도 많은데 자동차보험과 달리 마땅한 자전거보험도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불편을 이야기한다. 인도를 걷다가 여러 번 자전거 사고를 당할 뻔한 D 씨는 “인도 위에 자전거 도로라고 선을 그어놓았는데 가뜩이나 전봇대나 가로수 등으로 좁은 인도를 둘로 갈라놔 쉽게 자전거도로로 넘어가게 된다”며 “자전거 전용도로인 줄만 알았는데 보행자 겸용도로라고 하니 이젠 안심하고 걸어도 되겠다”고 말했다.
자전거 법에 따르면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상 자동차로 간주되어 인도에서의 운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2대의 자전거가 직렬이 아닌 병렬로 나란히 운행해서도 안 된다. 불법 개조도 금지사항이다. 또 13세 미만 어린이나 장애인·노약자를 제외하고는 인도나 횡단보도에서는 반드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야 한다. 특히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서 자전거는 차도와 닿은 도로 끝으로 운행해야 하는데 만약 이를 어기고 운행하다 보행자와 사고가 날 경우 자전거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자전거로 사람을 친 경우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서라면 일반적인 교통사고로 처리된다. 또 온전히 인도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1대 중과실 사고 중 보도통행방법 위반에 해당되어 5년 이하의 금고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한강둔치 자전거도로도 보행자 우선?
자전거도로는 크게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 전용차로 세 가지로 나뉜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표지판
자전거운전자들도 애로사항은 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자전거도로로 통행하되 자전거도로가 없는 경우에는 차로의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 통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자전거 운전자들은 “차량운전자들이 보도 위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도로들 때문인지 자전거에게 인도로 다니라면서 경적을 울리고 자전거를 차도 밖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어쩌다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역시 자동차 주정차 때문에 아예 길이 막혀 버리는 경우도 많다”며 하소연 했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자전거운전자와 보행자 둘 다를 위험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보행자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해서 운행이 비효율적이고,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위험한 데다 보행권을 침해당하기 일쑤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자전거 활성화 정책의 졸속행정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자전거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경우엔 보통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분리되어 있고 차도와도 분리된다. 통행하는 자전거의 속도 역시 제한을 둬 자전거들끼리의 사고도 방지한다. 하지만 한번 생긴 자전거 도로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 노선의 변경과 폐쇄 등을 하고자 할 때 지자체가 관할 경찰청장과 협의해서 진행해야 하는 데다 예산도 많이 들고 도로를 뜯거나 이어야 해서 시민 불편이 생길 수 있다.
자전거 교통사고 경험이 있는 한 자전거 운전자는 “법이나 도로사정을 바꿀 수 없다면 이용자들이 조심하게 이용하도록 교육을 하고 계도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 한마디로 무법천지다.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가운데 자전거도로가 보행자 겸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도 수두룩할 것”이라며 “치밀하지 못한 행정 때문에 사고 난 사람들만 지옥을 경험한다. 금전적‧정신적 피해가 상상 이상이다. 자전거도로의 명칭부터 명확히 해서 혼선이 없게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시의 ‘자전거도로의 노선지정에 관한 고시’를 보면 “한강둔치의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로 보행자가 이용함에 있어 합법”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자체의 수요조사 등 적극적인 행정협조를 비롯해 경찰청의 자전거 교통문화 계도도 필요하다. 또 자전거도로를 적절하게 구분하고 이의 법률적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