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아시아나엔 경영파탄 면책, 대한항공엔 족벌경영 특혜” 불승인 촉구
#독점적 시장지배력 우려
두 항공사가 결합되면 대한항공은 국내 양대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자회사인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이라는 3개의 LCC(저비용 항공사)까지 소유하게 된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주도한 ‘항공산업 빅딜’로 국내 1·2위 대형 항공사 간의 합병이다.
2019년 말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여객 합산 점유율은 42.2%, 화물 합산 점유율은 63.1%다. 양사의 LCC까지 합치면 여객은 66.5%, 화물은 81.9%에 이른다. 국제선의 경우 여객 합산 점유율은 56.0%, 화물 합산 점유율은 89.6%이다. 양사의 LCC까지 합치면 점유율이 여객은 73.1%, 화물은 93.4%다. 합병을 통해 독점적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항공산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산업 전반에 폐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했다. 한진칼 주주총회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여행업계에서도 국내 항공산업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할 경우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통해 항공산업 독점을 초래하게 된다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런 독점구조가 결국 국내 항공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항공 서비스 악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영업이익이 특정 재벌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비판도 인다. 한 중견 여행사 대표는 “대한항공이 경쟁 구도 없는 국내 최대 항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며 또 다시 예전처럼 갑질을 일삼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대형 항공사간의 인수합병을 두고 “항공재벌 오너만 배불리는 일방적 인수합병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식이 편법적이며 재벌 특혜”라고 꼬집었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자금 능력이 없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도록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거대 독점기업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항공산업의 공공성 역시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국민연금 반대에도 유상증자 속행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에 직접 투자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진칼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항공재벌의 경영권과 지배력 공고화를 위한 편법적 지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갑질 이슈와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웠다.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의 밀실협상으로 합병을 발표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5000억 원, 교환사채 발행을 통한 3000억 원 등 총 80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며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할 2조 5000억 원 가운데 1조 8000억 원의 자금을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자금의 흐름은 ‘산업은행–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진다. 국민연금이 반대했지만 그대로 진행된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은 국가의 정책금융기관이자 주채권은행이지만 이번 인수합병이 미칠 사회적‧경제적 파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 독과점이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비롯해 자회사나 하청업체 등에 관한 고용유지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양사 노동자들은 물론 그 자회사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에 내몰릴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산업은행에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원점에서의 재논의를 요구했지만 합병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두 항공사가 결합되면 대한항공은 국내 양대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두 항공사의 자회사인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이라는 3개의 LCC(저비용 항공사)까지 소유하게 된다. 인천공항 주기장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아시아나항공 경영책임은 유야무야
방만했던 아시아나 항공 경영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도 업계의 비판적 시선을 받고 있다. 2018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1년 시한으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019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이후 2019년 12월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불발됐다. 2020년 4월 HDC현대산업개발이 코로나19 상황을 근거로 인수조건 재협의를 요청했지만 산업은행이 재실사 요구를 거부하면서 2020년 9월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결렬된다.
그러다가 2020년 11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위해 한진칼에 800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양사의 합병은 급물살을 탔다. 2021년 1월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위한 주주총회를 열고 승인을 받아 아시아나항공 실사를 개시한 상태이며 3월 17일 완료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에는 이미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이 들어간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무리한 그룹 확장과 지배력 강화 등을 위한 사익 편취로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가 부실해졌음에도 이를 눈감아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6년 12월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 3조 원을 차입해 6조 4000억 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이 2500억 원을 출자한 바 있다. 또 2008년 3월 같은 방식으로 대한통운을 4조 10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때 아시아나항공이 보유지분 매각 등을 통해 1조 6362억 원을 조달했다. 박삼구 전 회장이 그룹 지배권 확보와 사익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방만했던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도 업계의 비판적 시선을 받고 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그룹 회장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이런 과정에서 금호그룹 계열사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는데 2010년 1월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은 희망퇴직 등을 고통분담을 강요받았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셈이다.
공정위는 2020년 8월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들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행위 및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박삼구 전 회장을 고발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조치가 없는 상태다. 오히려 공정위 직원이 금호그룹으로부터 수년 동안 돈을 받고 그룹에 불리한 자료 등을 삭제한 죄로 구속된 상태다.
참여연대는 “박삼구에게는 경영 파탄 면책 특혜를 주고 조원태에게는 족벌경영권 특혜를 주면서 대신 노동자와 시민에게 희생을 전가하는 불공정한 인수합병”이라며 “갑질로 정평이 난 두 항공사 오너일가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오히려 우월한 지위를 제공해주는 특혜 인수합병에 대해 공정위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불승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1월 20일 대한항공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상속세와 관련해 탈루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무조사가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합병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