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론 측 “인근 지자체 피해·현금깡 우려 커”…효용론 측 “전자화폐 깡 없고, 인근 지자체 함께 발전”
지역화폐 효용성 논쟁은 지난해 9월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지역화폐 발행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행안부의 국고 지원으로 전국 차원에서 발행량이 확산되고,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서 경기 부양책으로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투입해 지역화폐를 대폭 증액하면서 재정 부담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30개 지자체에서 판매된 지역사랑상품권은 약 13조 원으로, 2018년과 2019년 대비 각각 35.9배, 4.2배 늘어난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산하 조세연은 지난해 9월 지역화폐의 한계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재명 지사와 경기연구원, 행안부는 이에 반박하며 효용성을 강조했고, 논쟁은 지속됐다. 지난 2월 5일 한국경제학회가 진행한 학술대회에서 조세연과 경기연이 정반대 주장을 펼치며 맞붙었다. 차기 대선주자 이재명 지사가 강조하는 사업이란 점에서 이 지사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논쟁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지역화폐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심화하고 있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전역에서 지역화폐 발행이 시작된 2019년 4월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관계자들이 성남시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세연은 지난 5일 학술대회에서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기보다 행정비용을 늘린다고 주장했다. 조세연에 따르면, 지역화폐는 소비 역외유출을 막아 지역 내 소매업 매출이 증가하면, 동일한 만큼의 인접 지자체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킨다. 이에 인접 지자체도 지역화폐를 도입하면, 모든 지역이 도입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없어지고 발행 비용만 늘어난다.
지자체별 재무 상황이 달라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지자체는 시민들의 지역화폐 구매를 촉진하고자 10% 등 할인한 금액으로 판매한다. 이때 일반적으로 재정 상황이 열악하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소규모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 규모나 판매 할인율에서 불리한 여건에 놓일 수 있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도입하면 소규모 지자체는 피해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지역화폐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 무용론 측의 지적이다.
조세연은 지역화폐를 저렴하게 구매한 뒤 액면가 그대로 현금화하는 ‘현금깡’ 문제로 짚었다. 지자체는 정책적 현금성 복지혜택인 출산지원·청년배당·기초생활수급자 지원·공무원 복지포인트 등도 지역화폐로 대체 지급하는데, 이때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10%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불이익을 감수한 비자발적 지역화폐 소지는 시장가격보다 싼값을 받고라도 지역화폐를 현금화하려는 원인을 제공하고, 단속에 행정력과 비용을 낭비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거듭된 무용론에 이재명 지사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SNS를 통해 반박했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는 타지역이 아닌 자기 고장의 소비를 촉진하는 측면과 중소상공인 매출증대 지원을 통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으로부터 지역 소상공인들을 보호한다. 유통 대기업과 카드사 매출이 줄고 중소상공인 매출이 느는 건 연구할 것도 없는 팩트”라고 강조했다
‘현금깡’과 관련해서는 “1차 재난지원금에서 보듯 지역화폐는 저축을 할 수 없고 반드시 소비해야 하므로 승수효과(정부 지출을 늘릴 경우 지출한 금액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가 크며, 전자화폐로 지급하기에 불법할인(깡) 가능성도 없다. 재충전이 가능해 발행비용도 반복적으로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기연도 5일 학술대회에서 소비자 32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 22일부터 8월 25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제시하며 지역화폐 효과를 강조했다. 경기연에 따르면, 사용 업종과 규모를 제한한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점포로의 구입처 변경과 추가 소비를 유도했다. 경기지역화폐가 현금으로 지급될 경우 저축(45.3%)하거나 지역상권 이외에서 소비(53.7%)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9.0%에 달하는 만큼 지역 내 자영업 소상공인 지원에 도움이 됐다는 판단이다.
소비자들도 70.9%는 경기지역화폐 정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정책효과 질문에서도 소상공인 매출 증가(80.2%)가 가장 높았으며, 소득 보전(78.6%), 지역경제 활성화(71.8%), 소상공인 고용 증가(63.1%)가 뒤이었다. 도내 소상공인 38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로는 경기지역화폐가 매출액 회복과 증가에 도움 됐느냐는 질문에 긍정 대답이 지난해 1분기 32.9%에서 2분기 67.6%로 늘었다. 또 지역상권 활성화에 도움 됐느냐는 질문에도 긍정 답변이 2020년 1분기 38.5%에서 2020년 2분기 70.8%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행안부도 지역화폐 효과를 강조하며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규모를 총 15조 원으로 확대하고, 10% 할인 판매를 위한 국비 1조 522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9년 3월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경기지역 화폐를 살피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무용론에 동의했다. 그는 “사용제한이 있기에 지역화폐를 나눠줘도 시장을 자주 가는 등 필요한 사람만 쓰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현금화할 수 있어 의미가 없다”며 “추가 효과는 없고 행정비용만 낭비한다. 차라리 자영업자 지원이 목적이라면 부가세 5% 할인, 기초수급자를 지원한다면 현금 지급 등 목적에 따라 직접적으로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역화폐는 지역 제한이 있어 현금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효과 보는 업종도 음식업·도소매업으로 쏠린다. 비대면 시대에 타격을 받는 숙박이나 여행업종 자영업자들은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효용론을 주장하는 교수들은 행정비용보다 경제적 효과가 더 많다고 판단한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100이라는 재정지출을 했을 때 1이라는 성과가 있었다면 지역화폐는 150이라는 재정지출을 했을 때 50이라는 성과가 난다. 지출한 재정 대비 효과가 커진다면 재정지출을 해도 유의미한 것”이라며 “과거 지자체가 주로 해온 소상공인 금융지원, 재래시장 활성화 등은 성과가 미미한 반면 이번 지역화폐는 성과가 좋다”고 봤다.
그러면서 “지역화폐 정책은 2019년 본격화했기에 2018년에서 2019년을 구분 시점으로 전후 비교해야 하는데, 조세연은 2018년 이전 시기를 기준으로 효과를 논한다”며 “실증적 분석의 출발점부터 잘못됐다”고 했다. 인근 지자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조세연의 주장에는 “경기도 시흥과 인천 남동구가 붙어있는데 둘 다 지역화폐를 잘 활용하고 효과를 본 지역이다”며 “서로 각각 자기완결성을 가진 지역으로 같이 발전하지 타지역을 침체시켜서 효과 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지역화폐 발행 자체가 경제 효과가 있다는 식의 접근은 ‘정책효과의 착시’라는 주장도 나온다. 청년수당·출산지원금·취약계층 지원금 등 현금성 복지정책이나 재난지원금 등 지자체 복지정책으로 지역화폐를 나눠줬기에 소비가 늘어난 것일 뿐, 지역화폐 자체가 역내 소비를 늘리고 내수시장을 활성화해 소비·생산·성장이라는 선순환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금융감독원 자문위원을 하고 있는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기술 전파자)는 “예컨대 인당 소비역량을 100으로 치고 지역 내 소비가 50이라고 하면 50만큼의 소비 방법이 지역화폐로 추가되는 것이지 소비역량 자체가 늘지 않는다”며 “지역화폐 발행 목적과 효과를 경제 활성화가 아닌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복지정책으로 지역화폐를 나눠주면 인당 소비역량이 늘어나 역내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광역 단위에서 지역화폐를 발행·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지역화폐를 역내의 소비가 역외로 유출되면 안 된다는 경제적 효과로 접근하니 지자체 간 경쟁이 붙어 한정된 재정을 메마르게 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며 “광역 단위로 묶어 이에 속한 지자체들이 협의해 지역화폐를 통합 발행 관리하고, 지역화폐 효과가 가장 많이 나타난 지자체가 더 행정비용을 지출하는 방식으로 공동 대응하면 비용은 줄이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