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관치금융” vs 전문가“사회적 책임”…수익 85% 대출 이자수익으로 나타나
배당축소 권고와 이익공유 참여 제안에 은행권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은행 지점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금융위원회는 국내 은행지주회사와 은행의 배당을 한시적으로 축소할 것을 권고했다. 2019년 25% 안팎이던 배당성향을 20% 이내에서 실시하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는 코로나19 탓에 바뀐 영업 환경에서 위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일부 은행의 자본 여력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 당분간 보수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로 수혜를 입은 기업들에 ‘이익공유제’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취약계층과 소상공인들을 도와주고 양극화를 완화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은 특히 코로나19 관련 대출 증가로 무난한 실적을 거둔 은행권을 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배당 축소 권고와 여당의 이익공유제 추진에 모두 불편한 반응을 보인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실적을 거뒀으면 이에 맞는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해야 하는데 배당 축소로 주주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며 “그동안 배당성향을 높이겠다고 주주들에게 말해왔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배당 축소 권고가 간섭처럼 들린다”고 털어놨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소상공인을 지원하거나 K뉴딜펀드 등 여러 사회환원을 해왔는데 정치권이 여기에 이익공유제까지 제안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은행권의 이 같은 반응과 달리 전문가들은 은행이 ‘국민경제 안정 기여’라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만큼 금융당국과 여당의 지적을 숙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부실해지면 이에 대한 비용은 정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배당을 축소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3분기 은행들은 수익의 85%를 이자 이익에서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얻은 이익을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휴업 중인 서울 용산구 한 상가. 사진=이종현 기자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은 예금자가 원하면 예금을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자본확충이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부실해지면 예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은행은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배당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은행 수익의 상당 부분이 서민과 중소상공인 대출 이자에서 나온 만큼 은행이 이익공유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사회공헌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은행권의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1월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약 60조 원 수준이던 가계대출은 지난해 100조 5000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기업대출도 2018년, 2019년 42조~44조 원이었으나 지난해는 107조 4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렇게 늘어난 대출에서 얻은 이자수익이 지난해 은행들의 이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은행이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거둔 이자 이익은 각각 10조 1000억 원, 10조 3000억 원, 10조 4000억 원.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이자만 4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총이익의 약 85%에 달하는 수준이다. 서민과 중소상공인들의 이자로 흑자를 거둔 만큼 은행의 이익 환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은행은 이익을 공유자산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매년 우리나라 주요 은행들은 국민들로부터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를 다시 국민과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배당 축소와 이익공유는 주주가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으로 제도화해서 세금을 더 걷어간다면 모르겠으나 현재 방식의 배당제한 권고와 이익공유 참여 유도는 다소 압박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은행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만 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형태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당 축소 권고와 이익공유 제안이 상충한다는 견해도 있다. 금융사 관계자는 “배당을 축소해 은행 자본은 축적하라면서 이익공유에 참여해 이익을 내놓으라는 건 모순”이라며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건 안 되고 사회에 돌려주는 건 왜 되는 건지 모르겠다”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포스트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이익공유는 사회적 기여를 위한 방향성을 이야기한 것이지 돈을 내놓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조금이라도 더 늦춰주거나 기존에 하고 있던 사회책임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과 큰 의미로 받아들여달라”며 “금융권이 어려우면 사회적 비용을 투자해 도와주는 만큼 실물경제가 나쁠 때 은행은 사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