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압박에도 은행들 통폐합·폐쇄 강행…‘공동점포’ 대안으로 등장하기도
#점포 통폐합 놓고 금융당국-은행 신경전
금융감독원(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12개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SC제일·씨티·경남·광주·대구·부산·전북·제주은행)의 총 국내 점포(지점+출장소) 수는 4572곳이다. 5년 전인 2015년 9월 5297곳과 비교해 700곳 이상 점포가 사라졌다.
점포 통폐합이 이어지자 금융당국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최준필 기자
점포 통폐합이 이어지자 금융당국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금융사는 일반 기업과 달리 전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며 “시중은행이 이윤만 추구해 오프라인 서비스를 과도하게 축소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돼야 할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2020년 7월 임원회의에서 “코로나19를 이유로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를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객의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점포를 축소하는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점포는 올해도 통폐합된다. 국민은행은 25일 점포 20곳을 통폐합할 예정이고, 신한은행은 오는 2월 원효로지점 등 3개 점포를 폐쇄한다. 하나은행도 역삼동지점 등 점포 2곳을 통폐합할 예정이며, 우리은행은 3~6월에 17곳, 7~12월에 17곳의 점포를 차례로 폐쇄할 계획.
이에 금감원은 지난 15일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을 예고했다. 세칙 개정의 주요 내용은 점포를 폐쇄하려면 금융당국에 사전 영향평가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폐쇄 후 영향평가 실시 △영향평가 결과에 따른 대체수단 결정 및 운영 △폐쇄일 최소 1개월 이전 사전통지만 실시하면 점포 폐쇄가 가능했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점포 통폐합이 소비자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방에 있는 점포는 수익이 크지 않음에도 남겨두고, 점포가 필요 이상 밀집된 지역 위주로 통폐합하고 있어 고객들이 느낄 불편함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은행의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비대면 영업 강화’ 외치지만 효과는 아직
은행이 점포 통폐합에 나서는 주요 이유는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비대면 영업으로 인한 수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대면 채널을 통한 자금 이체액은 2015년 일평균 40조 2500억 원에서 2019년 48조 6220억 원으로 8조 원 이상 늘었다. 반면 대출 신청액은 373억 원에서 1920억 원으로 늘었다. 국내 은행의 매출에서 대출을 통한 이자이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대면 영업이 수익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셈이다.
은행이 점포 통폐합에 나서는 주요 이유는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서울 한 빌딩에 있는 ATM 기기. 사진=임준선 기자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선임연구위원은 “은행 대출자산 확대 중심의 영업 모델과 이자이익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가진 시중은행이 비대면 영업을 통해 수익 창출 능력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출영업의 경우 표준화가 용이한 우량 개인 신용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로 한정되고, 기업 여신은 대면심사가 필수라는 점에서 디지털 채널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점포 폐쇄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도 의문이다. 금감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2개 시중은행의 2020년 1~3분기 판매비와 관리비(판관비)는 총 11조 7978억 원으로 2015년 1~3분기 10조 7559억 원에 비해 오히려 늘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혜경 연구위원은 “소매금융 거래 관련 비용은 감소하지만 IT 투자비용 등 새로운 고정비용이 발생해 단기간에 비용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금융의 시대적 흐름이 핀테크이기에 은행들의 지향점 역시 종합금융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면서도 “대면 영업이 오랜 기간 기반을 잡아왔기에 비대면 영업으로 큰 수익을 창출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독일 대형은행, 지점 공동운영 적극 모색
일각에서는 한 점포 안에 복수의 은행 창구가 있는 ‘공동 점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벨기에, 일본, 독일 등에서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지점의 공동운영이 적극 모색되고 있다”며 “현금자동인출기(ATM)의 공동 운영과 더불어 은행 간 공동 점포 운영은 고객의 편의성 증대와 비용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2020년 8월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은 입출금, 계좌이체 등의 업무를 공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공동 ATM을 도입했다. 은행 고객들이 공동 ATM을 이용할 때는 각자 거래하는 은행의 수수료 혜택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현재 이마트 4개 지점(하남·남양주 진접·동탄·광주 광산점)에 공동 ATM이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공동 점포 개설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용 산정이나 수익 배분 문제도 있고, 각 은행의 영업 전략도 다르기에 특정 은행이 공동 점포를 주도하기는 어렵다”며 “공동 ATM도 진행 과정에서 여러 이견이 있었던 만큼 공동 점포 개설은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주도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점포 축소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여러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면서도 “그러나 공동 점포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