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관리·감독 부서 수장들 전원 유임…‘첫 대상’ 기업은행·김 전 행장 징계 결과 가늠자 될 듯
올해 금감원 임원 인사는 당초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수년 사이 굵직한 조직개편과 재정비가 이뤄졌고, 윤석헌 금감원장의 임기도 오는 5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금감원이 부원장보 이상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지 않을 방침이 금융권에 알려지면서 이 관측에 힘이 실렸다. 부원장보는 원장이 임명하고, 부원장은 원장 제청, 금융위원회 임명, 청와대 인사검증 등의 절차를 거친다. 임기 3개월을 남긴 원장이 단행하기엔 다소 부담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뤄진 금감원 임원 인사 결과에 은행권이 크게 술렁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가 ‘없었던’ 지점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금감원은 총 65명의 국·실장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냈는데, 은행 관리·감독 관련 부서의 부서장들은 전원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부원장보 인사는 단행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은행 관리·감독을 총괄하는 은행 부원장보도 자리바꿈이 없다.
이번 인사에서 유임된 국·실장들은 일반은행검사 국장, 은행감독 국장, 자본시장감독 국장, 제재심의 국장 등이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부실 사모펀드 판매 은행 제재와 관련된 부서의 수장들로, 지난해 은행권을 대상으로 고강도 검사 등을 추진했거나 향후 열릴 제재심을 담당하고 있다. 은행 부원장보는 2020년 은행부문 산하 일반은행검사국과 특수은행검사국을 이끌며 은행들에 대한 검사를 총괄했다. 이들은 금융사 사건·사고에 대한 강한 제재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어 지난해 내내 금융권을 긴장시켰다.
금융감독원이 부실 사모펀드 판매 은행 제재심 절차를 본격화 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금감원은 2021년 1월 말부터 부실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한 은행들의 제재심을 열겠다고 일찌감치 예고해왔다.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한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라임펀드 판매사인 우리·신한·산업·부산·하나은행 등 총 8개 은행에 대한 제재심을 최대한 빠르게 마치는 것이 금감원의 목표다.
금융권에선 이번 금감원 인사의 핵심은 은행 관리·감독 부서장들의 유임이라고 해석한다. 윤석헌 원장이 남은 임기까지 업무 연속성을 유지해 제재심 등 은행 징계와 관련한 업무를 최대한 마무리 짓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윤 원장은 지난주 임원회의에서 라임사태 등 사모펀드 관련 제재에 속도를 내달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은행 CEO(최고경영자)들이 금감원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 금감원이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며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전열을 가다듬은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0년 말 금감원은 라임 펀드 판매 증권사 제재심에서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와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 금융투자협회장)에게 ‘직무정지’를,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에게 ‘문책경고’를 결정했다. 제재 수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연임 제한과 함께 징계 시점부터 원칙적으로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불가능하다. 앞서의 증권사 CEO 모두 향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24조와 이 법의 시행령 19조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를 근거로 증권사 CEO를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내부통제 기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완전판매가 발생했고, 그 책임은 금융사 CEO에게 있다는 취지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은행권에도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것으로 관측한다. 시장에 재발 방지를 위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 소비자 피해가 분명하다면 경영진의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금감원 안팎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부실 사모펀드라는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만큼, 증권사와 비슷한 제재가 없다면 형평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 대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최근 은행권 제재심의 첫 대상인 기업은행에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여기에 김도진 전임 행장에 대한 중징계 내용이 포함됐다. 중징계는 문책경고 이상인 만큼 2019년 12월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김 전 기업은행장은 징계안이 확정될 경우 사실상 금융권 복귀가 어려워진다. 김 전 기업은행장 재임 시절인 2017~2019년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 원, 3180억 원 판매했다. 글로벌채권펀드는 695억 원, 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는 219억 원 환매가 지연됐다. 기업은행은 라임펀드도 294억 원 판매했다.
사모펀드 제재심 첫 대상은 IBK기업은행으로, 최근 금감원이 중징계를 사전통보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우리·신한·산업·부산·하나은행 등은 2018~2019년 라임펀드의 주요 판매처들이었다. 금액순으로 우리은행 3577억 원, 신한은행 2769억 원, 하나은행 871억 원, 부산은행 527억 원, 산업은행 37억 원어치씩 팔았다. 하나은행은 독일헤리티지펀드 판매 건도 제재 대상에 올라있다. 금감원은 우리·신한은행 제재심을 2월부터 3월까지 연이어 열고, 산업은행과 부산은행은 1분기 내 열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2분기 중에 제재심이 개최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에선 기업은행과 김도진 전 행장에 대한 사전 중징계 통보를 전체 은행권 징계 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고 있다. 판매 규모와 투자자들과의 합의 또는 조정 등 은행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현재 금감원 방침 상 현직 은행장 또는 지주사 회장이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제재 대상에 오른 부실 펀드 판매 시기에 각 은행 수장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현 흥국생명 부회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등이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신한금융투자가 라임 펀드 판매 과정에 깊숙이 개입돼 있어 금감원이 신한금융지주 매트릭스 조직을 정밀하게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칫 칼날이 지주사까지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은행권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판매사는 운용사의 투자계획서를 토대로 상품 판매를 할 수밖에 없어, 운용사의 투자 진행 내용과 과정을 확인하고 대처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이미 DLF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은행의 경우 펀드 판매 시기와 내용이 비슷한데도 병합 징계가 아닌 추가 징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제재 대상에 오른 은행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로선 제재심에 충실히 임하겠다는 것 외에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월 중 라임 펀드 판매 은행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도 연다. 라임 펀드 추정 손해액 기준으로 조정 결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우선 배상하고 추가 회수액은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조정 결과가 제재심을 비롯해 최종 징계 결정 등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라임 펀드 판매액이 가장 크고, 추정 손해액 배상에 동의해 현장 조사까지 마친 우리은행이 분조위에 우선 상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