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업자로 분류 근로자 보호 못 받아, 플랫폼 업체도 선긋기…현장 “감정노동자보호법 적용을”
배달 주문 건수가 늘면서 라이더의 갑질 피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 시내 야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 어려워하는 시기에 배달업계는 호황을 누렸지만 정작 라이더들은 눈물을 흘렸다. 배달 주문 건수가 증가하면서 라이더의 갑질 피해 사례가 늘었다. 민주노총 배달서비스지부(노조)에 따르면 라이더에게 갑질하는 서울 내 아파트 단지는 최소 81곳이다. 라이더의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배달 플랫폼 업체가 갑질 피해에 대한 대응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체와 라이더가 고용관계가 아닌 상황
통계청에 따르면 배달 음식을 포함한 국내 모바일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올해 2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택트(비대면) 서비스가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 시장 전망도 밝다. 이와 함께 라이더 수가 꾸준히 증가하지만 라이더 갑질 피해에 대한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의 책임은 불투명하다.
이는 계약관계와 연관이 있다. 배달 플랫폼과 라이더는 지입제로 계약을 맺는다. 즉, 라이더는 개인사업자로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 형태다. 플랫폼뿐 아니라 바로고, 생각대로 등 배달 대행업체도 마찬가지다.
라이더는 통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배달 플랫폼 측이 이들에 대한 책임을 덜어내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과 라이더의 관계, 현 배달 시장의 플랫폼 역할 등을 보면 라이더는 플랫폼 발전에 가장 기본 토대지만 플랫폼으로부터 보호받을 법적인 권리는 없다”며 “플랫폼 측이 라이더의 갑질 피해에 대해 함께 대처해나가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배달업체가 라이더와 관련한 문제에 손을 놓은 건 아니다. 2019년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KB손해보험, 스몰티켓과 ‘시간제 이륜자동차보험’ 상품을 개발해 라이더의 보험 가입을 지원했다. 요기요 운영사인 딜리버리히어로도 지난 8일 라이더의 서비스 지원을 위한 보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라이더 갑질 피해에 대한 업체 측의 적극적인 대응인데, 정작 이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회적 시선이 변화되지 않는 이상 수많은 라이더들이 갑질에 노출될 수 있어서다.
배달 라이더에게도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배달을 하고 있는 라이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일요신문DB
종로구에서 배달 업무를 하는 배달 대행업체 소속 A 씨(52)는 “배달 업무를 담당하는 이상 라이더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잡아갔으면 좋겠다”며 “‘플랫폼이 중개 역할만 해 갑질 피해와 상관이 없다든지’ ‘어떤 플랫폼 라이더가 갑질 피해를 입었는지’ 등을 고려하기보다 배달 플랫폼이 라이더의 인권 수호를 위해 힘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측은 이에 대해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다. 한 배달 플랫폼 관계자는 “소비자가 요기요, 배민 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지만 음식점에선 계약을 맺은 배달 대행업체에서 서비스가 이뤄진다”며 “(라이더 갑질 피해가) 플랫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애매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라이더의 갑질 행태가 심각한 지역은 할증제를 고려해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면서도 “플랫폼은 중개자 역할이어서 라이더의 갑질 피해 대응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배달 플랫폼 관계자는 “업체와 라이더가 고용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갑질 피해까지 업체 측이 나서기에는 무리”라고 선을 그었다.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감정노동자보호법 적용을”
라이더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과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홍창의 민주노총 배달서비스지부 조직국장은 “라이더 이미지가 과거 ‘단순 아르바이트’로 남아 있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면서 “특히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들이 라이더를 ‘하찮은 노동자’로 바라보면서 라이더들이 느끼는 모멸감은 상당하다”고 호소했다.
노조가 수집한 자료를 살펴보면 라이더 갑질 피해가 발생한 아파트는 서울 강남구가 32곳으로 가장 많고 서초구(17곳)가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용산구(6곳), 양천구·마포구(4곳), 송파구·성동구(3곳), 영등포구·중구·광진구(2곳), 강동구(1곳) 순이다. 복합쇼핑몰·백화점과 고층빌딩 등도 포함됐다.
한 배달플랫폼 소속 라이더 김영수 씨는 “라이더를 하층계급으로 취급해 자괴감이 든다”며 “콜센터 노동자처럼 감정노동자보호법을 통해 부당한 행위에 대해 당당히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을 신설해 2018년 10월부터 시행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폭행과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혹은 음성 안내’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등도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노조 배달서비스지부 관계자는 “지난 2일 국가인권위에 갑질 피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며 “라이더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개선안을 내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노무사 출신의 한 국회 관계자는 “국내 배달업계 시장 규모에 비해 라이더에 대한 법적 부분은 미약해 라이더가 노동법 사각지대에 속해 있다”며 “국회에서 라이더 복지에 대한 여러 논의를 계속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