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공개’ 배제로 가닥 잡힐 듯…국내 사업자 역차별? “과거 외국 사업자에도 과징금 부과” 해명
정부·여당이 ‘플랫폼법’ 발의에 나선 가운데 플랫폼 업계에서는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박은숙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1월 28일 국회에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플랫폼법)’을 제출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 계약서 의무 교부 △플랫폼 사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 부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숙박‧부동산‧이커머스‧검색엔진 등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 사업자인 이용자에게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강제하거나 비용을 전가하는 등의 부당행위를 막겠다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여당에서도 플랫폼법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송갑석‧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소속인 김병욱‧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1월 법안을 내놓았다. 의원들의 법안은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같다. 정부안과 유사하지만 오히려 규제의 강도가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플랫폼 이용자인 소상공인들이 플랫폼 사업자와 크고 작은 분쟁에 곤욕을 치러온 만큼 이번 입법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그동안 거대 온라인 플랫폼에 종속된 소상공인들은 온갖 피해를 보며 플랫폼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왔다”며 “그간 이해가 어려운 검색 결과를 보고서도 약관이 일방적인 탓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플랫폼 사업자들은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제품 노출에 대한 기준을 공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단순 ‘검색 순서 기준’이냐 ‘알고리즘’이냐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은 성장기인 플랫폼 산업에 적용되는 규제들이 자칫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들이 법안에서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알고리즘 공개 의무’다. “영업비밀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반론이다. 정부안의 ‘중개거래계약서 기재사항’ 조항에 포함된 내용인 ‘온라인 플랫폼에 노출되는 순서, 형태 및 기준을 포함하라’는 해석하기에 따라 ‘알고리즘 공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공정위 측은 “알고리즘까지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송갑석‧전혜숙 의원이 법안에 ‘알고리즘 공개’를 포함한 까닭에 업계 불안감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는 병합심사 과정에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무위 핵심 관계자는 “국회에 올라온 여러 법안 가운데 정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며 “이미 부처 간 조율도 다 끝났고 전문가들이 검토를 다 끝낸 것이니 정부안으로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 정무위 간사인 김병욱 의원도 법안에 알고리즘 공개 의무화를 포함하지 않아, 이를 배제한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업자에 역차별 우려
플랫폼법이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n번방법’으로 텔레그램을 제지할 수 없듯 플랫폼법도 구글은 잡지 못한다. 만약 할 수 있었다면 그동안 왜 유튜브에 법 적용을 안 하고 협조를 구해왔겠는가”라며 “결국 이 법은 해외 기업에는 돈 벌 기회를 열어주고 국내 기업만 위축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형평성에 어긋날 것이라는 플랫폼 업계 우려와 달리 플랫폼법은 국내 및 해외 기업에 전반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임재현 구글코리아 전무. 사진=이종현 기자
정부안의 적용 범위는 ‘국내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와 국내 소비자 간 재화 또는 용역의 거래 개시를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다. 법 조문대로라면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해외 사업자도 이 대상에 포함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외국 사업자에도 이 법은 똑같이 적용된다”며 “과거 구글뿐 아니라 미국 IT 기업인 아이비엠과 인텔 등을 대상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적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공정위는 글로벌 특허 사업자인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1조 원 규모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또 김병욱 의원은 플랫폼법에 ‘특정 결제방식 강제행위 금지’ 조항을 추가했다. 앞서 구글이 구글플레이(애플리케이션 장터)에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에 자사 결제 방식(인앱결제)을 일괄 적용하며 갑질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 김병욱 의원의 법안이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정책’을 겨냥한 만큼 해외 기업 적용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기업들이 법망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촘촘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무위 다른 관계자는 “법률에 해외 기업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것처럼 명시돼 있어도 막상 현장에 법안을 적용하려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을 담는 시행령을 더 꼼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 있는데 굳이 왜…”
플랫폼법이 과잉입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플랫폼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거래법과 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등 플랫폼 산업을 규제할 법안은 이미 차고 넘친다”며 “그럼에도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행법들은 플랫폼법과 비슷한 성격을 갖지만 적용 대상과 범위의 차이 때문에 규제에는 무리가 있다. 공정거래법은 주로 오프라인 거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전자상거래법은 B2B(기업과 기업의 거래)가 아닌 B2C(기업과 개인의 거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대규모유통업법은 중개서비스가 아닌 직매입 후 판매 형태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 적용에 한계가 있다.
플랫폼법을 제정하기보다 기존 법령의 공백을 메워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혜련 경찰대학 법학과 교수는 “굳이 법안을 새로 제정하지 않고 기존 법률을 개정해도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EU(유럽연합)도 이와 같은 법안을 만들었는데, EU는 연합이라는 특수한 체제여서 연합 차원의 법을 제정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필요 없이 기존의 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