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라이프라인’으로 누드사진 투하
▲ 우린 괜찮아요~ 9월 17일(현지시간) 칠레 코피아포 인근 산호세 광산에 매몰된 광부들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
이들이 매몰된 시점은 지난 8월 5일이고 구조대가 이들을 발견한 시점은 22일이다. 그 17일 간 이들은 대피소에 있던 3일분의 식량으로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구조대는 직경 10㎝의 물자전송용 구멍을 통해 식량과 물품을 지급하고 이들의 갱도 안의 생활을 파악했다.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굳건한 삶의 의지를 보여준 이들은 일약 칠레에서 국민적 영웅이 됐고 칠레의 신문들은 연일 그들의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리더역할을 한 우루이스 우루수아(54). 실온 35도, 습도 80%라는 악조건 속에서 팀원들이 삶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통솔한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우루수아와 광부들의 치열한 ‘생존드라마’를 되돌아봤다.
일반적으로 칠레의 광부들은 중·고졸 학력이 많다. 하지만 우루수아는 칠레의 유명대학 출신이자 지형학 전문 학자였다. 우루수아와 현장에서 함께 일을 한 경험이 있는 광부는 “그는 광산에 대해서는 일류 전문가다. 거친 일이 많은 블루칼라의 직장에 우루수아와 같이 머리를 써서 일을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며 이번 33인의 생존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닌, 그의 통찰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현명한 판단 중 특히 주목받는 부분이 ‘식량분배’다. 우루수아는 피난소에 있던 비상식량을 33인에게 공평하게 나눠 하루에 먹는 양을 크래커 반쪽, 참치 캔의 참치 두 조각, 우유 반 컵, 복숭아 통조림 한 조각으로 정했고, 덕분에 3일 분량의 식량으로 17일간 버틸 수 있었다.
구조원 중 한 명은 “광부들이 암흑 속에서 유일하게 ‘삶’을 실감하게 하는 식사를 제한당해 괴로웠을 것이다. 보통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인데 우루수아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어두운 땅속에서 일하는 채굴현장은 상하관계가 어떤 곳보다 엄격하다. 칠레 광산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광부의 리더는 팀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역”이라고 한다.
우선 지형학 전문가인 우루수아는 광산 내 지도를 제작해 그들이 있는 곳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매몰사고가 일어난 지하 400m 지점은 거동이 불편했고 추가 암반 추락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지하 700m 지점에 위치한 대피소로 이동했다. 현장의 상황을 파악한 우루수아는 구조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 장기전을 각오한 것이다.
하지만 대피소는 넓이 약 40㎡ 높이 약 3.5m의 폐쇄된 공간이었다. 약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30~50대 남성 33명이 언제 구출될지 확신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루수아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려, 대피소 내를 ‘침실’, ‘식당’, ‘다목적’ 공간으로 나누고 대피소에서 200m 떨어진 갱도의 한 구석은 ‘화장실’로 정했다. 사람의 이동이 가능한 2㎞ 상당의 갱도는 게임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오락장’으로 사용했다. 또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암반추락 사고에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교대로 대피소 밖의 갱도에서 보초를 서게 했다.
구조대가 광부들의 생존을 확인한 뒤부터는 몇몇의 팀원들에게 담당임무를 내리기도 했다. 15년 전 간호사 자격증을 따낸 조니 바리오스(50)는 주사와 약을 투여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광부들의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고, 체중을 체크하며 팀원들의 건강상태를 돌보았고 지상의 구조대와 연대해 인플루엔자, 파상풍, 결핵 등에 대한 백신도 주사했다.
이미 여러 차례 붕괴사고를 겪은 바 있는 최연장자 마리오 고메스(67)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광부들의 심리 상담사가 되었다. 그는 갱도 한 구석에 작은 예배당을 꾸미기도 하고, 지상에 있는 심리학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며 팀원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줬다. 그 외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광부는 오락을 담당했다.
구조대가 그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지상과 지하세계를 이어주는 라이프라인이 된 것은 직경 10㎝의 물자전송용 구멍이었다. 구조대와 가족들이 보내는 의료품과 식량, 물자, 편지는 지상과 700m 떨어진 대피소로 이어진 통조림 캔 사이즈 구멍을 통해 투입되었다. 투입된 음식물은 공복인 광부들의 위에 자극을 주지 않을 만한 젤 타입의 유동식에서 샌드위치와 파스타, 비프스튜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 매몰된 광부가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
전문가들이 ‘지하세계’ 생활이 길면 길어질수록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염려했던 문제 중 하나가 ‘성욕 해소’다. 정신과 전문의인 와다는 “남성만 있는 밀실에서 금욕생활을 하게 되면 과거에 미국의 한 형무소에서 일어났던 호모섹슈얼 강간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리더의 통제 아래 자위행위 등을 통해 성욕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부의 가족들은 그런 점을 염려해 그들에게 보낼 편지나 책 사이에 누드사진을 끼워 넣기도 했다.
한편 칠레 광부들의 영웅 이야기에 ‘미담’만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의 가족 및 구조대원들을 위한 광산 옆 임시 캠프장에서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생활을 하던 부인 앞에 지하에 있는 남편의 ‘애인’이라며 젊은 여성이 나타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칠레 현지의 한 신문기자는 “칠레에서 광부들의 급료는 의사나 변호사보다 높아 광부 중에는 처가 있음에도 애인 한두 명을 몰래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광부의 월급은 130만 원 정도로, 칠레 근로자 평균 급여의 약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렇게 ‘애인’을 자처하며 나타난 여성들은 5명이 넘어, 그들의 아내와 8월분의 급여와 광산회사, 일반시민으로부터 받은 기부금 등을 합쳐 20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서로 받아가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