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가격이 폭등한 것은 폭염, 폭우 등 기상이변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나치게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가 많아서 신선식품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자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유통업자들의 부당행위이다. 가격 폭등이 가장 큰 배추의 경우 소비자 가격이 생산자 가격의 4배가 넘는다. 이는 국민들 식탁을 인질로 잡고 폭리를 취하는 행위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신선식품 가격 폭등이 일반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음식의 재료비는 물론 외식비가 크게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물가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소비자 물가는 3% 정도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신선식품 가격 상승 때문에 실제 3.6%나 올랐다. 향후 이런 현상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의 또 다른 복병은 공공요금과 유가 상승이다. 전기 요금은 지난 8월에, 가스 요금은 9월에 이미 올랐다. LPG가스 가격은 이 달부터 올랐다. 여기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을 넘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공공요금과 유가 상승은 일반 물가 상승의 유발효과가 가장 큰 요인들이다. 한편 내년부터 공무원 봉급이 평균 5.1% 오른다. 2년간 동결 후 어쩔 수 없이 올린 것이긴 하나 이로 인해 일반 기업들의 임금 인상 압력이 커질 전망이다. 이 경우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또 다른 복병이 될 수 있다.
우리경제는 금융위기를 빠른 시일 내에 극복했다. 그러나 경기회복의 과실이 대기업 등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오히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서민들의 고통은 더 크다. 이런 상태에서 생활 물가가 폭등하는 것은 서민 경제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생활물가 관리를 위한 비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하여 신선식품 등 주요 생활품목의 생산과 공급을 늘리고 유통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2008년 정부는 MB물가를 만들어 쌀, 배추, 학원비, 도시가스료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에 대해 집중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MB물가는 이번 가격 폭등에 맥을 못 춰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MB물가를 다시 만들어 실효성 있는 집중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최근 아파트 전세가격이 급등하여 서민들 주거가 불안하다. 올 들어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이 13.8%나 된다. 봄에만 해도 2억 원 정도이던 아파트 전세가격이 3억 원 가까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밥상물가의 폭등을 방치하는 것은 서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로 정부의 직무유기다. 정부가 진정 친 서민 정책을 편다면 흔들리는 국민의 밥상부터 잡아 주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