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받고 싶다” “복수하려고 기다렸다”는 피해자, 위법성 조각 어려워…또 다른 피해 입을 수도
최근 학폭 의혹이 불거진 연예인 가운데 배우 박혜수의 소속사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는 가장 강력한 법적 대응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월 한 달 동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진 학폭 논란 가운데 2월 26일 기준 폭로 내용을 전부 또는 일부 인정하고 사과한 연예인은 세 명뿐이다.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2’에 출연 중이던 트롯 가수 진달래와 보이그룹 몬스타엑스‧스트레이 키즈의 기현과 현진이다.
다만 진달래의 경우는 모든 사실을 인정한 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자숙 중이나 기현과 현진은 일부 내용을 인정하면서 “학생 신분으로 하지 않았어야 할 일”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다” 등 다소 모호한 표현을 쓴 탓에 공식 사과문을 낸 뒤에도 대중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현진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현진은 학폭 폭로글을 올린 네티즌들과 직접 만나 사과했으며, 서로 오해를 풀었다고 밝혔다.
2월 26일 오후 몬스타엑스의 스타쉽엔터테인먼트도 기현과 학폭 폭로글을 올렸던 네티즌을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서로 간 오해를 풀었다는 추가 입장을 전해왔다. 그러나 이 사안과는 별개로 앞서 2015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또 다른 허위사실 글에 대해서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현재까지 학폭 폭로자들에 대해 강경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소속사는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배우 박혜수) △HB엔터테인먼트(배우 조병규) △JYP엔터테인먼트(걸그룹 있지의 리아)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보이그룹 세븐틴의 민규) △큐브엔터테인먼트(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수진) △크래커엔터테인먼트(보이그룹 더보이즈의 선우)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이달의 소녀의 츄) 등이다. JYP엔터테인먼트는 현진의 사례와는 달리 리아의 경우 폭로 글을 올린 네티즌의 허위사실 유포를 확인, 이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비슷한 시기 학폭 폭로가 터진 스트레이 키즈의 현진은 폭로 내용의 일부를 인정 후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식으로 종결했지만, 있지의 리아의 경우 허위사실이 확인돼 법적 대응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SBS 제공
박혜수의 경우는 다른 학폭 논란 연예인들과 달리 피해자들이 ‘피해자 모임’을 결성할 정도로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실명과 자신이 평소 사용하는 SNS 계정까지 공개하며 폭로하고 있어 그 주장의 ‘신빙성’에 다른 폭로자들보다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속사의 “소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법률 등 공식적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권익을 위한 조치를 취하시길 바라고, 이에 대해 당사는 성심성의껏 응대할 예정”이라는 다소 도가 지나친 발언을 두고 피해자들은 물론, 그들의 주장을 믿는 대중들까지 심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의 이 같은 대응을 우려하면서도 “지금 상황에선 그 수밖엔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앞선 홍보팀 관계자는 “박혜수의 경우는 2월 26일 첫 방송이 예정돼 있던 드라마가 편성에서 빠지는 등 실질적인 ‘손해’가 발생한 상황이고, 피해자들은 박혜수를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사실상 연예계 은퇴와 소속사 계약 해지를 주장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주장을 모두 수용해버리면 소속사로서는 극심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양 측 모두 법정에서 공정히 판단을 받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혜수의 학폭 피해자 모임은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의 공식입장을 정면 반박하며 법적으로 맞대응에 나설 입장을 밝혔다. 사진=피해자 모임 인스타그램 캡처
한 변호사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가운데 피해 주장이 일관되고, 이에 부합하는 증인 다수의 증언이 있다면 진실성은 담보될 수 있으나 문제는 공익성”이라며 “일부 피해 폭로 네티즌들 중에서는 ‘(연예인이)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이제 폭로한다’ ‘복수심에 그러는 게 맞다. 망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언급을 한 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이런 부분은 사적 복수심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는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고, 행위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폭로한 사실이 인정돼야 위법성이 조각된다. 중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인정돼야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어도 명예훼손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이뤄진 대부분의 학폭 폭로는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거나, 아예 별다른 목적 없이 자신이 입은 학폭 피해 사실만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아 공익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선 변호사는 “사과를 받고 싶어서 폭로했다는 것은 개인의 만족을 위함이지 공익을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말 재판으로 갈 경우 피해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여러모로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또 다른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