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만 만나면 다음 경긴 안봐도 꽝
▲ 전북은 18라운드에서 대전을 3 대 2로 제압했지만 서울과 컵 대회 결승전에서 0 대 3으로 완패했다. 사진제공=전북 현대 |
#꼴찌가 꼴찌가 아냐
사장 교체 등 계속된 악재 속에서 일찌감치 6강 PO 경쟁에서 밀려난 대전 시티즌. 하지만 이들의 ‘자줏빛 투혼’이 일궈낸 영향력만큼은 막강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본격 재개된 K리그 후반기 레이스의 중심에는 대전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대전과 만나는 클럽들은 이후 다음 라운드 경기에서 좀처럼 승리하지 못하는 묘한 상황에 빠졌다. 파장은 적게는 한 경기, 많게는 두 경기까지 갔다.
이러한 징크스 아닌 징크스. 전력이 강하든, 약체로 꼽히든 예외 없이 적용돼 모두를 바짝 긴장시켰다. 특히, 리그 테이블 상위권을 맴돌던 클럽들에게는 더욱 껄끄러웠다.
본격적인 시작은 7월 말부터였다. 14라운드에서 대전을 꺾은 성남 일화는 15라운드에서 대구FC에 1-3으로 졌고, 1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선 0-2로 패했다. 7월 31일 울산 현대도 대전을 꺾었지만 16라운드에서 강원FC와 2-2로 비겼고, 수원 삼성과 17라운드 경기에서는 2-3으로 졌다.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8라운드에서 대전을 3-2로 제압 후 FC서울과 컵 대회 결승전에서 0-3으로 완패했고, 성남과 19라운드 경기에서는 0-1로 무릎을 꿇었다. 강원도 대전을 2-1로 물리친 뒤 서울에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를 유일하게 벗어난 클럽은 제주 유나이티드였다. 제주는 8월 28일 대전을 꺾고 9월 4일 울산을 이기면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대전 프런트의 설명이 재미있었다. “일단 대전이 워낙 필드 전체를 고루 활용하고 많이 뛰는 플레이를 구사하기 때문에 상대팀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것. 비록 박성호의 일본 J리그 진출과 핵심 플레이메이커 고창현의 울산행으로 주력 공백이 크지만 한 걸음씩 더 움직이므로 상대의 체력이 그만큼 많이 소진된다는 의미였다.
정작 자신들은 연패의 수렁에 허덕이고, 승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다른 팀들에 어려움을 끼치는 대전의 모습은 대체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딜레마에 빠진 상무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군 복무. 축구선수라고 예외가 아니다. 굵직한 대어들이 내년(2011년) 입대 신청을 하면서 팬들의 눈길을 끌었던 상무는 항상 이맘 때가 되면 불안하다.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나가는 자도 있는 법. 10월 말로 핵심 전력을 구축했던 전역자들이 대거 선수단을 이탈하기 때문에 막판 순위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광주 상무 이강조 감독도 “전역 예정자들은 8월이 되면 군복을 벗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해서 10월이면 출전을 시킬 수도 없다. 후반기가 되면 말년 병장까지 ‘굴리냐’는 외부에서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진다”고 그들만이 처한 딜레마를 설명한다.
올해에도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고 10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한·일전에 출전했던 ‘말년 병장’ 최성국이 10월 30일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원 소속 팀 성남 일화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최성국은 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자신의 전역일이 하필 원 소속팀 성남과 전 소속 팀 광주 상무가 탄천종합운동장에서 K리그 격전을 벌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성국은 이날 오전 전역을 신고한 뒤 성남으로 돌아가지만 결과적으로 출전할 수는 없다. 자정까지 현역 신분이 유지되는 군 복무 규정 때문이다.
사실 상무는 전역자의 대거 이탈 외에도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아니, 더욱 엄밀하게 말해 프로축구연맹이 안고 있는 어려움이다.
AFC는 확대 개편된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훨씬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전 구단의 법인화 ▲행정 및 재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남북 분단’이란 한국만의 특수 상황으로 인해 K리그에 참여 중인 상무를 제외해야 한다는 게 AFC의 솔직한 입장이다. 연맹 측은 법인화 안건이 처음 제기된 2008년 당시 2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고, 유예 만료 시기가 다가온 올해 다시 2년 연장을 희망하고 있지만 AFC는 상무가 남아있을 경우, 챔피언스리그 출전 쿼터 숫자(4장)를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연맹은 출전 제한 등의 불이익이 오더라도 K리그 발전을 위해 상무를 남겨놓고 싶지만 이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광주를 떠나 새로운 연고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상무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가 꽤 많았으나 ‘2년 내 새 구단을 창단해야 한다’는 연맹의 제안이 걸림돌이다. 광주만 해도 2003년 상무를 데려가 K리그에 참여한 뒤 7년여 만인 올해 들어 시민구단 창단을 확정했다.
“군 복무와 실전 감각을 동시에 유지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는 상무를 없앨 수도, 그렇다고 내셔널리그에 참여시킬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는 게 프로축구 관련 종사자들의 솔직한 속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