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쓰리잡 헉헉…지름신아 꺼져다오!
▲ 영화 <쇼퍼홀릭>의 한 장면. |
여성 직장인들은 남성들에 비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시기가 이른 편이다. 남성들에 비해 높은 구매력을 지닌 여성들은 경제관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사회생활 초기에 과도한 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식품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D 씨(여·30)는 20대 중반에 한 번의 과소비로 크게 후회한 경험이 있다.
“직장생활 초창기에 선배 지인이 다이어트 제품을 먹고 살을 많이 뺐다고 하면서 같이 상담원을 만나보자고 하는 거예요. 그때 한창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따라갔죠. 자리에 앉자마자 영양학에 관한 설명부터 제품의 특징까지 한 시간 이상을 쉬지도 않고 설명을 하는데 혼이 빠졌는지 순식간에 카드 번호를 묻고 답하며 결제가 이뤄졌죠. 당시 월급 실수령액이 100만 원이 조금 넘었었는데, 제품 가격이 160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그 다음 달부터 마이너스가 됐죠. 적금도 부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나가는 생활비가 있으니까요. 현금서비스로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버텼는데 금액이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는 거예요. 결국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뛰면서 몇 달을 고생한 끝에 카드빚을 청산할 수 있었어요.”
D 씨는 처음에 꼬드겼던 선배를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후배가 받는 월급을 빤히 알고 있는데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을 챙기기 위해 D 씨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직장생활 1년차에 불과했을 때인데 카드결제일이 다가오면 두려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며 “이제는 그런 꼬드김에 넘어가지도 않고 카드도 거의 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항공 관련 회사에 다니는 J 씨(여·31)도 20대 중반에는 경제관념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원래 명품 백이나 비싼 브랜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업무 특성상 여자들이 대부분인 데다 주변에서 다들 브랜드만 따지다보니 저도 모르게 닮아가더라고요. 손바닥만 한 4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고 몇 달을 김밥만 먹고…. 그런 생활을 반복했었죠. 또래에 비해 월급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나중에는 벅차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갖고 있던 명품 백을 중고로 팔고 다시 또 그 돈으로 다른 가방을 샀어요. 그러다 카드 값이 밀리고 독촉전화가 오기 시작하니까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갖고 있던 명품 가방이랑 구두들을 다 처분하니 꽤 목돈이 생겼고 밀린 카드 대금을 한꺼번에 청산했어요. 그때의 후련함이란 말도 못해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투잡’이나 부업으로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직접 해보고 깨닫게 된다.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O 씨(여·33)도 20대 후반에 작은 사업을 했다가 신용불량의 위기까지 갔었다고.
“월급만으로 목돈을 마련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친구와 의기투합해서 유아동복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하지만 경쟁 사이트도 너무 많고 쇼핑몰 홍보에도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자금이 부족해서 홍보를 제대로 못하니까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악순환이었죠. 800만 원을 대출받아 시작했는데 쌓인 재고를 보니 한숨만 나왔어요. 안되겠다 싶어 친구와 길거리에서 소리치면서 옷을 파는데 다시는 사업 안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O 씨는 현재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욕심도 버리고 적은 월급이지만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맘이 편하단다. 그는 “주변에서 쇼핑몰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린다”면서 “대출이자 독촉전화를 한 번 받아보면 절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다단계 사업에 발을 들였다가 크게 혼난 A 씨(여·28)도 월급을 몽땅 털어 넣는 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법무 관련 회사에 다닐 때인데 첫 직장이라 의욕이 넘쳤죠. 월급을 어떻게 좀 잘 굴릴 수 없을까 늘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동료 여직원이 다단계 제품을 쓰는데 제가 봐도 괜찮더라고요. 시스템을 들었는데 이거 되겠다 싶었죠. 겁도 없이 월급의 반 이상을 투자해 물건을 구입했어요. 그러고 나서 가족부터 시작해 한 번 써보라고 무턱대고 물건을 선물하고, 캐시백 점수를 쌓기 위해 또 물건을 사는 걸 반복했죠. 그러다 월급을 털어 넣기 시작했고, 집에 제품이 늘어갔어요. 카드 대금을 한 번 연체하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이 아셨어요. 크게 혼내신 뒤 200만 원 정도 되는 카드빚을 갚아주셨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경제적인 곤란을 겪기도 한다. 과소비나 사업으로 과욕을 부린 것도 아니지만 C 씨(여·32)는 큰 위기를 한 번 겪었다.
“지방에 살다가 20대 중반에 물류 쪽 회사에 취업이 돼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어요. 당장 목돈이 없어서 대부업체를 통해 500만 원을 대출해서 방을 얻었죠. 이자만 해도 엄청나더군요. 그래서 빨리 원금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준 회사에 어느 날부터 연락이 안 되더니 회사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예요. 백방으로 연락을 취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포기하고 잊고 살았는데 재작년에 갑자기 그쪽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그간 밀린 이자를 갚으라고 하더군요. 연체이자까지 합쳐서 1000만 원도 훌쩍 넘는 돈을 갚아야 했어요. 일부러 밀린 것도 아닌데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더군요. 결국 적금을 해약하고 부모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위기를 면할 수 있었어요.”
경제 컨설턴트들은 올바른 재테크 지식을 알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신용관리는 재테크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컨설턴트는 “자신의 소득과 소비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미리 예산을 짜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며 “신용한도에 맞춰 월급을 관리하고 지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재테크”라고 충고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