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에 4가구, 아이 방치 아무도 몰라 ‘갸웃’…주민 “석 씨 말수 적고 평범” 경찰 “드릴 말 없다”
구미역에서 사건 현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가뜩이나 구미가 요새 기업들 빠져나가고 경기가 안 좋아 분위기도 나쁜데 그런 사건까지 터져서 더 안 좋다. 구미는 전기와 전자 관련 기업 때문에 외지인이 많은데 머무는 기간이 짧다. 그래서 같은 직장에 다녀도 소통이 많지 않다. 사람들끼리 잘 아는 경우가 드물다. 다른 지방이랑 다르다. 알음알음으로 뭘 알아내기 어려운 도시라 석 씨 모녀에 대해 알기 쉽지 않을 거다.”
인근 미용실 주인은 “석 씨가 서너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을 하러 왔다. 평범한 중년 여성 얼굴로 머리색 밝은 것 빼고는 평범한 40대 후반 아줌마였다. 옷차림도 그냥 동네 아줌마들처럼 평범했다”며 “보통 아줌마들이 미용실에서 수다를 많이 떨지만 석 씨는 조용한 편이었다. 말 수가 별로 없었던 터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석 씨가 구미경찰서에서 검찰로 이동할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
3세 여아가 홀로 방치돼 사망에 이른 사건이 벌어진 곳은 매우 평온하고 한적한 동네였다. 해당 빌라에서 도보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다. 마트를 비롯한 다양한 편의시설도 인근에 있다. 석 씨와 김 씨가 2층과 3층에 살았던 다가구 원룸 빌라 바로 앞에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따뜻해진 날씨에 나와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많아 시끌벅적했다. 그만큼 아이 키우기 참 좋은 동네다. 만약 그 아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집 바로 앞 공터에서 뛰놀고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초등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홀로 방치된 3세 여아는 창밖으로 바로 보이는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홀로 쓸쓸히 죽어갔을 수 있다. 너무 비참한 일이다.
여기서 드는 의혹은 어떻게 주변에서 아이가 홀로 방치됐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느냐다. 해당 빌라는 다가구 원룸 주택으로 석 씨가 사는 2층과 김 씨가 살던 아이 사체가 발견된 3층은 한 층에 원룸 네 가구가 있다. 3층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된 원룸 현관문이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조라 3층의 다른 세 가구는 물론이고 그 위층에 사는 주민들도 늘 그 앞을 지나다녀야 한다.
현관문이 잠겨 있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밖에선 알 수 없지만 아이가 홀로 방치돼 사망에 이르렀다면 적어도 울음소리는 밖에서도 들렸을 것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당시 다른 세대 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3층 복도에서 들릴 만큼 방음이 잘 돼 있는 건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은 없었다. 이런 까닭에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아이가 심하게 학대를 당해 울음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로 집에 홀로 방치됐을 가능성에 비중을 뒀다. 그러나 사체 부검 결과 골절 등 학대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수사가 어려운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아이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 사망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장소는 해당 빌라로 추정되지만 다른 장소에서 사망했는데 사체만 빌라로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있는 원룸 빌라 형태의 다가구 주택에서, 그것도 창문 자주 열고 지내는 8월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이미 검찰은 3월 10일 김 씨를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방임) 등 혐의로 기소했다. 아이를 빈집에 홀로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경찰 수사 내용을 기반으로 한 기소였는데 이후 김 씨가 아닌 석 씨가 친모로 밝혀지는 등 사건은 더욱 복잡해졌다. 법정에서 살인죄의 유무죄를 논하기에 앞서 공소유지조차 어려워 보일 정도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염색하러 와”
평온해 보이는 동네지만 타지인에 대한 경계심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지인이 아닌 동네의 평온을 깨러 온 것으로 비춰지는 취재진에 대한 경계였다. 기자는 사체가 발견된 빌라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질문을 했지만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일 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인근 동네에서 만난 주민들 역시 석 씨와 김 씨 모녀, 그리고 사망한 3세 여아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인근 주민은 “이 동네 중년 아줌마들은 서로 소통을 하고 잘 어울리는 편인데 석 씨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며 “그런 사람이 이 동네 사는지도 몰랐다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어렵게 석 씨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났다. 인근 미용실 주인이었다. 그는 “석 씨가 서너 달에 한 번씩 뿌리염색을 하러 왔다. 머리색 밝은 것 빼고는 평범한 40대 후반 아줌마였다. 옷차림도 그냥 동네 아줌마들처럼 평범했다”며 “보통 아줌마들이 미용실에서 수다를 많이 떨지만 석 씨는 조용한 편이었다. 말 수가 별로 없었던 터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보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곤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용실 주인은 “정확하진 않지만 석 씨가 딸 김 씨도 한 번 데리고 온 것 같다”라며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년이 지난 오래된 일은 아니다. 딸인지도 명확하진 않다. 20대 여성과 같이 왔었는데 그때 둘이 얘기하는 걸 보고 딸이라고 여겼었다. 내가 딸이냐고 직접 물어보진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이자 미스터리는 모녀 관계인 석 씨와 김 씨의 공모 여부다. 비슷한 시점에 각자 딸을 출산한 이들의 아이가 뒤바뀐 과정부터 김 씨 딸로 알려졌던 석 씨 딸의 사망, 그리고 사체유기 시도, 사라진 김 씨 아이의 행방 등 모든 의문이 여기로 연결된다. 정말 석 씨가 김 씨도 모르게 아이를 뒤바꾼 것인지, 아이 사망 과정에서 석 씨는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인지 등의 의문이 이들의 공모 여부와 연결되는 것.
경찰은 석 씨와 김 씨의 진술을 토대로 ‘김 씨가 10대 후반 가출해 동거하면서 부모와 사실상 인연을 끊었다’고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렇지만 인연을 끊고 지내는 모녀가 같은 빌라 2, 3층에 살고 있었다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이후 경찰은 사체유기 시도 과정에서 석 씨와 김 씨의 공모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석 씨가 2월 9일 김 씨에게 전화해 아이가 숨진 사실을 알린 뒤 자신이 치우겠다고 말해 김 씨의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인연을 끊고 살던 관계라고 보기 힘든 대목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 씨와 김 씨 관계가 중요한데 6개월 동안 왕래가 없을 만큼 소원한 관계로 알려졌지만 석 씨가 아이 시신을 ‘내가 치울게’라고 말한 부분이 포인트”라며 “대화의 맥락을 차치하더라도 ‘치울게’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신뢰 혹은 유대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석 씨가 ‘아이가 죽었는데 치울게’라고 연락했다는 건 딸 김 씨도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진 않았을 가능성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석 씨와 김 씨가 함께 미용실을 다녀갔을 수 있다는 증언이 갖는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생각보다 석 씨와 김 씨가 상당히 친밀한 모녀 관계일 수 있고 그렇다면 공모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구미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에 지역 유력 인사가 관계돼 있어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못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역 매체 기자들 사이에서도 경찰이 너무 취재에 비협조적인 게 뭔가를 감추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진=이송이 기자
#함구령 떨어진 구미경찰서
구미경찰서 취재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아예 경찰서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형사과 관계자와 통화가 이뤄졌지만 “드릴 말씀 없다. 돌아가시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후 다양한 루트로 구미경찰서 관계자와 연락을 취했지만 하나같이 “도와 줄 방법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런 상황은 구미경찰서를 출입하는 지역 언론사 기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 지역 언론사 기자는 “이 사건으로 경찰이 시민들로부터 무능력하다는 비난을 계속 받으면서 민감함 상황”이라며 “우리도 의아할 정도로 경찰과 소통이 안된다. 함구령이 떨어진 것 같은데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뒤에 더 심해졌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괜한 루머만 양산하고 있다. 구미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에 지역 유력 인사가 관계돼 있어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못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역 매체 기자들 사이에서도 경찰이 너무 취재에 비협조적인 게 뭔가를 감추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구미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경찰이 뭘 감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며 “불거진 의혹에 비해 수사 결과가 빈약한 채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터라 구미경찰서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언론 대응을 하며 추가 수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했다.
구미=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